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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시간을 경유하는 오래된 커플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23.02.10 14:07최종업데이트23.02.1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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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래 만난 커플이 헤어지고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뒤 다시 만나면서 각자 서로가 품었던 감정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다룬다. 본래 처음 출발점은 꽤나 간소했던 이야기다. 헤어진 커플이 각자 새로운 삶을 살던 중 재회하게 된 순간에 초점을 맞춘 단편 제작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을 위한 투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기왕이면 장편으로 만들어 개봉으로 간다'라는 흐름으로 급물살을 타고 확장되어 완성된 게 현재의 장편 개봉영화 프로젝트인 셈이다. 즉 영화 전체 분량을 놓고 보자면, 30분 남짓한 후반부가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원형 격이다. 그리고 1시간이 넘는 전반부 설정과 전개부분은 오히려 처음 이야기에 추가되는 상황설정과 배경해설에 가까운 구조다.
 
이렇게 원래 소소한 출발점에서 여러 사정을 고려하다 판이 확 커지는 유형은 요즘 독립영화 판에서 드물지는 않은 풍경이다. (절대량은 부족할지언정) 예전에 비해 공/사 영역을 막론하고 각종 제작지원제도가 확대된 상황이 첫 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로는 웹 드라마나 중단편 기획으로 출발한 작업이 기왕이면 극장개봉과 이에 연계되는 2차 판권 시장을 노리기 위해 차라리 장편을 제작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의 결과다. 이렇게 장편 독립영화(혹은 저예산 상업영화) 제작편수가 확대되는 추세다. <우린 어쩌면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그런 부류의 전형적 예시에 속한다.
 
영화의 두 남녀 주인공, 준호와 아영은 현실의 장기연애 중 끝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1년 쯤 지나 서로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만난다. 이별을 경험한 커플들에겐 익숙하게 보일 캐릭터들이다. 둘은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기에 그들이 공유하는 지점과 애증이 교차하는 잔상이 결코 단지 미련이라 치부할 수준으로 가벼울 리 없다. 대학교 같은 과 커플로 만나 30대 중반 넘어선 이 커플은 십년을 훌쩍 넘겨 강산이 변할 만큼 둘만의 시간을 공유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은 각자 새로운 인연을 형성해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딱 한번이라 다짐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각자가 품은 감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어찌 보면 쉽게 짐작 가능한 간단한 설정과 이야기일 테다.
 
독립영화와 저예산 상업영화 구분선 경계에 선 영화
 

▲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특별시SMC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볼 땐 편한데 구분해 정리하기가 퍽 난감한 작품이다. 우선 근래 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특정 부류의 혼종 영화들의 전형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감성적인 접근법을 취하며 개인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런 유형의 영화들은 어떻게 분류해야할지 무척 난감하게 만드는 중이다. 단지 구분의 편의를 쫓는 게 아니라 그 경계구획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광의적 의미로 상업영화 대 독립영화로 억지로 나눠본다면 과연 본 작품은 어디에 놓여야 할까 선택이 쉽지 않다. 독립예술영화 또한 극장개봉 전제로 제작되고 유통되는 현실에서 장편의 경우는 참 구분 짓기 힘들어졌다.
 
다음으로는 영화가 담은 주제나 배경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상업적 흥행을 필수로 고려하게 된 현실에서 그 간격은 거의 형해화가 이뤄진 상태다. 수익을 내는 흥행요소를 필수로 전제하면서도 사회적 소재를 적절히 가공해 파장을 불러오고 영향력을 확산하려는 사회파 상업영화가 늘어나는데 비해 마치 반비례하듯 예전에 비해보면 정치사회적 발언수위가 세지 않은 독립영화 간 경계는 쉽게 무 자르듯 가르기 난망해진지 오래다.
 
