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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호기심?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

[TV 리뷰] SBS 예능 <집사부일체>

22.07.25 14:20최종업데이트22.07.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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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우리 삶에서 왜 필요한가. 엄마들은 왜 그리 손을 씻으라고 잔소리를 할까. 모기는 왜 아빠만 물까. 지극히 쓸데없고 시시콜콜해보이는 질문들이지만, 그 호기심 속에는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지혜들이 담겨져 있을 수도 있다.
 
7월 24일 방송된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서는 '호기심일체' 특집으로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교수가 이날의 사부로 출연했다. '호기심일체'는 2000년대 초까지 방영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던 화제의 프로그램 <호기심천국>을 재연한 콘셉트였다.
 
'호기심박사'로 유명한 곽재식 교수는, 본업은 물론이고 작곡가-개그맨-드라마작가-블로거-소설가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한 이력을 바탕으로, 호기심을 자아낼 만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프로 N잡러였다. 곽 교수는 젊은 시절 한때 개그에 심취하여 개그맨 시험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적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대학원 시험일정과 겹쳐서 응시를 포기해야 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곽 교수는 고심 끝에 "내가 좀더 사랑하는 길은 과학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진로를 결정했다고.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화학 주기율송(그리움 주기율)을 열창하며 등장한 곽 교수는, 주기율을 예로 들어 "외워서 시험을 치른다고만 생각하면 안된다. 그걸로는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우리가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문명과 사회가 모두 작은 호기심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과거 <호기심천국>에서 활약했던 개그맨 김경민처럼, <집사부일체> 멤버들에게 어린이들의 순수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대신 해결해주면 '실험맨' 역할을 제안했다. 전국의 유치원-초등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하여 총 185개의 질문 중 10개가 선정됐다. '별똥별에서는 냄새가 나나요?', '파란 비누에서 왜 하얀 거품이 나나요?', '어른이 되면 똑똑해지나요', '아빠는 왜 엄마가 키울까요?" 등 어린이다운 순수하고 기상천외한 호기심들이 속출했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첫 번째 호기심은 '수학은 왜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일상에서는 수학을 쓸 일이 별로 없지 않냐고 생각하는 멤버들에게 곽 교수는 "세상에서 좋아보이는 물건들 대부분은 수학이 없으면 못 나왔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일상생활 속 수학이 적용된 예로 '달력'을 꼽았다. 1년 365일은 지구의 공전주기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365일+6시간이었다. 인간들이 1년을 365일로 맞추다보면 해가 거듭할수록 시간이 6시간씩 밀리게 된다.그래서 4년마다 '2월 29일'이 생기는 윤년(Leap year)이 돌아와서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또한 4년마다 1일을 추가한다는 것은 지구가 그 기간동안 딱 24시간을 돌았다고 했을 때 유효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분-초단위로 어긋나기에 훨씬 정교한 수학이 요구된다. 그래야 1000~2000년이 더 흐르더라도 계절과 날짜가 어긋나지 않는다. 3월에 봄, 7월에 여름, 10월에 가을, 12월에 겨울이라는 달력의 변화에 따른 계절 흐름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 것은 수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1970년대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지구의 공전-자전 주기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인구가 동시에 뛰면 지구가 흔들리거나, 수억명에 동시에 물장구를 치면 반대편에 쓰나미가 온다는 등의 유명한 낭설이 나오기도 했다. 곽 교수는 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구가 비틀거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력-태양풍-지구 핵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제기되고 있으며, 밀물과 썰물처럼 바다가 움직이면서 지구가 약간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는 게 그 증거다.
 
만일 지구와 속도와 시계가 어긋나게 되면 전세계가 그 사실을 공유하고 합의하에 1초씩을 추가하는 '윤초(Leap second)'가 적용된다. 실제로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면서 1월 1일 오전 9시에 윤초가 시행된 바 있다. 1초 차이를 알려면 정확한 시계가 필요한데 한국은 프랑스, 일본,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표준시간을 만드는 다섯 번째 국가가 됐다. 2014년 한국 표준과학연구원은 순수 국내 기술로 20억년에 1초 오차 정도의 놀라운 정확성을 가진 이터븀 광시계(KRISS-YB1)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곽 교수는 일상속 수학과 시간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에서 활용되는 '실시간 위치측정(GPS)' 서비스를 거론했다. 위성은 어떻게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걸까. 지구 밖에는 수많은 위성들이 있고, 각 위성들은 세계의 시각을 송출한다. 나와 가까운 위성의 신호가 도달하는 시간에 따라 'A위성에서 N초 걸리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위성이 많아질수록 정확성도 증가한다. 시간X속력=거리의 원리를 이용한 GPS 서비스는 수학 원리에 따른 정밀한 시간측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표준연구원은 지금도 몇천억년이 지나도 오차가 없는 시계를 만드는 것을 연구중이다. 더 정확한 시계가 등장한다면 '자율주행'을 구현하여 교통사고 없는 도로를 만들 수 있다. '수학은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라는 사소한 호기심 하나가 달력-위성-자율주행까지 이어지는 범우주적 담론으로 확대된 것이다. 곽 교수는 "수학이 곧 인생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답으로 제시했다.
 
