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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놀러갔을 뿐인데... 혐오 주인공 된 그녀

[주장] 뉴스 인터뷰 속 여성 향한 무례한 프레임, 이제는 멈춰야

23.06.20 13:59최종업데이트23.06.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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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 속 한 장면 ⓒ MBC


"좋은 사람들과 와서 신나고 날씨도 너무 좋은데 오늘 돌아가야 해서 아쉬워요."

매년 이맘때면 돌아오는 휴가철 해수욕장 시민 인터뷰, 마치 약속한 듯 매번 사람은 바뀌어도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와서 기쁘다'는 소감은 똑같다. 휴가를 맞아 신나는 마음만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지극히 평범한 뉴스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터뷰는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롱당하고 있다.

인터넷을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만한 이 사진은 너무 오래 전이라 원본을 찾기는 어렵지만 여름 피서철 해수욕장을 찾은 인파를 취재한 MBC 뉴스로 추정된다. 기자는 해수욕장에 놀러 온 여성들에게 소감을 물었고, 친구들과 놀러온 한 여성은 위와 같이 대답했다. 휴가철 여행지에서 나올 법한 무난한 인터뷰이지만 이 뉴스가 SNS와 유튜브로 흘러가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인터뷰한 여성과 그 옆에 함께 있던 여성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를 중심으로 시작된 것. 특히 인터뷰한 여성을 비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말도 안 되는 '썰'이 나타났다. 바로, 인터뷰한 여성이 해수욕장에서 다른 여성들에게 대시하는 남자를 막았다는 것이다.

인터뷰한 여성이 미팅에서 인기가 없고 다른 연애 관계도 훼방을 놓는 '폭탄' 역할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였다. 이후 뉴스에 나온 여성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며 조롱하기 시작했고 이 표현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 빠르게 퍼지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고유 명사가 되었다.

'호감 가는 여성에게 대시할 때 그 옆에 막아서는 OO(인터뷰한 여성의 실명)은 어디든 있다'는 식이다. '나 오늘 고백했다가 그 옆에 못생긴 친구한테 대신 차였어'라는 말을 '나 오늘 고백했다가 OO 만났어'라고 바꿔서 쓰는 등 조롱 표현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뉴스 영상에서 다른 여성들이 실제로 남자들에게 대시를 받았다거나 인터뷰 당사자가 이를 대신 거절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인터뷰한 여성에 대한 무례한 평가와 누군가에게 거절당한 개인적 경험이 합쳐져 가짜 '썰'을 만들어냈고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친구를 향한 대시에 대신 막아서는" 가상의 여성이 탄생한 것이다. 

몇 해 전 뉴스이지만 여성의 인터뷰 영상은 2023년 현재에도 여전히 인터넷에 살아있다. 서서히 잊힐 법한 시기에 유튜브가 다시 그의 이름을 조롱 표현으로 꺼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떠도는 무분별한 조롱과 혐오

최근 유튜브에서는 이 여성의 실명을 그대로 가져다 쓴 '스케치 코미디'(10분 내외의 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을 법한 일들을 과장해서 공감대를 유발하는 코미디) 영상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영상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남자들이 호감가는 여성에게 '함께 술을 마시자', '휴대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제안하려고 할 때마다 그 옆에서 우악스럽게 구는 '여성'이 대신 나서서 방해하는 식이다.

유튜브 채널 '깨방정'에 올라온 영상 속 남자들은 이 여성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예쁜 여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토로하고, 이 여성의 허락을 받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리고 그를 폭탄이라고 칭하며 박멸하기 위한 퇴치법을 공유한다. 해당 영상들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댓글에는 그를 향한 비난과 조롱이 가득하다.

이러한 연출극 외에도 실제로 여성에게 대시를 하려고 했다가 그의 친구에게 저지당하는 영상을 올리며 제목으로 'OO(인터뷰한 여성의 이름) 만났다'고 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친구를 향한 대시를 거절한 경험을 'OO(인터뷰한 여성의 이름) 된 썰'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영상들은 채널을 특정하기도 어려울 만큼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중 일부 영상들은 500만, 800만 등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인터뷰에 임했을 뿐인데 '무례하고 눈치 없는 여성'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일반인의 평범한 인터뷰 영상에서 시작된 조롱은 8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인터넷 곳곳을 부유하는 중이다.

'OO녀'가 되어버린 평범한 여성들 
 

SNS나 유튜브 등 인터넷 문화는 점점 더 빠르게 변한다. 한 번 만들어진 '밈'의 전파는 더욱 빨라졌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자료사진). ⓒ pixabay

 
방송 뉴스나 영상 콘텐츠에 출연한 일반인 여성에게 별칭이 생기는 사례는 많다. 뉴스 인터뷰에 짤막하게 등장한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인터뷰녀'라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인터뷰녀'가 되는 사유는 다양하다. 외모가 준수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해서, 인터뷰 상황이 웃기거나 말투가 특이해서 등 오직 시청자의 평가에 달려있다.

특정 연예인이 연상되는 모습과 그가 인터뷰한 장소를 합친 'OO동 아이유녀', 지하철 연착으로 면접에 늦은 여성에게는 '우왕좌왕 면접녀', 운동하다가 실수로 공에 맞은 여성에게는 '공놀이 몸개그녀'라는 별칭을 붙이는 식이다. 이 여성들의 인터뷰는 편집되어 별칭과 함께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으며 10년이 지난 영상에도 현재까지 댓글이 이어질 정도다. 

문제는 '인터뷰녀'의 시작이 모두 당사자가 원치 않았다는 데 있다. 10초, 20초에 불과한 방송 뉴스 인터뷰 속에 나온 여성들의 외모와 말투를 평가하거나 그들의 대답을 통해 평소 성격을 마음대로 추측하기도 한다. 댓글에는 '못생겼는데 왜 OO녀(연예인 이름)로 불리냐', '역시 OO녀가 최고다', '인터뷰하는 거 보면 멍청할 것 같다' 등 무례한 댓글이 줄지어져 있다.

또한 개인적인 느낌이나 주관적인 감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답변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개념', '몰상식'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하고 이번 사례처럼 실제 인물과 무관한 특징을 마치 사실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인터뷰녀'로 박제된 영상과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지며 '밈'으로 소비되기 십상이다. 때로는 그들의 실명이나 소속 학교, 직장, 휴대폰 번호, 메일 주소 등 개인적인 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여성이 인터뷰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밈'(meme)이 되지 않을 권리

SNS나 유튜브 등 인터넷 문화는 점점 더 빠르게 변한다. 한 번 만들어진 '밈'의 전파는 더욱 빨라졌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밈'은 때때로 특정 사람이나 상황을 함축하는 고유 명사로 변하기도 한다.

여기에 여성들에게 거절당한 실제 경험담까지 더해지자, 해수욕장 인터뷰 속 여성은 여자들과 연애하고 싶은 남자들을 막아서는 밉상 캐릭터로, 누구나 언제든 편하게 조롱해도 되는 대상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기쁨,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섞인 평범한 휴가철 인터뷰였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여성에겐 '밈'이 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소중한 추억이 유희거리가 되어 인터넷에 떠돌지 않을 권리, 자신의 외모나 말투에 따라 '인터뷰녀'라 불리지 않을 권리. 한 번의 웃음을 위해 평범한 여성을, 또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야말로 결코 허락을 구할 수 없는 일이다. 2023년의 우리는 더 이상 여성을 향한 '밈'에 웃지 않아야 한다.
여성비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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