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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에 가면 축구장에서 자흐라를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영화읽기] <축구광 자흐라>를 통해 2022년 월드컵과 이란의 현재를 생각하다

22.10.17 11:57최종업데이트22.10.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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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잊고 있는 듯 하지만 올해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이다. 평소라면 여름의 열기 속에서 벌어졌어야 하는 지구의 축제가, 11월의 초겨울에 그마저도 중동의 한 가운데인 카타르에서 열리게 되었으니, 잊힌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번 월드컵에도 카타르로의 원정 여행을 준비하고 있고, 경기 입장권과 숙소, 비행 편에 대한 예약까지 마무리하고 났더니 월드컵 개막식까지 35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 소개 글을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이번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다큐멘터리인 <축구광 자흐라>(2022)를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자흐라는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 살고 있는 여성이다. 테헤란의 프로 축구팀인 페르세폴리스 FC의 열렬한 팬인 자흐라는, 축구장에 들어가서 현장 관람을 하고 싶을 뿐이다.하지만, 이란에서는 축구장에 여성이 입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종교적 율법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엄격하게 금지해왔고, 마지막으로 입장이 허용된 것이 1981년이었다고 한다. 2022년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동안 FIFA의 압력으로 여성 입장에 대한 조치가 일부 완화되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제한적이라고 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축구광 자흐라>의 GV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로 제작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인데, 시작할 때만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4년의 세월동안 상황이 많이 심각해졌다고 하네요. 현재의 이란 상황을 돌이켜보면 너무도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 이창희

 
이런 상황이라면 자흐라가 태어나 살아온 이란은,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원래부터 불가능했던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자흐라는 계속 불가능에 희망을 덧입힌다. 축구장에 들어가서 페르세폴리스 FC를 현장에서 응원하기 위해, 그녀는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 들어갈 수 있는 '자유'를 꿈꾼다. - 경기장의 이름인 '아자디'가 이란어로 자유를 뜻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했다. - 그리고,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이후로 격렬하게 이어지는 이란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 대한 반대 투쟁이 겹치면서, 영화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영화에서 자흐라는 축구장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남장을 하고 수염을 붙이고,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깎고 눈썹 문신을 한다. 코를 더 크게 보일 수 있도록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고, 남자의 옷을 사기 위해 아끼지 않고 돈을 쓴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장의 장벽은 너무 높고, 자흐라는 아주 가끔 성공했지만 거의 매번 실패한다. 여기에서도 자흐라의 출입을 감시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을 관리하는 도덕 경찰이다.

이슬람의 규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이란에서 태어난 자흐라에게는 투쟁의 대상이라는 현실은 너무 극단적이다. 태어나는 것에는 개인의 선택이 개입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는 한 달 반 넘게 이어지고 있고, 자유를 원하는 목소리는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자흐라의 경기장 잠입 성공이 알려진 후, 이란의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 언급한 상반된 발언을 보여주는데,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여성에게도 축구장에 들어갈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1981년 이전에는 가능했던 일이고, 혁명 이후의 세상에서 금지된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은 정숙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부의 주장은 전통적인 이슬람의 태도가 아니라, 서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참여하고 있는 동네 책방의 역사책 읽기 모임에서는, 오스만튀르크 제국 이후의 중동의 역사인 유진 로건의 <아랍>을 읽고 있다. 이란의 역사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제국주의 침탈기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날카로워진 중동의 갈등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이슬람 공동체로서의 아랍에 대한 인식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개입을 통해 다양하게 분열되었고 끝내 1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원하는 대로 국경이 그어지기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 이르면 이슬람 세계의 서구에 대한 반감은 뿌리가 깊다. 이란에서는 1979년의 혁명을 통해 이슬람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에 동의했으니, 민중의 혁명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재는 모순이며 다양한 갈등의 원인일 수밖에 없다.

축구장에 들어가고 싶은 자흐라의 자유는 얼핏, 너무도 작고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이런 하찮은 취미에 대한 문제보다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논쟁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엄연한 거래이다. 어쩌면 가장 작고 가벼운 문제마저 해결해 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좀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자흐라가 축구장에 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과연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것으로 죽음을 당했을지 되물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30여일 후 중동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월드컵을 위해 카타르로 떠난다. 월드컵이 추구하는 스포츠의 세계가 모두에게 공평하길 기대하며, 오늘도 그곳에서 싸우고 있을 자흐라와 이란의 여성들에게 깊은 연대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축구광 자히르>에게도 축하를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늘날의 영화읽기 축구광 자흐라 2022 카타르 월드컵 이란 히잡혁명 아랍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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