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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할 시간 없는 한국야구, 이제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KBO리그] 앞을 내다봐야 하는 한국야구... 구성원 전체가 바뀌어야

23.03.15 16:55최종업데이트23.03.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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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한국야구에서 '참사'라는 단어가 종종 나오곤 했지만, 가장 충격이 컸던 시기는 2013년이었다. 2006년 4강 신화, 2009년 준우승까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만 나갔다 하면 호성적이 기본으로 따라왔던 대표팀이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탈락한 해였다.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국은 2년 뒤 프리미어12에서 '기적'을 써내며 초대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4강에서 만난 일본 선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에게 경기 내내 끌려다니고도 9회초에 일궈낸 역전극으로 그 이전의 과정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우승 트로피를 올렸으니 목표를 이룬 셈이었다.

그 기쁨은 2년도 채 가지 않았다. 2017년, 한국야구는 WBC에서 2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인다. 심지어 1라운드 본선 개최국이었음에도 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흥행' 면에서도 저조한 평가를 받아 여러모로 상처만 남은 대회였다. 다르게 보면,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의 모습, 전날 진행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B조 한국-중국전이 재방송되고 있다. ⓒ 유준상

 
한국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던 곳들이 많았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을 제외하면, 한국야구가 정상에 올라선 대회는 2015년 프리미어12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2019년 프리미어12 준우승, 2021년 도쿄올림픽 4위로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었다.

단순히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올림픽에서는 마이너리거들 위주로 출전한 미국, 국제대회 때마다 저력을 발휘했던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보다 앞서 개최된 2019년 프리미어12에서는 슈퍼라운드서 격돌한 대만에 0-7로 영봉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미 다른 국가들과의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올해 WBC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B조에 속한 팀들 가운데 일본을 제외한 팀들은 전력상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호주, 체코 모두 만만하지 않았다. 자국 리그서 뛰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린 호주는 그 이전 대회들보다 훨씬 짜임새 있고 조직력을 갖춘 팀으로 거듭났다. 덕분에 사상 첫 WBC 2라운드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본 투수들 못지 않게 호주 투수들도 마음 놓고 강속구를 뿌릴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점도 눈에 띄었다. 한국 타자들이 호주전에서 7점이나 뽑기는 했으나 양의지의 3점포, 박병호의 1타점 2루타를 제외하면 경기 내내 답답한 흐름을 이어갔다. 예상보다 훨씬 호주 투수들의 공이 까다로웠다.

B조뿐만 아니라 다른 조에서도 예상을 뒤집는 팀이 나타났. A조는 5개 팀 전부 2승 2패를 기록하고 실점률(실점/아웃카운트)로 순위를 따졌고, 그동안 야구와 거리가 멀었던 이탈리아가 조 2위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축구종가'로 여겨진 영국은 14일(한국시간) 콜롬비아와의 C조 3차전서 7-5로 역전승을 거두고 영국 야구 역사상 첫 WBC 승리를 맛봤다.

그동안 KBO리그도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쳤다. 수년간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젊은 투수가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각 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젊은 야수들도 꽤 보인다. 문제는 우리보다 변화의 속도가 빨랐던 곳이 많았다는 점이다. '상향 평준화'로 나아가는 야구의 트렌드에서 한국만 한 걸음씩 멀어져갔다.
 

3일에 진행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서포터스 발대식 이후 기념사진 촬영에 임한 야구대표팀 ⓒ 유준상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대회를 본 야구인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고교 선수들이 사용하는 배트를 알루미늄 배트로 바꿔야 한다', '기본적인 훈련량이 부족하다', '공이 빠른 투수가 없다', '한국의 오타니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다' 등 같은 결과를 놓고서도 조금씩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없는 내용이다. 다만 의견들을 종합해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제는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한국야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일본, 미국 등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배워야 한다.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 향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훈련량을 늘린다거나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근시안적인 비판에 불과하다. 프로 선수들, 더 나아가서 꿈을 키워나가는 학생 선수들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지도자가 달라지면 선수들도 달라지고, 리그 수준 향상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국제대회 성적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늘 국제대회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할 때면 '거품론', '리그 흥행'과 엮어 클릭수를 유도하는 기사가 양산되기 마련이다. 2021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그랬다. 평소 KBO리그에 큰 관심이 없고 국제대회 경기만 보는 국민이라면 이러한 기사에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이 텅 빈 콘텐츠들은 장기적으로 한국야구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미디어의 몫이다. 기획 기사가 될 수도 있고 TV 토론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야구계도, 미디어도 폐쇄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면 기본부터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좌절할 시간이 없다. 당장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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