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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사라졌던 영웅의 79주기를 기리며

[김성호의 씨네만세 407] <봉오동 전투>

22.10.25 14:27최종업데이트22.10.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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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오동 전투 포스터 ⓒ (주)쇼박스

 
한국사에서 사라졌던 영웅이 있다. 평안도 포수 출신으로 한일합방 이후 일본제국을 상대로 한반도 북방에서 유격전을 펼쳐 빛나는 무공을 쌓은 이다.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를 무대로 활약했으며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이 거둔 최대 전공으로 꼽히는 청산리 대첩의 실질적 지휘관이기도 했다. 10월 25일로 79번째 기일을 맞은 홍범도다.

그러나 한국에선 오랜 기간 동안 홍범도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다. 1980년대 생 기준으로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긴 했으나 간략한 언급 수준에 그쳤다. 무장독립운동을 한 이들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한 당대의 영웅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이유는 간명했다. 홍범도가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끌던 초기 소비에트 연방에 합류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오랜 냉전과 이념대립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적잖은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홍범도였던 것이다.

여전히 일각에선 자유시참변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온갖 음모론이 거론되는 게 현실이지만 홍범도의 삶 전체를 공정하게 돌아보자면 오늘의 한국이 그를 독립의 영웅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해도 좋겠다.
  

▲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주)쇼박스

 
2019년에야 영화에 등장한 홍범도

오늘의 한국이 홍범도 장군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한국은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왔다. 홍 장군의 유해뿐 아니라 그의 삶과 뜻 역시 최근에야 예술과 역사 모두에서 공정하게 평가됐다. 송은일 작가의 역사소설 <나는 홍범도>는 2020년에 쓰였고, 김좌진이 아닌 홍범도가 영웅으로 등장하는 <봉오동 전투>가 2019년 제작됐으니 말이다.

홍 장군은 독립 2년 전인 1943년 10월 25일 향년 75세로 사망했다. 그러니 25일은 홍 장군 사망 79주기가 된다. 지난 정부에서 유해봉환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탓에 78주기 관련 행사며 방송이 여럿 진행됐으나 올해는 이를 기리는 언론이 없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봉오동 전투>는 여러모로 홍범도 장군의 삶을 돌아보며 감상하기 좋은 영화다. 영화에서 그가 등장하는 건 후반부 아주 일부뿐이지만, 당시 홍 장군이 두 어깨에 지고 있던 짐과 해낸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러닝타임 내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주)쇼박스

 
민중들의 저항을 다루다

영화는 일제강점에 대한 저항이 활발하던 1919년을 배경으로 한다. 한반도 북부에선 험한 지형을 바탕으로 점조직적 무장저항운동이 계속됐다. 일본은 신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동원해 독립군을 대대적으로 토벌하기로 한다. 독립군은 봉오동의 험한 산세를 끼고서 토벌대를 제압하겠다 결정한다.

이야기는 홍범도와 김좌진, 일본군의 장대한 대결로 곧장 들어가지 않는다.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분)와 도적인지 용병인지 알 수 없는 해철(유해진 분)의 패거리가 함께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유인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독립군의 희생이며 평범한 민중들의 독립에의 열망이며, 또 제 삶을 내던져 항일하는 일의 어려움이 낱낱이 드러나니 <봉오동 전투>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하겠다.

스릴러며 액션 연출에 잔뼈 굵은 원신연 감독의 연출작으로, 소규모 전투에도 영화가 늘어지지 않게끔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장하의 질주와 해철의 칼질 액션에선 좀처럼 쉽게 담아낼 수 없는 액션의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 막판 홍범도 장군이 등장하는 대목에선 이 영화가 다른 한국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한 장면을 영화사에 새기고 있단 걸 자각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간 드라마며 영화에서 홍범도를 모티브로 삼은 이들이 등장할 때도 그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현실을 고려한다면 2019년 나온 이 영화가 이룩한 느린 성취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비록 과다한 음악과 슬로우모션을 사용하고 인물들이 오열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잡는 모습, 너무 선명한 대사들의 나열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봉오동 전투>를 그래도 한국영화사에서 의미 있는 영화로 꼽을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주)쇼박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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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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