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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견이 된 피해견, 진짜 가해자는 바로 보호자였다

[TV 리뷰] KBS2 <개는 훌륭하다>

23.05.30 14:31최종업데이트23.05.3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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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집단적인 왕따와 폭행은 인간들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피해자였으나 가해자가 되어버린 반려견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인간 사회의 데자뷔, 그리고 그 뒤에서 선의와는 별개로 갈등의 씨앗을 초래한 보호자의 책임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5월 29일 방송된 KBS 2TV 동물예능 <개는 훌륭하다>에서는 제주도에서 많은 반려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역대급 다견가정 '짱순이네'의 사연이 공개됐다. 퇴직 후 광주에서 제주로 이주한 남편과,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온다는 아내 보호자는, 실내견과 실외견을 포함하여 무려 40마리의 개를 동시에 키우고 있었다. 부부는 실내에서만 17마리의 비숑을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제주도로 이주한 후에는 무려 23마리에 이르는 유기견들을 입양하며 실외 견사와 테라스에 나누어 키우는 중이었다.
 
아내가 집안에서 사람과 반려견들의 공간을 구분하자고 요청했지만 남편은 이를 거부했다고. 제작진이 "강형욱 훈련사가 오면 비숑을 분리시켜 부부만 따로 지낼 수도 있지 않냐"고 제안했음에도 남편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원하지 않는다. 이대로가 행복하다. 불편한 게 없다"는 고집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듣고 있던 아내는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빠 보호자가 생각하는 고민은, 방문하는 외부인에 대한 단체 입질과, 비숑 무리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봄이에 대한 솔루션이었다. 덧붙어 아내 보호자는 반려견들과 잘 때만이라도 떨어져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강형욱은 "남편 보호자같은 스타일의 분들과 상담을 하다가 몇 차례 녹다운 된 적이 있다"고 고백하며 "저런 스타일의 속도와 말투로 어떤 공격을 해도 튕겨낸다"면서 솔루션이 험난할 것을 직감했다. 이경규 역시 "아내의 말도 안 듣는데 누구의 이야기를 듣겠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강형욱은 "비행기 탑승시간을 미뤄야 할 것 같다"며 솔루션 시작도 하기 전에 역대급 난제에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이경규와 게스트 문희경이 먼저 의뢰인을 방문했다. 비숑들은 두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외부인을 경계하며 입질과 위협을 거듭했다. 다견들이 끊임없이 짖어대는 엄청난 소음에 인터뷰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산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봄이였다. 보호자 부부는 봄이가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잠시만 사람 곁에서 떨어지면 다른 개들로부터 집단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호자가 없는 틈에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공격을 당하여 피를 흘렸던 사건도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봄이는 보호자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아내 보호자는 반려견을 켄넬에 분리하고 싶어했지만 숫자가 늘어나면서 훈련을 포기하고 통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한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냥 행복하다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떤 게 더 나은 생활방식인지 찾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켜보던 강형욱은 돌아온 이경규와 문희경에게 "사람에게 달라붙는 봄이의 행동은 애교가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헬프미'의 의미"라고 분석했다. "다견 집단에서 하지말아야 할 행동이 편애다. 한 마리만 예뻐하다가 내려놓는 순간 다른 개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강형욱은 해당 다견가정의 상황에 대하여 "굉장히 잘못된 곳이다. 반려견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게 아니라 조급해 보인다"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강형욱이 솔루션을 위하여 보호자의 집을 찾았다. 미처 안으로 들어서서기도 전에 강형욱은 입구를 가로막은 다수의 비숑 떼에 진로가 막혔다. 결국 보호자들로 하여금 반려견들에게 일일이 목줄을 차게하고 입질이 유독 심한 몇몇 개들을 통제하게 하면서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강형욱은 "여기서는 누구든 집단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개들간 서열이 어설프게 잡혀서 1인자가 내려가면 2인자가 대장 노릇을 하려한다"고 상황을 분석했다.
 
강형욱은 먼저 보호자들이 반려견들에게 집안의 질서와 서열을 분명히 각인시킬 것을 주문했다. 솔루션 진행 중에 반려견 중 하나인 사랑이가 다른 개들에게 집단으로 공격 당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강형욱이 강하게 다른 개들을 제지했지만 당황한 보호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강형욱은 "이게 현실이다. 사랑이가 왜 짖는 줄 아시나? 내가 왕따가 될까봐 짖은 거다. 그래서 앞장서서 집단공격을 주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편 보호자는 "사랑이가 어렸을 때 집단 공격을 많이 받았었다. 크니까 반대가 됐다"면서 알고보니 사랑이가 '가해견이 된 피해견'이었음을 고백했다.

