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앞 희생양 찾는 사람들... 이태원 참사도 그렇다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본 이태원 참사

등록 2022.12.22 17:09수정 2022.12.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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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 상인, 자원봉사자들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서 참사 직후부터 시민들이 놓아둔 추모 메모지, 국화꽃, 간식 거리 등 물품을 정리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합동분향소로 옮겨진 추모물품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앞에 놓여 있다. ⓒ 권우성

 
지난 10월 29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 좌측 내리막길에서 100여 명 넘게 압사로 인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토요일이었던 그날은 핼러윈 축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며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전 토요일에 비해 3배가 넘는 13만 명이 이태원역을 이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용객 대다수가 20~30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오후 10시경에 해밀턴 호텔의 좁은 골목길에서 행인이 서로 뒤엉키는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뒤에 있는 인파는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앞에 있는 사람들은 마주 오는 인파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뒤에서 받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앞선 사람들이 차례로 넘어지며 연쇄 깔림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군중 밀집도는 1m² 당 5.6~6.6 정도로 매우 위험한 수치를 가리켰단다. 최초 신고 시간은 오후 6시 34분이었다.

내가 사고 소식을 들은 시간은 30일 새벽 5시쯤이었다. 그때 나는 다른 일로 밤을 새우느라 비몽사몽 했다. 잠시 한눈을 팔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다 비보를 접했다. 처음 사망자 수는 10명 미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해가 어스름하게 내려앉을 때 다시 본 사망자 수는 100여 명을 넘어가 있었다.

오보라고 생각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할 리 없었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이겠지, 어림짐작하며 다른 뉴스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오보가 아니었다. 마감을 끝내 홀가분했던 기분이 사그라들고, 가슴엔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답답했다. 며칠에 걸쳐 감정은 패닉→슬픔→분노의 형태로 바뀌며 나타났다. 

첫 감정, 패닉

패닉(Panic)은 그리스 신화에서 목축의 신인 판이 피리를 불면 피리소리를 들은 생명체가 잠들어 버린다는 신화에서 나온 말이다. 패닉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말한다. 일상과 상식의 경계를 벗어난 충격을 받았을 때 사람은 반응하기를 포기한다. 고양이라는 천적을 마주하고 몸이 굳어버린 쥐처럼, 패닉에 빠지면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하게 된다. 사고 영상을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이 패닉이었다.

사고는 생각보다 끔찍했고 충격적이었다.  이어 충격이 잦아들고 나면 슬픔이 찾아온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 그러나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 그들은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연인과 사랑하고 현실에 좌절하고 행운에 기뻐하고 불행에 슬퍼하던 보통의 존재들. 사고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고,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평범했기에 슬픔을 느낀다. 그들은 계속 그렇게 익명의 존재로 남아야 했고, 그날은 추억으로 남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의 파도조차 가라앉는다. 그리고 잔잔하지만 끊이지 않는 분노가 대신한다. 이태원 참사는 천재지변이나 어쩔 수 없는 불운에 의한 사고가 아니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비좁은 이태원 골목에 밀집했지만 어떠한 통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약 300명 사상자가 발생했다(사망 158명).

이 팩트에 가능한 해석은 단 한 가지뿐이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어떤 설명도 '국가 시스템과 행정력의 부재'를 말하는 해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분노의 감정이 뒤따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유가족과 국민의 분노를 받아내고 책임져야 할 당사자를 규명하는 과정 역시 자연스럽다. 분노가 책임자의 처벌로 이어져야만 유가족을 포함해 국민 모두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분노의 대상이자 책임자는 누구인가.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들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안전부 장관과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국무총리, 경찰청장이다. 책임에는 권리가 따른다. 고위 공직자는 권리에 따르는 책임도 크다. 백번 양보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공직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감투까지 내려놓기 싫다면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해야 한다. 그게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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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1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공식 사과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 앞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과 관련,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서는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 남소연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을 찾아가서 진실된 사과도 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도 내놓지 않았으며, 희생자의 분향소에 가서 국화 한 송이 진심으로 건네지 않았다. 정부는 분향소에 희생자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영정과 위패도 준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면 처벌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과정에서 유족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았다. 원인 파악보다 애도가 먼저라는 말 아래 서둘러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했으나 모든 것이 애도와 거리가 멀었다. 국무총리는 책임을 묻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농담을 하며 웃었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은 분노했으나 권력은 분노하지 않았다. 

