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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바라는 두 번째 우크라이나

[조지아] 독립기념일 트빌리시의 거리

등록 2023.06.13 11:48수정 2023.06.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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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전날부터 거리를 통제하며 여러 준비를 하던 것 치고, 거리는 의외로 적막했습니다. 점심 때쯤 되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오후가 되니 숙소 앞 중심가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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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의 조지아 의회 ⓒ Widerstand


사람들은 당연히 조지아의 국기를 들고 있습니다. 거리에도 국기가 여럿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깃발도 자주 보입니다. 유럽연합의 깃발, 나토(NATO)의 깃발, 그리고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의 깃발이 많이 보입니다.

꼭 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조지아 의회 앞에도 큰 유럽연합의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거리에 걸려 있는 우크라이나의 깃발은 이제 거의 낡아버린 것도 있더군요. 제 숙소에도 작은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으로 그린 조지아의 국기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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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걸린 우크라이나 깃발 ⓒ Widerstand


조지아가 우크라이나에 동지애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귀착입니다. 유럽연합과 나토에 많은 기대를 거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조지아의 현대사는 곧 러시아로부터의 극복이었으니까요.


1918년 5월 26일 독립한 조지아는 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에 병합되었습니다. 그리고 1922년 소련이 수립되죠. 소련 치하에서 조지아는 탄압의 대상이었습니다. 산업화도 크게 진전되지 못했죠. 스탈린은 스스로가 조지아인이었지만, 스탈린 시기 민족주의 탄압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도 조지아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 조지아는 상당한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탄압은 이어졌죠. 1978년에는 조지아인 탄압 문제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소련 해체 직전인 1989년에도 소련 연방군이 시위 진압에 투입되어 시민 2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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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의 유럽 광장 ⓒ Widerstand


소련 해체 이후에도 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1년 말 쿠데타가 발생하며 조지아 내전이 시작되었죠. 이 과정에서 소수민족인 압하스인과 오세르인이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각각 압하지야 공화국과 남오세티야 공화국을 세우고 사실상의 독립을 쟁취했죠.

압하지야 공화국과 남오세티야 공화국은 현재까지도 독립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영토와 국민을 실효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 국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의 지원을 크게 받았습니다. 특히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에 편입되는 방안도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태죠. 조지아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소수민족이 러시아의 손을 빌린 것이었지만, 조지아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내정 개입으로 느낄 개연성도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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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야의 영토 ⓒ Radio Free Europe

 
1993년 조지아 내전은 끝을 맺었습니다. 2003년에는 선거 부정에 맞서 '장미 혁명'이라는 시민 혁명도 발생했습니다. 불안한 경제 사정과 부패 문제 역시 혁명의 한 원인이 되었죠. 혁명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신정부가 수립된 이후 조지아의 친서방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러시아와 열흘 남짓 짧은 전쟁을 벌이기도 했죠. 독립국가연합에서 탈퇴하고 러시아와 단교를 선언하며 반러시아 외교노선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조지아에서는 정권 교체와 전직 대통령의 망명 등 여러 정치적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달라졌을 뿐, 조지아의 친서방 노선은 변하지 않는 상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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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 EU기를 팔고 있는 상인 ⓒ Widerstand


다른 옛 소련 국가와 달리, 트빌리시 시내에서는 키릴 문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조지아 문자와 라틴 문자가 대부분이었죠. 독립기념일을 맞아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반대하는 작은 시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조지아는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조지아 의회 앞에 유럽연합의 깃발이 걸린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팽창주의가 조지아를 갈림길의 어느 한 쪽으로 몰아넣은 셈입니다.

조지아의 독립기념일에 우크라이나의 국기를 들고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도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현재도 양국은 아주 가까운 관계입니다. 조지아의 전직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 망명해 오데사 주의 주지사를 지내는 일도 있었습니다.

두 나라는 모두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모두 국내 독립 세력과의 전쟁에 시달리기도 했죠. 조지아가 자신들이 두 번째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라 우려하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전략적인 중요성이 작았을 뿐, 전쟁의 목표물이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조지아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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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기 색으로 그린 조지아 국기 ⓒ Widerstand


독립기념일 트빌리시의 거리에서는 그런 위기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침략의 전야에 있다는 위기감이죠. 언제든지 조지아가 두 번째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우크라이나와 자유 세계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도 보였습니다.

장미 혁명 이후 조지아의 정치적 자유는 크게 신장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인권 문제 등에서도 주변 국가에 비해 가장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러시아를 멀리하고 자유세계와 걸음을 맞춘 외교노선 역시 이런 진보에 기여했을 것입니다.

2023년의 독립기념일은, 처음 조지아가 독립하던 1918년의 독립기념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제 사회는 위태롭고, 러시아의 팽창은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요. 러시아의 조지아 침략을 막지 못했던 과거 역시 다시 반복될까요.

우리의 미래조차 과거의 반복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예견된 비극을 막지 못하는 일이 다시 한 번 반복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여기, 평화를 바라는 두 번째 우크라이나에서는요.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조지아 #트빌리시 #코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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