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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중산층 가정... 이상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뒤틀린 집>

22.07.13 11:44최종업데이트22.07.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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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뒤틀린 집> 포스터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1_'공포영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은 공포영화의 계절이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열대야 무더위에 잠을 못 이루는 이들에겐 괴담이 환영을 받고, '전설의 고향'이 사랑받게 마련이다. 불량식품에 끌리듯이 손대면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하면서도 끝내 그 금단의 유혹에 넘어가게 만드는 공포영화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공포'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다. 유독 연약한 피조물이었던 인간은 '불'과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덮어주던 문명의 이기와 안전보장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다시 고대 선조들이 겁에 질려 미지의 낯선 존재들에게 시달리던 때로 순식간에 돌아가 버린다. 문명생활을 하면서 퇴화해 버린 시력은 어둠이 닥쳐오면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과연 우리는 안전하기만 할까?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처럼, 인간이란 존재는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신의 대상이기도 하다. 공유하는 규범과 이성의 제어가 없다면 극한 상황에서 단숨에 다른 인간은 동류가 아니라 무한 경쟁의 가장 위험한 적으로 변신한다. 그렇게 인간은 늘 두려움에 떨고 겁에 질려 하면서 불안 속에 살아갈 운명인 것이다.
 
공포영화에서 두려움의 원천은 여러 곳에서 온다. 인간이 정복했다고 믿었던 자연의 존재들이 숨겨둔 힘과 적의를 뿜어내거나, 지금껏 알지 못했던 초자연적 존재들이 출현해 인간이 벌레를 밟아 죽이듯 간단하게 인간을 해치우곤 한다. 인간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형언할 수 없이 각양각색의 이유로 같은 인간을 해치는 존재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수백 수천의 얼굴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인간이 가진 원한은 마치 필름에 기록되듯 자신이 존재하던 공간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 공간이 외진 곳에 고립되어 있거나 근처에 필름 역할을 대신하는 물의 기운이 있다거나, 분노와 한을 품은 인간의 원념이 잊히기를 거부할 때 해당 공간은 거대한 저주를 품은 마경으로 변모한다. 영화 <뒤틀린 집>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집에 살던 자들의 욕망이 응축된 교외의 번듯한 단독주택이 될 테다.
 
2_소설에서 영화로, <뒤틀린 집>의 한국형 공포 설계
 

영화 <뒤틀린 집>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실마리리온>으로 판타지 문학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J. R. R.톨킨은 그 가운데 땅 연대기 첫 번째 책으로 후대에 기록될 <호빗>을 단 한 줄의 우연히 떠오른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에피소드는 문학의 역사에서 은근히 많다. 원작을 집필한 전건우 작가 역시 그런 필연적 우연에서 작품을 출발했다고 한다. 모든 건 한 개의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살을 붙여가며 시작된다. '귀신 들린 집에 사연 많은 가족이 이사를 왔다.'
 
<뒤틀린 집>은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게 된 '명혜'와 '현민', 그리고 '동우', '희우', '지우' 세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이 겪게 되는 불길한 일련의 사건들을 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소설은 2019년 안전가옥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제작지원 하에 집필되었다. 본격 출판 이전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영화화가 결정된다. 그래서 책의 출간과 영화의 제작은 동 시기에 병행되어 2021년에 공식 출판과 영화제 공개가 함께 이뤄질 수 있었다.
 
300여 쪽에 달하는 장편 단행본 분량의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각각 명혜와 현민, 동우의 이름이 붙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집필단계부터 영화화가 병행되었기 때문에 영화의 기본 전개는 소설에서 가져왔지만 매체 특성에 따라 들어오고 나간 부분이 적지 않다. 장편소설에 비해 영화의 세부적인 사항은 상당부분 축약되었고 특히 결말은 퍽 다르게 흐른다.
 
소설은 정통적인 오컬트에 가까운 배경과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화는 이 기본바탕에다 다양한 사회적 코드를 녹여내려 신경을 쓴 면모가 보인다. 원작은 불행한 사연을 안고 시골로 이사한 가족이 하필이면 한국 전통의 풍수지리와 상반되는 형태로 지어진 '오귀택', 즉 동서남북 조화가 무너져서 그 빈틈으로 좋지 않은 기운이 고여 버린 집으로 오는 바람에 겪게 되는 초자연적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데, 영화 역시 기본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원작이 현민의 아버지 장례식 2년 후 우연히 이사를 오게 된 집에서 그들 가족 각자가 겪고 있던 불안과 욕망이 증폭되는 과정을 겪는다면, 영화는 경제적 문제로 도시의 중산층에서 미끄러져버린 일가의 피난처로 헐값에 나온 집을 급히 얻어 이사를 오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이후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난은 스티븐 킹 원작, 스탠리 큐브릭 연출의 <샤이닝>과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 이사한 집에는 귀신이 들려 있다. 어른들은 전에 이 집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머무는 존재들에게 유혹받아 그들 자신이 은밀히 감추고 있던 욕망과 결핍에 잠식되어간다. 아이들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만나 경고를 전해 듣거나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3_'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진리를 확인해주는 영화
 

영화 <뒤틀린 집>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가족의 엄마 '명혜'는 이사를 오기 전부터 이미 심한 우울증 상태에 처해져 있다.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는 신경쇠약의 원인은 육아 스트레스와 가정의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것이다. 원래 좋았던 시절에도 잠재하던 육아 부담에 갑자기 휘몰아친 경제적 몰락은 불에 기름을 붓듯 겉잡을 노릇 없이 명혜의 상태를 벼랑으로 내몬다.
 