강형욱은 "왜냐면 그걸 안 하면 내가 왕따가 되니까"라고 설명했다. 유리한 집단에 편승하여 약한 집단을 괴롭히기, 내가 앞장서서 괴롭히지 않으면 내가 그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어쩐지 인간 사회의 학교폭력이나 조직 사회의 집단 따돌림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또한 강형욱은 "어떤 개든 누구 한 마리를 잡고 있으면 똑같이 공격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현재 가장 피해자인 봄이 역시 "장담하는데 교정되는 과정에서 봄이도 가해견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봄이를 괴롭히던 다른 개들이 목줄을 차고 통제를 받는 상황을 지켜보며, 봄이는 좀 전의 주눅들어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이제 내 시기가 왔으니까. 내 서열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는 게 강형욱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남편 보호자에게 강형욱은 이날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이곳은 절대로 행복한 집이 아니다. 마치 정부가 없는 나라와 같다. 누구나 가해견이 될 수 있다"고 직설을 날리며 보호자의 안이한 착각을 꼬집었다.
 
상황이 진정된 후 머쓱해하는 보호자들에게 강형욱은 재차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 누가 누구를 공격한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약한 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더 약한 개를 만드는 구조"라고 안타까워하며 "그래서 이기적인 집단이 된 거다. 같이 따라서 짖지 않으면 내가 괴롭힘을 당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형욱은 "실례되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상황의 가장 실질적인 가해자는 바로 보호자들"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처음 반려견들을 데려온 것은 선의였을지 모르지만,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개들의 집단 갈등과 폭행을 방치하고 방관하면서 거대한 지옥도를 연출한 꼴이 되고 말았다. 보호자들은 강형욱의 따끔한 지적에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솔루션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개들은 잠시 통제를 받고는 있지만, 여전히 언제든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상태였다. 강형욱은 "지금 개들의 반응은 '지금 우리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고 으르렁거리며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몇마리가 주동을 하면 다른 개들도 가담할 것이다. 매일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냐"며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강형욱은 먼저 다견가정을 위한 규칙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자유배식 대신 개별 밥그릇을 통한 제한급식, 마당을 통한 실외 배변의 습관화 등을 당부하며 "집안의 주도권은 보호자들에게 있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부 반려견들을 따로 분리시킬 것을 조언했다.
 
한편으로 강형욱은 "분리시킨 개들도 자기들만의 서열을 또 만들 수가 있다. '우리는 서열이 없다. 보호자를 제외하고 모든 개들은 다 평등하다'는 것을 계속 가르쳐줘야 한다"고 강조하며 "착한 아이들은 지키고 못된 아이들은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형욱은 반려견들을 성향별로 그룹을 나누어 양육할 것을 제안했다. 시간을 정하여 잠을 잘 때는 켄넬에서, 아침은 마당으로 내보내고, 반려견들의 출입금지 장소를 만들어 보호자들의 리더십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도록 했다. 강형욱의 솔루션에 따라 규칙과 통제가 이루어지며 어수선하던 집안은 평화를 찾았다.
 
아내 보호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솔루션이 이루어진 데 큰 만족감을 전했다. 남편도 "아내와 저랑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 강형욱 훈련사가 적절히 조화를 시켜줬다"며 고집을 꺾고 변화를 받아들였다. 현재 짱순이네는 강형욱의 솔루션에 따라 팔로어 그룹은 1층 거실, 주도적 그룹은 앞마당 테라스, 소극적 그룹은 뒷마당 테라스로 공간을 분리하여 통제와 질서를 찾았다.
 
이날 강형욱의 마지막 조언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반려인에게는 개를 키울 때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는 사랑밖에 없다. 그 사랑이 '잘못된 공정함'으로 변질된 것"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날렸다. 지켜보던 문희경은 "사랑을 내려놓는 법도 배워야할 것 같다"며 공감했다.
 
강형욱은 진정한 사랑과 무절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반려견 보호자들을 향하여 "'나로 인하여 아이들이 정말 행복한가', '나의 잘못된 사랑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한 건 아닌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지금 현실의 인간 사회와 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입해도 다르지 않은 교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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