책임질 대상이 없으면 분노의 방향은 길을 잃고 표류한다. 그리고 약자에게 향한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약자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이다.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죄의 주체와 진실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일단 죄인으로 지목받으면 그게 누구든 비난받고 배척되는 게 한국 사회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악플이 달리고 있고, 국무총리라는 자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생존자를 두고 "좀 더 굳건했어야"라고 공개석상에서 발언했다. 국민의힘 김미나 의원은 "나라 구하다 죽었냐", "제2의 세월호냐"라는 글을 올렸다.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나는 이태원 참사 후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8년 전 희생자를 조롱하고 유가족을 악마화했던 그 시절의 역사적 경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현기증을 느낀다. 권력은 스스로 상식과 윤리를 파괴하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책임져야 할 자들이 책임지지 않기에 내 분노는 종결되지 않은 채 내 안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다. 그렇기에 글로 토해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있다면 무언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저열함조차 이해해보려 펜을 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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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및 국정조사특위위원 간담회에서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흑사병에 걸리면 온몸의 피부가 검게 괴사 되며 썩어 들어가다 죽는다고 한다. 지난 14세기 중반에 동방을 통해 유럽으로 퍼진 흑사병은 유럽 인구 3분의 1의 사망자를 내고서야 끝났다. 유럽인들은 병의 원인도 모른 채 죽어나갔고 공포에 질린 대중은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찾은 답은 유대인이었다. 곧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를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믿음이 퍼져나갔고 유대인을 향한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다. 상식의 영역을 벗어난 초자연적인 재난에 답하기 위해 유대인이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다. 

희생양 또는 속죄양(Scapegoat)의 어원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염소를 속죄의 제물로 삼던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제물인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판에 뿌린다. 그다음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인들의 모든 죄를 고백하며 그 죄를 염소 머리에 씌운다. 죄를 담은 염소의 혼은 광야로 향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염소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날아간다고 믿었다.

르네 지라르는 모든 종교적이고 문화적 활동의 원형에 '희생양 메커니즘'이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를 모방한다. 모방을 통해 구성원들의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 이데올로기, 욕망이 동일해진다. 사람들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좁아지고 경쟁과 사회적 긴장이 심해진다. 사회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내어 제물로 바친다. 희생양은 공동체 속에서 가장 약하고 이질적인 존재가 선택된다.

이 과정에서 병자, 광인, 기형적인 신체를 가진 이나 불구자 같이 가장 소외된 약자가 제단에 바쳐진다. 희생양은 대중의 축적된 분노, 불안, 공포, 죄의식을 짊어지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된다. 처형식을 통해 사회의 갈등은 심리적으로 해소되고, 죄를 짊어짐으로써 공동체를 구한 희생양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희생양을 만드는 과정이 있다. 누군가가 약자를 지목하고 그들이 모든 불행과 고난의 씨앗이라고 말한다. 대개 권력이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 그게 누구든 대중은 분노하고, 쌓인 분노와 공격성을 특정 집단 또는 개인에게 투사한다. 박해자들은 자신들이 뭘 하는지도 모른 채 희생양을 처형한다. 모든 죄를 뒤집어쓴 희생양으로 인해 개인들의 심리적 거리는 다시 벌어지고 공동체는 평화를 유지한다. 신화와 종교적 제의에는 이러한 박해의 텍스트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양

참사 후 인터넷에 퍼진 게시글과 기사를 보면 희생양 찾기가 얼마나 본능적인지 알 수 있다. 상식을 벗어난 참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은 곧 희생양 찾기에 몰두했다. 그 대상으로 MZ세대 또는 놀기만을 좋아하는 청년 세대가 선택되었다. 이 최초의 사고 유발자를 찾아야 한다는 댓글이 폭주했다. 일부 언론에선 청년의 도덕적 해이와 무지를 탓하는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졌다.

심리학자 엘 거너는 우리는 어떤 결과가 인과응보라는 생각을 하도록 강하게 동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과응보적 심리는 심지어 비극을 당한 이들에게까지 적용되어, 재난의 원인까지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생긴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거나 희생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찾아내려는 습성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책임이라는 결론까지 내린다. "놀러 갔다 죽었는데 뭔 유난이냐"식의 레퍼토리는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가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책임져야 할 자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자 우리의 인과적 본능은 이제 피해자와 유가족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권력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는커녕 피해자와 유가족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있다. 소방서장이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었고, 현장에 있었던 말단 경찰이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 희생양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충격적인 재난을 겪으면 객관적으로 판단하거나 합리적으로 행동하기가 힘들어진다. 누군가 중세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흑사병은 쥐벼룩으로 인한 전염병이 그 실체이니 유대인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해줬다면, 유대인들은 학살되지 않았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인 이태원 참사에 대해 권력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희생자들이 조롱받을 일도, 생존자가 악플로 목숨을 끊을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8년 전과 똑같다. 나는 이 땅의 권력과 보수언론, 괴롭힘 가해자들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어떻게 조롱하고 모욕해왔는지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희생양 삼아 8년을 더 버텨왔다. 그 모멸적 인내를 통해 우리가 확실하게 배운 것은 국가가 더 이상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비정한 현실 인식이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심연의 악마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번에도 책임 규명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제단에 희생양의 피를 뿌려야 한다. 더 이상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참사의 희생자들이 영면에 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글쓴이 브런치에도 게재됐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 #희생양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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