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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로봇 심판, '현장 납득' 과제 안았다

[고교야구] 로봇 심판에 '공정하다' vs '기존과 너무 다르다' 반응 엇갈려

23.04.14 15:54최종업데이트23.04.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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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이마트배가 진행되는 목동야구장에서 구심이 이어폰을 꽂고 있다. '로봇 심판'으로부터 신호를 받는 것이다. ⓒ 박장식

 
목동야구장 심판실.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빨려들어가자 '삑' 소리가 울려퍼진다. 로봇 심판이 이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한 것이다.

심판실의 심판은 소리를 낸 로봇 심판 기기를 가리키며 "구심에게 연결된 무선 이어폰으로 이 소리가 전달된다"며, "로봇이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투수가 던진 공이 약간 가운데를 빗겨나 들어가자, 이번에는 기기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로봇 심판'이 제 일을 하는 모습이다.

신세계·이마트배를 시작으로, 올해는 모든 고교야구 전국대회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이른바 '자동 볼·스트라이크 시스템'. '로봇 심판' 내지는 'AI 심판'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익숙한 로봇 심판이 다섯 번째 심판으로 나서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질 법하다. '로봇 심판', 과연 후기가 어땠을까.

판정 결과 빨라졌지만... 돌발 상황도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열여섯 개의 학교가 이 시스템을 처음으로 실전에서 경험했다. 신세계·이마트배의 목동야구장 경기부터 적용된 '로봇 심판'은 지난 4월 3일 실전에 앞서 시험 운용에 들어간 뒤 4월 4일 경기부터 결승전까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로봇 심판의 판정이 '최초이자 최종 판정'이 되는 셈.

기준은 어떨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자료에 따르면 '로봇 심판'은 홈플레이트 앞쪽에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하고, 그 스트라이크 존을 지난 공이 홈플레이트 뒷면 스트라이크존까지 모두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한다. 물론 고교야구의 볼 판정이 다른 것을 감안해 KBO보다 스트라이크존을 넓혔다는 것이 협회 관계자의 설명.

초기 로봇 심판에 비해 더욱 빠르게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 반갑다. 트랜스폰더와 연결된 무선 이어폰을 착용한 구심이 '로봇 심판'으로부터 신호를 받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가는 순간 스트라이크 콜을 외칠 수 있을 정도다.
 

이른바 '로봇 심판'의 기준점. ⓒ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제공

 
물론 초기인 만큼 돌발 상황도 나왔다. 한 경기에서는 쓰리 볼 상황 구심의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지 않자 볼넷인 줄 알고 타자와 주자가 다음 루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구심이 트랜스폰더 문제로 스트라이크 콜을 못 들어 판정이 잘못되었다 정정하자 2루수가 2루에 도착한 주자를 태그했고, 이 탓에 2주 주자의 아웃 여부를 두고 경기가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마다, 경기마다 달랐던 스트라이크 존이 한 기준으로 통합되었다는 점이 학부모에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한 학부모는 "지금까지 아이들이 볼 판정에 가장 민감했었다"면서, "로봇 심판이 잘 정착되면 경기 도중에 볼·스트라이크 여부를 두고 다투는 일도 없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로봇 심판 판정 중요해... 납득 가게끔 정했으면"

가장 중요한 선수들과 지도자의 반응은 어떨까.

한 고등학교 지도자는 "로봇 심판의 적응에 이번 대회 애를 많이 먹었다"면서, "아래로 깔리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고, 평소 투수들에게 스트라이크로 받아들여지는 공이 볼로 판정나니, 선수들에게는 이득이 되는 상황과 이득이 아닌 상황이 같이 나오는 것 같다"며 말했다.

'로봇 심판'의 도입에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이른바 '입시 비리'였다. 하지만 이 지도자는 "입시 비리는 고교 감독들이 이른바 '뒷돈'을 받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면서, "차라리 판정 때문에 선수들의 진로에 불이익이 가는 것이 문제였다면 구심들에게 판정에 따른 점수제를 고안하는 것이 맞지 않았나"며 목소리를 냈다.

이어 이 지도자는 "당장 볼넷을 얻은 줄 알고 걸어나가는데 스트라이크 콜을 외치는 경우도 많지 않았나"라면서, "여러모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며 로봇 심판에 대한 후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심판에게는 항의라도 할 수 있지만 로봇에게는 항의조차 못 한다"며, "현장에서 납득이 가게끔 판정 기준을 정해야 할 것 같다"며 의견을 냈다.

다른 지도자 역시 "심판이 보아왔던 판정선과 아예 다르다"면서, "처음 써봐서 더욱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아직은 종을 못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은 손 봐야 할 점이 많다"며 아쉽다는 의견을 냈다. 이 지도자는 "로봇 심판의 판정을 오류로 받아들이게끔 해서 신뢰를 잃는 상황이 생기면 안 되지 않겠느냐"며 덧붙였다.

선수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한 선수는 "나는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심판의 판정이 아닌 AI에게 맞추는 느낌이 나니 경기보다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선수는 "AI 심판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조금 판정 기준이 다른 느낌이 있었지만, 적응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내놨다.

전 경기 '로봇 심판' 도입 청사진... 현장 목소리 반영 잘 되길
 

목동야구장 심판실에 '로봇 심판'이 신호를 전달하는 트랜스폰더가 놓여 있다. ⓒ 박장식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는 다음 대회인 황금사자기부터 모든 전국대회에 '로봇 심판'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신세계·이마트배를 통해 로봇 심판이 잘 정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결승전에서도 낮게 깔리는 변화구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온다는 항의가 나온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이 들어간다는 것이 협회의 말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모토로 삼아 본격적으로 도입된 '로봇 심판'. 하지만 첫 대회는 아쉬운 모습이 더욱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서의 반응도 '도입 초기이니까 일정 부분 이해한다'는 말이 기저에 있었지만, 야심차게 도입된 로봇 심판이 일정치 않은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신뢰를 잃는다면 그만큼 아쉬운 일이 없다. 

특히 심판의 판정에 불신을 낳게 된 계기가 경기마다, 상황마다 다른 스트라이크 존이었던 만큼, 매 대회 지적과 항의를 받고 스트라이크 존을 바꾸는 선택보다는 현장의 의견을 한 번에 받아 적절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최소한 한 시즌을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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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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