다음으로 '엄마는 왜 손을 맨날 씻으라고 할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인류에게 세면과 위생의 중요성은 이제 당연한 상식이다. 곽 교수는 중세 유럽에서 출산 후 산모 생존율의 차이를 예로 들었다. 특정지역에서는 산부인과 전문의보다 산파가 출산을 도왔을 때 생존율이 더 높았던 사례를 분석하며, 차이는 '손을 깨끗이 씻었던 사람들'이 출산에 관여할수록 산모가 사망하거나 병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아졌다는 것.
 
놀랍게도 당시만 해도 과학적 인식이 부족했던 대중들은 이런 주장을 미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손씻기의 중요성을 설파한 의학자 제멜 바이스는 훗날 '산모들의 구세주'로 불리게 된다.
 
멤버들간의 간이 세균측정기로 즉석에서 손의 오염도를 측정해봤다. 일반적인 수치가 5000~6000RLU였는데, 평균수치에 근접한 다른 멤버들에 비하여 은지원은 무려 85795RLU라는 경악할 만한 수치가 나오며 변기보다 더 더러운 '세균맨'으로 선정되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손을 씻고 다시 측정하자 3031로 숫자가 급감하며 손씻기의 효과를 증명했다.
 
인체관련 속설들의 진실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팔꿈치에서 손목 사이 길이가 그 사람의 발크기이고, 양팔 사이의 길이가 그 사람의 키에 해당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인체 음모론을 가장 유행시킨 장본인이 바로 '천재' 과학자 겸 예술가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는 인체비례도, 모나리자 등의 유명한 작품을 통하여 예술적 관점에서 인간과 사물의 '비율'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직관적으로 와닿는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로마 시대의 학자들은 사람 몸의 전형적인 비율을 연구하여 그대로 작품을 만들면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과학적으로 완벽한 검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러한 인체속설을 통하여 과거의 심미적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실험결과, 인체속설은 정확히 아니어도 거의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모기는 왜 아빠만 물까요?"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여름철에는 모기 관련 질문이 어린이들에게 유독 많이 나왔다. 노출, 냄새, 혈액행 등에 따라 모기에게 물리는 빈도가 다르다는 다양한 속설들이 존재한다. 멤버들은 실험맨으로 직접 나서서 연구용 모기에게 직접 피를 헌혈하는 살신성신을 감수해야 했다. 실험 결과 멤버들은 모기와 혈액형 속설은 그리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곽 교수는 모기가 선호하는 요소로 인간이 호흡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CO2), 인체의 땀에서 분비되는 암모니아, 젖산, 아미노산같은 요소들을 꼽았다. 모기는 암컷만 피를 섭취하는데, 바로 번식을 위하여 생명체의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의도로 피를 섭취하는 것.
 
곽 교수는 질색할 만한 상황에서 자주 쓰이는 "학을 떼다"라는 표현에 대하여 학이 '학질(말라리아)'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했다. 학질은 모기에게서 비롯되는 급성 열성 감염증이다. 무언가에 크게 당하고 질리는 상황을 학질에 걸리고 낫는 것에 비유할만큼 고생스럽다는 의미다. 후진국형 질병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한국은 지난해에만 OECD 가입국가중인 1위인 290여 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었을 만큼 아직 안전지대와는 거리가 있다.
 
말라리아의 창궐은 기후변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지면 한국도 덥고 습한 여름이 길어지고 모기의 활동시간도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면 말라리아의 위협도 자연히 더 커지게 된다. 모기에 대한 사소한 호기심이 어쩌면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를 더 큰 위협을 예방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파란 비누에서 왜 하얀 거품이 나올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비누만이 아니라 입욕제나 세제, 바닷가의 파도 등도 거품은 모두 하얀색이다. 곽 교수는 "색소 자체에서 나는 색깔과는 다르게 물질의 형태에 의하여 색깔이 나기 때문"이라면서 "같은 물질이라도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물리적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구조색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작새로 깃털의 구조색 덕에 수백가지 화려한 색을 자랑할수 있는 것.
 
공학 기술자들은 공작새의 구조색을 통하여 하나의 물질로 다양한 색깔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TV나 휴대폰을 만들 때 구조색 원리를 색깔 소자에 적용하는 기술을 연구중이다. 실제로 빛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내는 구조색 잉크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이러면 색소 하나로도 여러 가지 색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구조색 기술을 응용하여 같은 선명도의 제품인데도 단가가 1/5로 줄어든다면? 같은 휴대폰 배터리라도 같은 선명도로 수명이 더 오래 가는 기술을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작새처럼 우리 일상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대상이나 분야에서, 우리의 인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식이나 지혜를 개발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호기심의 힘'이다.
 
'공작새의 깃털은 화려하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화려할까', '저 원리를 어떻게 응용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그 호기심이 곧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생각이 굳어진 어른들이 미처 모르고 지나치던 것들을,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미래의 우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씨앗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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