아빠 '현민'은 동화작가다. 하지만 최근 표절논란으로 인해 일이 끊긴 상태다. 게다가 그 사건으로 인해 출판사가 몰락하고 사장 일가가 자살했다는 가책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자존심과 권위를 유지하려 발버둥치지만 내내 뭣 하나 뾰족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상태에 머문다. 부부 둘 다 집에 숨어 있던 존재들에게 공략당하기 최적의 상태다.
 
그리고 세 자녀가 등장한다. 동우(남), 희우(여), 지우(여) 삼남매다.
 
첫째 동우는 원작보다 비중이 대폭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외아들인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내 심드렁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휴대전화와 게임에만 빠져 있을 뿐, 가족이 처한 이중의 위기(경제적 붕괴+뒤틀린 집 안의 존재)에 별 영향을 받지도 않고 해결을 위해 개입하지도 않는다. 무책임하고 방관자적인 전형적인 근현대 한국의 예비 가부장 캐릭터 격이다.
 
둘째 희우는 입양되어 왔다. 희우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눈치를 내내 보고 부모에게도 다른 남매와는 격이 다른 존댓말을 구사한다. 그런 희우의 캐릭터는 동물보호소에서 어떻게든 입양되길 기대하는 유기견을 닮았다. 아직 인간에게 버림받는 쓴맛을 잘 모르는 '초짜' 유기동물들은 그저 사람이 찾아오면 반가워한다. 하지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고참'들은 자신의 본성을 숨긴 채 인간의 구미에 맞는 행동을 취한다. 원래 없던 이중성이 인간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희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밀려왔다.
 
셋째 지우는 천진난만한 막내 캐릭터다. 늘 놀아달라고 보채는 전형적 캐릭터인데 비밀을 감추고 있다. <뒤틀린 집> 영화 속에서 동우와 지우는 자주 등장은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데에는 별 역할이 없다. 대신에 그들은 각자가 점유한 캐릭터의 상징성으로 영화에서 지분을 갖는다. 일종의 '장치'로서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영화는 '명혜', '현민', '희우' 이 셋의 긴장관계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공포를 끌고 가는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미스터리 구조를 끌고 가다 보니 이것저것 복선을 많이 심어놓은 편이다. 하지만 소설의 풍성한 세부해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설명과 묘사가 덜어진 틈을 주로 배우의 연기력에 의지하는지라 관객이 상상이나 검색으로 메워야 할 틈이 영화 속 오귀택처럼 곳곳에서 드러나는 편이다. 소설에서는 주요 전환점마다 결정적 순간에 개입해 활약하던 '김구주'가 영화에서는 그저 가족에게 경고하는 역으로만 그친다. <샤이닝>에서 주인공 가족에게 경고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줬던 '할로란' 캐릭터가 되어줘야 하는데 그의 빈자리가 제법 아쉽다.
 
4_배우들의 열연과 캐릭터 활용법을 살펴보자
 

영화 <뒤틀린 집>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뒤틀린 집>의 얼굴은 역시 명혜다. 현재 한국 영화판에서 '호러 퀸'을 맡긴다면 가장 일순위로 거론될 서영희 배우가 명혜 역을 책임진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이미 정평이 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배우는 한 몸에 깃든 두 명의 다른 인격을 보듯 강렬한 비주얼을 뿜어낸다. 그 시각적 공포는 이미지로서는 매우 훌륭하게 구현된다. 모성애와 피로가 함께 깃들고, 자신을 힘겹게 하던 것들을 벗어던지는 순간에 무의식에서 나온 쾌감이 지배할 때의 얼굴은 같은 사람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다. 하지만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한 데 투입되지 못해 캐릭터가 결정적 행동을 취할 때마다 관객에게 그 내면이 전달되거나 깊이 있게 스며드는 데 다소 아쉬움이 있는 역할이다. 결코 배우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현민은 사면초가에 처한 무능한 가장으로 규정된다. 소설에선 풍부한 묘사가 뒷받침해 주는 캐릭터인데 영화에선 그런 세부 설명이 생략되다 보니 명혜의 신경증이나 남편을 향한 불신이 다소 겉도는 느낌이 좀 있다. 명혜는 혼란에 시달릴 때마다 남편을 비난하지만, 정작 결정적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 그가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키거나 과오를 범하는 건 그렇게 눈에 띠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오귀택이 두 부부간 내면에 쌓여 있던 불신이 증식되는 과정에 감정 이입이 아쉬운 편이다. 역시 개성있는 연기력으로 근래 두각을 드러내는 중인 김민재 배우가 각 잡고 연기를 뽐내며 보여줄 수 없는 역할인 셈이다.
 
