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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한 KBO,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

[주장] 기본과 원칙 무시한 성적 지상주의 등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 많아

23.03.17 15:07최종업데이트23.03.1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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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KBO)가 최근 야구대표팀의 계속된 부진과 국제경쟁력 하락에 대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KBO는 지난 3월 16일 실행위원회를 마친 뒤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이들은 사과문을 통해 "KBO(총재 허구연)는 야구대표팀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과 경기력을 보인 점에 대해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야구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KBO와 10개 구단은 이번 WBC 대회 결과에 큰 책임을 통감하며, 여러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KBO는 16일(목) 2023년 제 2차 실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사안을 깊이 있게 논의했으며 리그 경기력과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하기로 했습니다"라며 개혁을 약속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2승 2패로 조 3위에 그치며 탈락했다. 야구대표팀은 2013년, 2017년에 이어 WBC에서도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4위)과 함께 한국야구의 추락한 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아래로 꼽혔던 호주에 7-8로 일격을 당했고, 라이벌이던 일본에 4-13으로 참패하며 벌어진 격차를 확인한 것은 큰 충격을 남겼다.
 
후폭풍도 거세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오랫동안 대표팀을 이끌어온 김현수-김광현 등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2000년대 한국야구 중흥기를 이끌었던 황금세대의 퇴장으로 '세대교체'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다. 과도한 몸값에 비하여 실력과 프로의식이 떨어지는 선수와 리그에 대한 '거품론'도 나오고 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두고 야구인 선후배들끼리 서로 날선 말을 주고받는 '내전' 양상까지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KBO의 이번 사과문 역시 문제의 핵심이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이 형식에만 그친 보여주기식 사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대회의 계속된 부진은 우연이 아니라 한국야구에서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구조적인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KBO도 사과 한번으로 당장의 여론을 무마하는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보다 실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현 집행부를 포함하여 KBO리그는 그동안 주로 경제적 가치와 외연 확장에만 너무 치중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프로는 비즈니스이기에 당연한 측면도 하지만, 프로야구를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 핵심은 어디까지나 야구 그 자체의 질적인 완성도가 우선이다.
 
유소년에서 프로에 이르는 선수 육성 시스템부터 '새판짜기'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많은 야구인들은 이번 WBC에서 드러난 한국야구의 대형투수와 거포부재 현상이 유소년 야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과 체격이 비슷한 일본은 150Km대에 강속구에 제구력까지 갖춘 젊은 투수들이 수두룩하고 타선도 40-50홈런을 때려낼수 있는 거포들이 즐비하다. 오타니같이 투타에 걸쳐 메이저리그를 정복한 슈퍼스타도 있다.
 
반면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투수 유망주들이 볼스피드에만 집착하고 제구력과 경기운영능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또한 아마야구에서 반발력이 낮은 '알루미늄 배트'가 퇴출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직 몸이 완성되지않은 어린 타자들은 나무배트로는 공을 맞히는데만 급급하다보니 파워가 줄어들고, 투수들은 국내에서는 구위만으로 웬만한 타자들을 찍어누를수 있다보니 실력이 과대평가되고 제구력을 소홀히 여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
 
'훈련량의 차이'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관리야구와 선수보호, 아마선수들의 학업에 대한 인식 등이 높아졌고, 현장 코칭스태프들의 권위와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과거처럼 선수들에게 강압적인 훈련을 강요하거나 혹사시킨다는 논란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선수들의 자기개발과 프로의식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훈련량이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막연히 훈련방식이나 양에서 일본이나 미국을 모방하는 게 아닌, 한국야구만의 상황에 맞게 기준점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팀 운영시스템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2017년 WBC(김인식 감독)과 2018년 아시안게임(선동열 감독) 2020 도쿄올림픽(김경문 감독)에서 잇달아 부진과 논란에 휩싸였을 때는, 현장감각이 떨어지는 전임제 국가대표 감독들의 독선과 무능이 약점으로 거론됐는데, 이번 WBC에서 현역 프로 사령탑이 이강철 감독을 선임했는데도 부진하자 또다시 전임감독제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프로 감독이 대표팀을 병행하는 것과 전임감독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이끌었던 김경문, 2006년 WBC 4강과 2009년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은 당시 모두 프로팀 감독을 병행하면서 성과를 냈다. 또한 김인식 감독은 2015년 프리미어12를 맡았을 당시에는 정반대로 프로무대를 떠난 지 6년이 넘은 상태로 사실상의 전임감독이었지만 현장감각의 우려가 무색하게 우승을 견인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독의 능력 그 자체이지 전임과 겸임의 차이는 아니다.

문제는 감독보다 일관성있는 대표팀 운영과 지원 시스템에 있다. 이번 대표팀이 WBC에서 부진했던 이유는 물론 실력차가 가장 컸지만, 전지훈련 장소선정에서부터 체계적이지 못한 대표팀 운영으로 선수단의 컨디션 관리에 실패한 탓이 가장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요한 국제대회에 임하는 대표팀만의 고유한 매뉴얼과 노하우가 부족했고 연속성이 단절되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WBC 국가대표였던 이정후는 국제대회가 있을때만 대표팀을 소집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손발을 맞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여기에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축구의 A매치처럼 다른 나라 팀과의 친선경기를 추진하여 대표팀이 평소에도 꾸준히 국제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라이벌 일본이 어떻게 대표팀을 어떻게 운영하고 국제경쟁력을 재건해왔는지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일본은 2000년대 초중반 WBC와 올림픽 등에서 한국에 여러 번 패배하면서 큰 자극을 받았고 대표팀 운영체계를 크게 개선했다. 전임감독제를 도입했고 매년 호주·대만·멕시코 등과 평가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2020년대 일본 야구판 황금세대의 등장과 도쿄올림픽 금메달-WBC 5회연속 4강이라는 빛나는 성과였다.
 
우리 나라도 정기적인 교류전 형식으로 일본과의 A매치 평가전을 추진한다면 선수들의 국제경쟁력 향상과 야구 흥행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구계 현실과 동떨어진 유소년 선수 정책,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성적 지상주의, 실력에 비하여 과도한 연봉 거품 등, KBO리그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는 너무나도 많다. 한편으로 그만큼 이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야구계 내부에서 자발적인 희생이나 개혁만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사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도 KBO와 야구계 내부만 막연히 믿고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비판과 견제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한편으로 야구계 비주류와 재야는 물론이고 일반 팬들과 외부 전문가들까지 참여하여 야구 현안에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야구인들 역시 이번의 위기를 두고 더 이상 남탓과 변명으로 집안싸움을 벌이기보다는, 힘을 합쳐 솔선수범하는 희생과 책임감을 먼저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변화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할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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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대국민사과 허구연총재 야구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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