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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진실화해위, 민간인 학살 사건 축소 말라"

정연조 진주유족회장 강조 ... 21일 오후 진주 초전공원 추모탑에서 추모제

등록 2023.05.21 17:25수정 2023.05.2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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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초전동 초전공원 추모탑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73주기, 제15회 합동추모제” ⓒ 강호광

 
"아버님께서 겪으시고 당하셨을 고초와 만행에 이미 눈물도 말랐고 할 말도 잃어버렸습니다. 아! 분하고 원통하고 한이 맺혀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길이 없습니다. 저 푸른 강 건너 송백산 비둘기야 구구구 슬피 울어라. 저 푸른 강 건너 송백산 뻐꾸기는 피를 토하고 우는구나. 아버님, 아무리 슬퍼도 정신을 차려야지요.

이 몸 늙었어도 아직 의욕은 충만합니다. 남은 유해 발굴 작업을 마치겠습니다. 유전자(DNA) 검사를 추진하여 아버님을 가족들 품에 안겨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맑은 술 한 잔 올리오니 많이 많이 흠향하시옵소서."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초전동 초전공원 추모탑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73주기, 제15회 합동추모제"에서 제례를 지내면서 읽은 축문이다. 정연조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진주유족회장을 비롯한 제관들은 73년 전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며 엎드려 빌면서 술을 따라 올렸다.

추모제는 서봉석 전국농민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영남범패의 "위령 법회"와 전통제례에 이어 합동위령제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는 2000~3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2022년 3월 준공된 추모공원 내 추모탑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정연조 회장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는 민간인 학살사건의 축소에 앞장서지 마시기 바란다"는 제목의 개회사를 통해 "우리는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학살당하신 원한 맺힌 영령들께 눈물로 빚은 술 한 잔 올리기 위해 모였다"고 했다.

그는 "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인 국가를 대신하여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을 신청한 유족들에게 더 엄밀하고 정확한 증거를 요구하고 있으며, 발굴한 유골을 근거로 유전자 감식을 통한 신원 확인에 대해 계속 침묵하고 있다"며 "항간에는 지금까지 발굴한 유골들도 모두 화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고 퍼져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1기 진실화해위 때 군인과 경찰은 자기들의 만행을 인정하면서 국방부와 경찰청에서 제수 비용도 지원하였다"며 "진주지역에서 발굴하고 수습한 유골 숫자가 지금까지 모두 450구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실을 규명한 사람의 수가 모두 150여 명에 불과하다. 수습한 유골의 1/3에도 못 미치는 분들만이 진실규명을 받았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2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50여 명이고, 2기에 신청한 유족들에게는 계속 다른 증거, 더 명확한 증거를 요구하며 진실규명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은 "민간인 학살은 국가가 공권력으로 저지른 범죄행위이고 이에 관한 증거는 모두 국가가 가지고 있다"며 "학살사건은 계획적이었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국가가 증거를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증거이다. 이유는 유가족들에 대해서는 1980년 이전까지 연좌제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사회진출을 제한해 왔다. 이것은 피학살자 신원을 국가가 명확한 기록으로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연조 회장은 "만약 그러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거자료가 없다면 신원조회 기록으로 피학살자 명단을 복원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해서 정확하고 명백한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에는 침묵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데도 진실규명 신청자에게 증거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할 수밖에 없고,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인 국가의 기관이 피해자인 유족이나 신청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골 숫자보다 적은 진실규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물은 정 회장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의 입법 취지는 왜곡되고 은폐된 과거사 사건들의 진상을 밝혀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을 화해와 화합으로 이끄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에 대해 정연조 회장은 "민간인 피학살자 명단을 찾아 공개하라. 만약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1980년 이전까지 이루어졌던 민간인 신원조회 기록을 바탕으로 민간인 피학살자 명단을 복원해서 공개하라. 이것이 과거사 정리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 검사와 관련해, 정 회장은 "지금까지 발굴된 유골에서 유전자를 채취하고 분석해서 그 자료를 보존하며, 생존 유족들의 유전자를 채취 분석하여 유골의 유전자 분석자료와 대조하고 유골의 연고자를 찾아내어 유족의 뜻에 따라 유골을 돌려달라. 이것은 사건의 책임이 있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1기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을 받은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민간인 학살자 복원 명부에 의해 학살 사실이 확인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확인된 유족에 대해서는 소송의 절차 없이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입법을 추진 또는 국회에 건의하고 대통령에게 권고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아무리 입증의 책임이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람에게 있다는 법적 논리를 넘어, 국가 범죄임을 직시하고 국가가 직접 반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유족들의 진술과 의견이 최대로 존중되는 진실규명을 요구한다. 적어도 유골의 숫자보다 피학살자 수가 적다는 억지는 없어지기를 바란다"며 "진실화해위의 존속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지금 당장 화급한 사항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복영 전국유족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과거의 억울한 죽음의 가해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꼭 밝혀져야만 하고, 과거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아픔의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이 아픔을 이젠 우리 당대에 끝내야 한다. 이 아픔을 우리의 아들딸, 손자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했다.

조규일 진주시장, 박대출 국회의원(진주갑), 강민국 국회의원(진주을), 김진부 경남도의회 의장, 양해영 진주시의회 의장, 이창열 진주경찰서장은 추모사를 서면으로 보냈다. 진주유족회는 합동위령제 때 이들 인사의 추모사를 순서에 넣어 놓았지만 모두 참석하지 않아 자료집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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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초전동 초전공원 추모탑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73주기, 제15회 합동추모제”. 정연조 회장. ⓒ 강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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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초전동 초전공원 추모탑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73주기, 제15회 합동추모제” ⓒ 강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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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초전동 초전공원 추모탑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73주기, 제15회 합동추모제” ⓒ 강호광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진주유족회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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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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