극장개봉을 중심으로 제작과 배급이 이뤄지는 실정에서, 극장 대 비 극장(공동체) 상영으로 나누려는 시도도 대안으로 세우기엔 힘들다. 오히려 비 극장 상영은 다소 변형된 영화흥행 시장에서 기존의 상업영화가 더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형국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된 2차 판권시장에서 검색에 노출되는 극장개봉 상업영화 타이틀이 더 쉽게 선택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복합상영관이 지배하는 현재 극장환경에서 입소문을 타고 가늘고 길게 장기흥행 노리는 성공사례 흡사 대중가요 판에서 '역주행' 사례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승부의 대부분은 개봉 시점까지 얼마나 홍보마케팅이 잘 되고 상영관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는지에 좌우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예산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의 경계는 극장개봉 측면에서는 '수렴진화'를 방불케 할 만큼 비슷하게 닮아가기 시작한다. 상품으로 유통 구조 및 방식이 동일하게 작동하는데다 소재 측면 역시 큰 변별력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과 감성이 부각되고 세태를 적절히 반영하되 예전처럼 사회적 역할과 입장이 지상명제는 아니게 되었다. 출발점에서부터 개인(들)의 수많은 사정을 세대론 적인 관점과 자기반영적 내용으로 채우게 된 독립영화 대다수는 (여러 조건들로 인해) 비교적 작은 이야기를 극히 섬세한 톤으로 다루는 저예산 상업영화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상태다. 그렇게 다른 뿌리에서 나온 둘은 현상적으로는 급속히 닮은 형상을 취하게 되어간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요즘 목격한 동류의 작업들 중에서도 이런 혼종 측면을 가장 제대로 드러내는 영화다.
 
독립영화계 총동원령을 내린 것 같은 올스타 출연진의 매력
 

▲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특별시SMC

 
서현우 배우의 초기 필모그래피 중 반드시 호명되는 단편 <병구> 등을 연출하고 정가영 감독의 <밤치기>에선 주연을 맡는 등 지난 10여 년 동안 다양한 영화작업을 거쳐 축적된 감독의 인적 네트워크는 이 작품에서 가히 풀가동되다시피 한다. 게다가 캐스팅 가능한 조건 내에서 심사숙고를 거쳐 공들인 티 나는 주연배우 진용은 이 영화를 보게 될 이들에게(한국독립영화에 대해) 아는 만큼 더 큰 포만감을 제공할 것이다. 선구안이 있는 이들에게는 영화의 출연진 명단은 정말이지 차고 넘치는 성찬에 비길 만한 위용을 선보인다.
 
주연이라 할 4인방 중 이동휘, 정은채 배우는 속된말로 이 체급에 등판하는 것 자체가 깜짝 회자될 정도로 메이저급에 해당된다. 그리고 둘을 이어 준 주연에 속하는 강길우, 정다은 배우 역시 캐스팅만으로 화제성이 충분한 수준이다. 두 배우는 서로 정반대 방향, 즉 한 명은 독립영화에서 상업영화와 드라마 판으로 진출하는 중이고 한 명은 아이돌에서 출발해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보폭을 확장하는 중이다. 그렇게 눈여겨볼 만한 행보를 보이던 두 배우가 비록 서로 극중에서 만나진 않지만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현장에서 합류한 셈이다.
 
불쑥불쑥 스쳐 지나가는 숱한 우정과 특별출연 배우들 명단은 꼬아서 본다면 과유불급으로 보일 정도로 쏟아져 나올 지경이다. 물론 좋게 보면 감독과 제작진을 응원하려는 업계 종사자들 우애가 폭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카페나 식당 직원, 부동산 사무소에 들른 건물주, '길빵'하는 고등학생들까지 누군지 유심히 살피면 빵 터진다. 정말 숨은 그림 찾기 수준으로 카메오가 그득하다.
 
독립영화계를 가뿐히 초월하는 인지도를 가진 이동휘, 정은채 배우는 영화 내내 종횡무진 자신들의 색다른 면모를 화면 가득 각인시킨다. 각각 본인이 선보일 수 있지만 온전히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해온 멜로드라마의 '헐렁이' 주인공 캐릭터, 배우 특유의 단아한 선에 패션리더 면모를 덧붙여 처연한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이미지를 발산해낸다. 둘 다 배우 고유의 선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의 장기를 확장할 기회를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배우들의 팬이라면 꼭 봐야 할 이면의 매력 포인트가 만개한다.
 
