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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웨이' 고수했던 벤투호의 이강인 깜짝 발탁

[주장] 이강인 발탁한 벤투호, 월드컵에서 어떤 결과 초래할까

22.11.13 11:09최종업데이트22.11.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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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월드컵에 나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26인의 명단이 확정됐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11월 12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컨벤션홀에에서 월드컵에 나설 태극전사들의 최종 명단을 발표했다.
 
전체적으로 역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최종명단이라는 평가지만, 최근 안와골절 부상을 당한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벤투호에서 좀처럼 기회를 막내 이강인(마요르카)의 극적인 승선 등이 눈에 띈다. 가장 큰 이변이라면 월드컵 출전이 유력해보이던 박지수(김천)와 엄원상(울산)의 아쉬운 낙마였다. 막내 오현규(수원)는 26인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추가 훈련멤버로 카타르월드컵에 동행하게 했다. 
 
무엇보다 최종명단 발표를 전후하여 주목받은 것은, 벤투 감독의 미스터리한 행보였다. 벤투 감독은 지난 11월 10일 아이슬란드와의 카타르월드컵 대비 최종 평가전을 앞두고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 선수가 많은 것과 관련해 K리그 일정에 대한 불만을 이례적으로 털어놓았다.
 
여기서 벤투 감독은 "선수들의 휴식은 필요없고 돈, 스폰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표팀 감독인 내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8월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길 원하는데, 팀도 선수도 올바른 방식으로 도우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리고 프로구단들을 동시에 겨냥한 듯한 작심 발언을 터트렸다. 평소 인터뷰에서도 차가울만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벤투 감독이 이처럼 강경한 발언을 한 것은 보기드문 장면이었다.
 
벤투호는 월드컵을 앞두고 최근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장이자 에이스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지난 챔피언스리그 마르세유전에 출장했다가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눈 주위 뼈 네 군데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모두를 걱정시켰다. 월드컵 낙마 가능성까지 우려됐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선수의 월드컵 출전 의지가 강하여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주앞으로 다가온 본선까지 컨디션을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주전 레프트백이 유력하던 김진수가 소속팀에서의 혹사와 부상 후유증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다. 아이슬란드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도 박지수와 정우영이 부상을 당했고, 특히 박지수는 발목부상이 심각하여 결국 월드컵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이밖에도 유럽파 황의조와 황희찬은 소속팀에서 주전경쟁에 어려움을 겪으며 슬럼프에 빠져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도 모자랄 시점에, 주축 선수들의 잇단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심기가 불편해진 벤투 감독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계가 합심하여 원 팀을 강조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소속 협회와 리그를 비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더 많다.
 
또한 최종명단 발표직전 마지막 평가전이었던 아이슬란드전에서는 생뚱맞은 실험정신으로 눈길을 모았다. 벤투 감독은 아이슬란드전에서 갑작스럽게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었다. 벤투 감독은 그동안 한국 대표팀에서 대부분의 A매치 경기를 포백 전술로 나섰다.

스리백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경기가 2019년 조지아와의 평가전으로 무려 3년 전이다. 벤투 감독은 "월드컵에서 스리백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스리백을 '플랜B'로 염두에 뒀다면 더 일찍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했어야 했다.
 
아이슬란드전에서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상대는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우루과이-가나와는 스타일이 전혀 다른 데다가, 그나마도 2진급으로 구성되어 전력차가 컸다. 애초부터 한국이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한 스파링 파트너로는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여기에 수비의 핵심인 유럽파 김민재가 빠진 상황에서 스리백 전술을 테스트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많은 이들이 줄곧 변화에 인색하던 벤투 감독이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이제와서 때늦은 실험에 나선 것에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이강인의 발탁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강인은 그동안 벤투호에서는 크게 중용되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스타일과 전술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올시즌 들어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오랜만에 대표팀 승선기회를 잡았지만 정작 벤투 감독은 9월 A매치 명단에 이강인을 뽑아놓고도 실전에서는 기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이강인이 월드컵 출전이 사실상 좌절되었다고 보는 전망이 많았지만, 벤투 감독은 최종명단에 다시 이강인의 이름을 포함시키며 종잡을수없는 밀당을 선보였다.
 
벤투 감독은 일각에서 제기된 손흥민의 부재를 대비한 플랜B의 일환이라는 분석에 대하여 "이강인의 발탁은 손흥민과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능이나 플레이스타일, 성적 면에서 이강인의 최종명단 발탁은 물론 납득할만하지만, 벤투 감독이 과연 실제 월드컵에서도 그를 활용할 플랜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스리백 전술과 마찬가지로, 실전에서 강팀을 상대로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선수와 전술을 활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벤투 감독은 그동안 변화나 유연성을 요구해온 축구계와 팬들의 목소리를 줄곧 외면하며 '마이 웨이'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하필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그동안 보여준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이던 철학이나 태도와는 전혀 상반되는 벤투의 이런 갈팡질팡 청개구리같은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쩌면 이는 그만큼 벤투호가 아직도 불안정한 '미완성'의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상대해야 할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는 팀의 명성이나 객관적 전력에서 모두 한수위다. 가나 역시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로 월드컵을 대비하여 귀화선수까지 영입하며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맞설수 있는 한국의 강점은 특유의 강한 정신력과 벤투호에서 4년을 꾸준히 다져온 조직력이었다.
 
그런데 벤투호의 자랑이던 안정감에 오히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균열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팀은 지역예선 통과 이후 탈아시아권의 강팀들을 상대했던 6월과 9월 A매치에서 연이어 수비 조직력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믿었던 에이스 손흥민은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100% 컨디션을 장담하기 어렵고, 주전급 선수들 다수가 잔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허덕이고 있다. 취약포지션인 오른쪽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는 아직도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동일한 감독 체제에서 4년간 손발을 맞춰왔고 이제 월드컵 본선을 앞둔 상황이라면, 대표팀은 이제는 확실한 컨셉트를 정하고 안정적으로 조직력을 다지는 데만 집중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이제와서 줄곧 안쓰던 전술을 실험하고, 안쓰던 선수를 데려다 놓고 대체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더구나 벤투호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이제 월드컵 본선까지는 더 이상 실험을 할 수 있는 평가전 일정조차 없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증명해야하는 자리다. 벤투 감독의 뒤늦은 변심이 과연 다가오는 월드컵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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