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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원 없이 웃기는 영화

[신작 영화 리뷰] <육사오>

22.09.13 17:36최종업데이트22.09.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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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육사오> 포스터.? ⓒ 싸이더스

 
2022년 추석 대전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 2017년 설 대전에서 780여 만 명을 동원하며 최종 승리했던 <공조>가 5년 만에 <공조2: 인터내셔날>로 액션과 웃음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캐미로 돌아와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그 와중에 여름이 가고 추석이 오기 전의 기막힌 타이밍에 개봉해 쏠쏠한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에 기대한 이는 거의 없었을 텐데 오로지 입소문 하나로 이뤄낸 쾌거다. <육사오(6/45)>라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제목의 밀리터리 코미디 영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관에서 이토록 낄낄 대고 웃어 젓힌 게 얼마 만인지 기억하기도 힘들다. 

역시 추석 영화는 코미디라는 걸,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마음껏 웃을 영화가 명절 연휴에 필요하다는 걸 <공조2>와 <육사오>가 여실히 증명했다. 애초에 기대작이자 완벽한 흥행 공식에 의해 만들어진 <공조2>는 그렇다 치고, 오로지 코미디 영화로서의 웃음에 기반한 입소문으로 흥행에 성공한 <육사오>야말로 2022년 하반기의 진정한 승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한번 들여다보자. 

남북한 최전방을 오가는 로또 1등 용지

언제나 그래 왔다는 듯 남한의 최전방 감시초소와 북한의 최전방 감초소에선 서로를 향해 위협 사격을 하거나 조롱 어린 말을 던진다. 그러던 와중 부대 정문에서 경비를 서던 말년 병장 박천우 앞에 웬 로또 용지 한 장이 떨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 주머니에 넣고 생활관으로 돌아온 박천우, TV에서 로또 방송을 해 주는데 맞춰 보니 1등이란다. 57억 원이란 말이다. 그런데 초소 근무를 서다가 바람에 실려 로또 용지가 북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오밤중에 철책선을 넘어 찾으러 간 박천우, 거기엔 북쪽의 리영호 하사가 있었는데 자기가 로또 용지를 가지고 있으니 당첨금을 가지고 오면 10%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된다. 초소장 강은표 대위와 김만철 상병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팀을 결성해 공조한다. 다시 만난 박천우와 리영호, 박천우가 리영호에게 20%를 역제안한다. 결과는 협상 결렬. 이번엔 리영호 하사와 방철진 하전사가 벌인 대역죄급 일을 최승일 정치지도원이 알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팀을 결성해 공조한다. 

북측의 제안으로 재협상을 위해 공동급수구역(JSA, Joint Supply Area)에서 만남을 가진 남쪽과 북쪽의 로또 팀, 서로 간의 주장과 설전과 최후통첩에 이어 몸싸움이 어지럽게 오가던 중 남쪽의 급수담당 보급관이 와선 5:5로 중재에 나선다. 남과 북 모두 받아들이는 와중, 포로의 개념으로 서로 한 명씩 병사를 교환하는 걸로 한다. 그리고 '딸딸이'라고 하는 통신기가 서로의 기지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걸 사용해 긴급할 때 연락하는 걸로 한다. 과연 1등 로또 당첨금을 무사히 찾아와 남과 북 모두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웃기는 영화
 

영화 <육사오> 스틸 이미지. ⓒ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육사오>는 시종일관 끊이지 않는 웃음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몇 안 되는 영화다. '착한 웃음'으로 장착했기에 편안하게 마음껏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 사실성 같은 걸 과감히 포기했다. 이것저것 볼 것 없이 잘할 수 있는 것만 취사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애매하지 않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 상황 설정 등 모든 면이 오로지 웃음을 위해 철저히 계산되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의외로 극초반엔 웃긴 지점이 거의 없는데, 뒤로 갈수록 안 웃고 배길 사람이 없을 테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웃음의 떡밥이 건져 올려지는 순간, 그 최전방에 리용호 하사와 강은표 대위의 독일어 통역 장면이 있다. 절정의 페이소스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완벽한 웃음의 하모니, 보기 드문 명장면이 아닌가 싶다. 직접 보고 원 없이 웃어 보길 바란다. 

한편 영화는 말이 안돼도 너무 안 되는 상황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애초에 로또 1등 용지가 쓰레기통에서 바람에 실려 오토바이와 대대장 치프차를 지나 박천우 병장 앞에 떨어진 것부터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거기에 그 용지가 다시 바람을 타고 북쪽으로 가선 리용호 하사 옆에 떨어진 것부터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정녕 모든 게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계속되어 이뤄진 운명 같은 이야기 아닌가. 이밖에도 대놓고 픽션의 영역을 만들어 펼쳐놓은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밀어 붙인다. 이 작품만의 특장점이라고 할까.

< 공동경비구역 JSA >의 코미디 버전

영화를 보다 보면 20여 년 전의 명작 하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이자 21세기 한국영화계를 화려하게 열어 젖혔던 < 공동경비구역 JSA > 말이다. 최전방에선 남북 모두 급수가 필요한 바, 'JSA'라고 불리는 '공동급수구역'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남북이 몰래 만나 로또 협상을 하니, 포스터에서 이르길 '공동로또구역'이라고 명명한다. 

20여 년 전 <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 남쪽의 이수혁 병장과 북쪽의 오경필 중사가 비무장 지대에서 우연히 만나 오경필이 이수혁의 목숨을 구해 주며 우정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육사오>도 소재가 '로또'일 뿐 남과 북의 우정 이야기를 군인이 풀어 가는 건 동일하다. 그런 만큼 <육사오>는 < 공동경비구역 JSA >를 코미디 버전으로 오마주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마주도 잘해야 의미가 있는데, <육사오>는 나름 잘해낸 것 같다. 

이 정도 영화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2000년대 초중반 화려했던 한국 코미디 영화의 계보를 완벽하게 이었으니, 추후 명절 연휴 때 TV에서 만날 요량이 클 것 같다. 그뿐이랴. 이런 류의 한국 코미디 영화들이 다시 한 번 기지개를 펼 것 같다. <육사오>가 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데 성공했다. 영화를 보며 다양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육사오 로또 1등 남북한 코미디 공동경비구역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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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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