이에 비해 둘과 현실의 관계를 쌓는 중인 강길우, 정다은 배우 활용법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둘에게 부여된 매력 있는 캐릭터성과 등장 초반의 인상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고정적인 역할로 배우 활용이 제약되는 점이 못내 아쉬운 편이다. 두 캐릭터는 모두 주인공 커플이 서로에게 기대했지만 서로 사귈 당시에는 얻지 못했던 측면에 특화된다. 결국 앞의 두 주역과 교차하며 경우의 수를 풍부하게 제곱하는 대신에 능히 예상 가능한 보조역할 대체재에 머문다. 그리고 그 외의 무수한 주변 인물들 역시 거의 대부분 기능적 롤에 충실히 머무는 편이다.
 
쓰린 상처를 품은 이들에게 다가올 봄의 향취를 상상하게 할 영화
 

▲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특별시SMC

 
이 영화의 확고한 방향성의 원인은, 아마 감독 본인의 자전적 경험담이 이야기의 출발점이기 때문일 테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남자 주인공 준호는 감독의 영화 속 '아바타'라 할 만한 근접성을 선보인다. 형슬우 감독은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팔이 안으로 굽듯 준호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감독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과거 추억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준호는 아영과 헤어진 이후 꾸준히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거나 약간씩이라도 타인에게 드러내곤 한다. 그는 원하지 않았던 이별 뒤에야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계를 확인해 반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후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자칫 한국남자의 자기연민 가득한, 간혹 판타지같은 몽상으로 비춰질 법한 순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영화 초반, 몇 년째 연인의 집에서 기숙하면서 그가 준 카드로 밥을 사먹고 얹혀살다시피 안주하지만 자존심을 내세우며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던 어떤 전형성은 물론, 결국 차이고 나서는 띠 동갑을 넘는 연하의 대학생에게 대시를 받고 새롭게 연인으로 만나는 행보를 보인다. 물론 영화 속 설정 같은 상황이 실제로 존재하긴 어렵다. 하지만 공감을 남녀노소 통틀어 보편적으로 획득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여기에다 쿠키처럼 추가된 에필로그 장면 또한 굳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주제 전달에는 큰 무리가 없는 남자주인공의 나르시시즘 적 면모에 가깝다.
 
물론 이런 지적은 아쉬움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대부분이다. 감독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는 적당히 쌉쌀한 양념을 가미해 단맛이 더 배가되게 만드는 숙련된 연출 감각을 능숙하게 발휘해낸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러닝타임 내내 따스한 위안과 과거의 오류에 대한 성찰을 과장되지 않게 구현하고 있다. 쓰라린 이별과 방황을 겪은 이들에게 본 작품은 상당한 수준의 회상과 치유력을 선사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누군가에겐 처음 출발점이던 단편 모델이나 아니면 보다 담백해진 버전이 더 선호될 법하긴 하지만 말이다. 마침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마음 한구석의 냉기를 다스리며 새로운 인연을 꿈꿀 관객들에게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한 톤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결과물이다.
 
<작품정보>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2022|한국|드라마
2023.02.08. 개봉|103분|12세 관람가
감독 형슬우
조감독 강동완
주연 이동휘(준호 역), 정은채(아영 역)
출연 강길우(경일 역), 정다은(안나 역), 종호(하늘 역), 고규필(민섭 역),
박성일(윤섭 역), 옥지영(희수 역), 김소형(민지 역), 이가경(혜원 역),
손예원(다미 역), 엄하늘(동규 역), 김휘규(휘규 역), 임예은(일식집 직원 역),
정수지(카페 직원 역), 김호(경찰 역)
특별출연 김금순(사주풀이녀 역), 변중희(건물주 역)
제공/제작 (주)26컴퍼니
배급 ㈜영화특별시SMC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형슬우 감독 이동휘 정은채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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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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