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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 떠나도 '스케치북'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주장]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내며

22.07.24 10:36최종업데이트22.07.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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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받아야 할 600회 특집이 아쉬운 피날레 무대가 됐다. 13년간 시청자들을 감성을 위로해왔던 KBS 2TV 심야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7월 22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관객들은 <스케치북>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의 마음을 담은 문구를 각자의 스케치북에 그려냈다. 무대에 오른 MC 유희열은 "스케치북을 시작할 때만 해도 39세였는데 어느새 52세가 됐다. 600회를 맞이한 것은 여러분들 덕분이다"라며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굉장히 오래 전부터 600회 특집을 준비해왔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지난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환한 얼굴과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방송을 꾸몄다. 여름날 지난 사계절을 견뎌낸 여러분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방송은 '우리들의 여름날'이라는 주제로 600회 특집으로 꾸며졌다. 폴킴, 멜로망스, 10CM, 헤이즈, 데이브레이크, 오마이걸 효정-승희, 김종국, 씨스타, 거미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출연한 초호화 라인업으로 <스케치북> 마지막 무대를 빛냈다.
 
유희열과 뮤지션들은 과거 <스케치북> 출연분의 하이라이트를 하나씩 함께 돌아보며 즐거운 추억에 빠졌다. 김종국은 90년대 터보 시절 추억의 댄스와 에피소드를 재현한데 이어, 효정-승희와 함께 오마이걸의 히트곡 '돌핀'에 맞춰 깜찍한 돌고래 댄스까지 선보여 웃음을 자아내다.
 
효린, 보라, 소유, 다솜으로 이어지는 걸그룹 씨스타의 완전체가 모처럼 출격하여 환호를 자아냈다. '써머 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러빙유' '터치마이바디' 등 여름 분위기에 어울리는 히트곡 메들리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2014년 크리스마스 특집 당시 영화 '혹성탈출'을 모티브로 멤버 전원이 파격적인 유인원 분장을 하고 공연을 했던 장면을 회상하며 씨스타 멤버들은 추억에 잠겼다.
 
무대의 피날레는 명품 보컬 거미가 장식했다. <스케치북>의 단골손님이었던 거미는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드라마 호텔 델루나 OST)'이라는 노래를 직접 선곡하며 <스케치북>을 빛낸 모든 뮤지션과 관객들을 함께 기억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모든 무대를 마친 유희열은 "13년 3개월간 함께해준 모든 뮤지션들, 관객들과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보이지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스태프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어 유희열은 "요즘 음악 라이브 토크쇼가 거의 없다. 요즘 세상에는 자기의 노래를 발표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거의 없더라. 저는 여기서 인사를 드리지만, 이 소중한 무대가 계속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방송은 자막을 통하여 600회 동안 <스케치북>을 찾아준 49만4650명의 관객들과 시청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막을 내렸다.
 
<스케치북>은 2009년 첫 방송 이래 국내에 몇 안되는 정통 심야 라이브 음악토크쇼로 13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유명 아티스트에서부터 싱어송라이터, 인디 뮤지션, 아이돌, 개그맨까지 수많은 출연자들이 거쳐갔고 여러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내며 대중성과 음악성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평가받는다.

신인과 무명 아티스트들을 위한 등용문 역할을 수행하면서 양희은-남진같은 원로 가수들까지 출연하여 세대공감을 이뤄낸 것도 호평을 받는다. 프로그램 첫 출연당시만 해도 풋풋한 신인급이었던 아이유나 씨스타 등은 <스케치북>을 거치며 유명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이러한 <스케치북>이 다른 이유도 아닌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게 된 것은 애청자와 음악 팬들, 그리고 방송가로서는 큰 손실이다. 진행자 유희열은 최근 표절 스캔들에 휘말리며 논란에 휩싸였다. 30년 넘게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사랑받았던 유희열은 <스케치북> 하차를 넘어 그간의 방송경력과 음악인생 자체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유희열은 소속사를 통하여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고의성과 표절이라는 단정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표절 여부와는 별개로 유희열의 진행능력과 인맥, 음악적 위상 등이 <스케치북>이 지금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이돌과 1020 세대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유희열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성, 방송에서 요구되는 진행감각과 입담까지 겸비한 몇 안 되는 아티스트였다. 심지어 <스케치북>은 미디어 지형도의 변화로 인한 시청률 하락,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넘게 현장 관객없이 진행해야했던 악재 속에서도 버텨냈던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유희열이 없는 <스케치북>을 재단장하거나 잠시 휴지기를 가지는 수고 대신, 아예 프로그램 폐지라는 다소 성급한 선택을 내렸다. 유희열은 비판하더라도 <스케치북>의 존속과는 별개라고 여겼던 많은 시청자들은 반발하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니아 프로그램에 가까운 데다, 제작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마침 진행자까지 논란에 휩싸이자 '까마귀 날 때 배떨어지는 식으로'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에서는 시청률같은 상업적 요소로만 평가할 수 없는 가치도 분명히 존재한다. <노영심의 작은음악회>,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 등 진행자와 이름은 바뀌었을지라도 심야 라이브 음악토크쇼들은 그 정체성을 이어오며 여전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전국노래자랑>은 프로그램의 상징이었던 송해 선생이 최근 작고했음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물론 장수프로그램일수록 당장 다른 MC를 기용하거나 프로그램의 포맷에 변화를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진행자 개인에 대한 의존도 아닌, 프로그램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메시지에 달렸다.

유희열이 없어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MC가 나올 것이고, 더 이상 <스케치북>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을지라도, 심야음악토크쇼만이 가지고 있는 희소성과 매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로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제2의 스케치북'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는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유희쳘 스케치북 600회 표절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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