희우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엄마 명혜와는 다른 공간에서 다른 기이한 체험을 거듭 겪는다. 그 신비한 공포체험은 <샤이닝>이나 <악마의 등뼈> 같은 장르의 고전 클리셰들과 일맥상통하는 편이다. 결국 가장 약한 자가 희생되기 딱 좋은 잔인한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다. 희우 역 김보민 배우는 이미 다수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인 바 있다. <뒤틀린 집>에서도 보는 관객이 안쓰러워질 정도로 영화 내내 고생을 겪는다. 사실상 주역 역할을 소화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특히나 가장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캐릭터이기에 영화에서 가장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셋에게 몰빵하는 이야기 구조 덕분에 다른 배우들의 활약은 지극히 전형성을 띠거나 생략되는 방법을 취했다. 감독의 전작 <기도하는 남자>에서 함께한 박혁권 배우는 아쉽게도 특별출연 차원으로 보인다. 그들을 써먹는 활용도는 다소 도구적으로 느껴진다. 보여줄 수 있는 게 더 많이 남아 있는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5_'귀신들린 집' 설정에 경제위기 끼얹기
 
영화는 공들인 시각적 효과와 장치들을 통해 영화의 주제와 의도를 녹여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원래 가족이 살던 곳은 'in 서울' 아파트 단지다. 이 공간은 평범해 보이지만 고도로 수직성을 강조하는 묘사로 관객 앞에 선보여진다. 그리고 추락이 이어진다. 가족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교외로 이주해야 한다. 현실이라면 '몰락' 그 자체를 겪고 있는 셈이다. 정교하게 아파트에서의 가족의 예전 삶을 마치 고소공포증 걸리기 딱 좋은 지상 10미터 높이처럼 구현하는 비주얼 묘사는 짧지만 효과적이다.
 
감독은 대도시 아파트라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자리에서 추락하게 된 가족이 낯설고 한 맺힌 사연이 숨은 미지의 공간으로 틈입해 파멸 위기로 내몰리는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건축적 배경을 적극 활용하려 시도한다. 이사를 온 집의 기괴한 변칙성은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에 관객이 몰입하는 데 직접 연결된다. 미술팀이 심혈을 기울였을 티가 팍 나는 전원주택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영화 내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조금 더 폐소공포증 유발 상황을 밀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미련이 조금 남는다. '귀신들린 집'의 선배 격이라 할 윈체스터 하우스나 헌티드 힐 같은 공간들이 구현해낸 숨 막히는 압박으로 끝까지 나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영화는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추락으로 인해 붕괴 위기에 처한 중산층 가정의 도덕적 파산을 공포물로 치환하려 한다. 그런 이야기 구조의 이중성에 승부를 거는 셈이다. 영화는 이를 위해 제초제로 쓰이다 금지된, 농약 음독자살의 주요 대상이던 '그라목손' 관련 사건사고들을 호출한다. 실제 사용 금지 후 농촌 노인 자살률이 확 떨어졌다고 할 정도로 국내에서 자살에 애용되던 이 제조체의 대명사는 영화 중반 이후 죽음의 그림자와 겹쳐진다. 여기에 집에 얽힌 음침한 진실이 주인공 가정의 상황과 연동된다. 입양아에 대한 학대와 여성의 육아 스트레스라는 사회적 화두를 공포 코드와 결합하려는 시도는 그 확장성 측면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오히려 원작소설 기본구조에서 디테일한 설정 일부를 날리는 대신 시사적 코드 묘사를 더 강화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다. 다소 간략하게 추가되는 바람에 관객이 일일이 추론해야 하는 느낌이라 롤러코스터 타듯 몰입감을 유지해야 할 공포영화에선 단점으로 작용한다.
 
결말과 에필로그는 소설과 영화가 제법 상이한 편이다. 사견으로는 소설의 엔딩이 더 마음에 남긴 한다. 여전히 한국영화에서 여성성과 모성애가 전형적이거나, 정반대로 괴물화로 경계되는 양자택일을 넘어섰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테다. <뒤틀린 집> 영화가 보여주는 지점에 추가로 전건우 작가의 소설을 같이 읽는 게 공포체험에는 더 나은 선택이 될 듯싶다.
 
<작품정보>
뒤틀린 집 Contorted
2021|한국|공포
2022.07.13. 개봉|91분|15세 관람가
감독 강동헌
주연 서영희(명혜 역), 김보민(희우 역), 김민재(현민 역)
출연 조수향, 강길우
원작 전건우 <뒤틀린 집> (2021)
음악 윤상
제작 ㈜테이크원 스튜디오, ㈜스토리위즈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뒤틀린 집 강동헌 감독 전건우 작가 서영희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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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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