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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자리 오른 여자 앵커, 모성신화를 비틀다

[리뷰] 영화 <앵커>

22.04.25 15:41최종업데이트22.04.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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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앵커>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

 
일과 가정생활의 병행, 임신과 출산, 육아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큰 부담이다. 한번 뒤처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지만 이마저도 눈치가 보인다.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우고, 어느새 경력은 단절된다. 
 
<앵커>는 이런 두려움과 모성이 상충할 때 벌어지는 서스펜스를 담아 색다른 긴장감을 발산하고 있다. 그 패기는 나아가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모녀의 관계를 미스터리 장르로 풀어내 참신한 인상을 준다. 
 
살인예고 전화 받고 무너지는 앵커
  

영화 <앵커>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

 
9시 뉴스 메인 앵커로 활약 중인 세라(천우희)는 생방송 5분 전,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살해될 거라는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장난 전화라고 생각해 끊었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았던 세라. 이번 기회에 진짜 앵커가 되어 보라는 엄마 소정(이혜영)의 권유에 직접 현장을 찾아간다.
 
회사에는 개편 바람이 불고 있었고, 기자 출신 앵커가 필요하다는 말에 부담도 커진 상황. 기자의 역량도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에 용기를 내 찾아갔던 게 화근이었다. 집안은 난장판이 된 지 오래, 그곳에는 제보자인 미소와 딸의 시체가 발견되고 세라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모녀 죽음 사건을 단독 보도하며 인정받은 세라는 추가 취재차 현장에 들렀다가 이상한 남자와 마주한다. 자신을 미소의 정신과 주치의라 말하는 인호(신하균)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세라는 그가 감추려고 했던 진실을 알고 싶어 병원에 자기 발로 찾아간다. 얼떨결에 최면술을 받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사건과 마주하며 심한 정신적 착란을 겪게 된다.
 
뒤틀린 심리를 풀어 낸 참신함

영화 <앵커>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앵커가 모종의 사건 이후 급격히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몰랐을 상처를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본인 죽음을 제보하는 의문스러운 전화 후 진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연이어 세라에게 벌어지는 환각, 환청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다. 죽음으로 끝난 모녀 사건은 트리거가 되어 세라와 소정 사이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 일조한다. 엄마 소정은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과 "너만 없었으면..."이란 대사를 읊조린다.
  

영화 <앵커>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

 
엄마는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 전가하고, 딸은 그런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증오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출산과 육아로 반복되는 이중적 감정으로 고통받는다.  
 
더이 상 올라갈 곳 없는 1등. 왕관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라의 불안한 심리는 기이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누군가가 나를 짓밟고 끌어내리려 한다는 불안감, 이를 부추기는 엄마의 잔소리, 제보 전화 후 죽은 모녀의 사건이 겹쳐지면서 말이다.  
 
독특한 연출,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앵커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지친 감정 변화가 다소 부정적으로 다뤄져 불편한 건 사실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미스터리 스릴러 혹은 호러를 표방하다 세라가 최면 치료를 받으면서 극명하게 바뀐다. 중후반부 꼬아 놓은 실을 제대로 풀지 못하는데 이를 세 배우가 연기력으로 메우는 느낌이다. 천우희는 원톱 주인공으로 영화를 이끌고 이혜영과 신하균이 뒷심 부족의 단점을 보완해 준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영화 <앵커>는 단편 <감기>, <소년병> 등을 선보이며 각종 영화제를 휩쓴 정지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개인적·사회적 욕망 모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어려운 상황을 잘 포착했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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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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