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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여성 '프사'는 꽃대궐... '늙은 소녀' 인증일까요?

카톡 프로필마다 꽃 사진이 그득... 왜 그러는지 직접 물어봤습니다

등록 2022.04.29 14:38수정 2022.04.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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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한 친구가 단톡방에 작은 꽃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꽃마리'라고 했다. 비슷하게 생긴 '꽃받이'라는 꽃도 올렸다. 여러 개가 함께 피면 '꽃마리', 한 송이씩 따로 피면 '꽃받이'라고 했다.

평소 화초 가꾸기의 달인인 친구 J가 꽃을 올리는 친구 사진 밑에, "역시 늙은 소녀들이야"라고 답을 달았다. 그 말에 '늙은'에 방점이 찍혔냐는 둥, '소녀'에 방점을 찍자는 둥 말이 이어졌다. 꽃 이야기는 결국 나이듦과 연결 되었다.


그러고 보니, 50 언저리 친구들 카톡 프로필 사진(아래 프사)에 꽃이 그득하다. 작은 꽃마리류에서부터 한창 만개 중인 진분홍 철쭉, 이미 철 지난 꽃이 되어 버린 벚꽃 한 잎, 어느 친구 프로필 사진엔 연꽃까지 피어 있다.

여자들의 프사는, 젊은 날 한껏 예쁠 때 자신의 사진에서 출발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한동안 아이들 사진으로 도배되다 결국은 꽃으로 마무리 된다던데... 우리 나이가 벌써 그럴 때가 된 건가. 

카톡 프사에 꽃 사진, 나는 아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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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에 핀 꽃. ⓒ 최은경

 
그런데 말이다... 난 아직까지 한 번도 프사에 꽃 사진을 올린 적이 없다. 색색이 피어난 꽃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가로등 불빛 아래 화려하게 피어난 라일락 꽃향기도 너무 좋아서 잠시 멈춰 서서 맡아도 보지만, 이 예쁜 꽃들을 찍어 내 프사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이유가 없진 않았다. 오래전 함께 연수를 들었던 한 선생님에게 전화가 온 적 있다. 연수에서 처음 뵌 분이라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의외였다. 그분은 우연히 내 카톡 프사에 쓰인 문장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어 연락을 하게 되었노라 하셨다.

'나는 편안함 대신 용기를 선택하기 위해 어떤 취약성을 드러내고 감수했는가'라는 문장이었다. 당시 읽은 책 어딘가에서 감흥을 느껴 옮겨 놓은 문장이었을 텐데, 출처를 함께 써놓지는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카톡 프사는 당시 내 자신의 관심사와 생각을 드러내는 또다른 얼굴 같아 더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마찬가지 이유로 나와 연결된 이들의 프사를 보며 그 사람의 한 부분을 미루어 짐작해 보곤 했다. 

내게 그런 의미가 있는 프사에 나와는 무관한 꽃을 올린다?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가꾼 것도, 개인적으로 받은 것도 아닌데 들과 산에 피어난 꽃들을 올리는 친구들의 심리가 뭔지 궁금했다. 지금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결국 내 프사도 꽃으로 마무리될 것인지도 궁금했다.

"꽃 사진 왜 올리는 거니?" 물어보니

'프사에 꽃을 올린 중년 여성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다는 난데없는 요청에 50대 언저리 내 친구들과 지인들이 고맙게도 진솔한 의견을 보내주었다.

프사에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꽃 '꽃받이'를 올려둔 친구 I. 

"지천으로 널린 화려한 꽃 말고 아무도 봐주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꽃을 우연히 발견하고 관찰하면서 인생이 참 별거 없구나. 너나 나나 똑같이 애쓰면서 사는데 나는 신세한탄이나 하는데 너는 그저 열심히 피고 지고 하는구나, 하면서 맘 다스리는 거야."

벚꽃 한 잎을 프사에 올린 지인.

"요즘은 자연을 많이 찍게 돼요. 꽃, 하늘, 나무, 풀꽃... 꽃 같은 나는 이제 저 기억너머로 사라지고, 매년 시들어가는 나에 비해 꽃은 매년 새로우니 그들을 찍게 되네요. 꽃, 자연, 그들은 내게 상처 주지 않아요. 나를 눌러야 하는 사회적, 정치적인 말, 행동,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상. 내 마음을, 내 말을, 내 행동 등을 인위적으로 애써서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죠."

학창 시절부터 봐와서 이제 서로를 척 보면 아는 친구 K는 "귀염둥이 자식은 이미 컸거나 프사에 올리기 뭣하고, 쉽게 보이는데 젤 근사하고 예쁘고 보면 좋은 게 꽃이기 때문이 아니겠냐"라고 보내 주었다. 꽃이 예쁘긴 하나 프사에 올릴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다는 내가 오히려 연구 대상이라나 뭐라나.

친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내가 자기애 혹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 꽃이 필요 없는 거란다(내 프사는 그림을 그리는 내 뒷모습이 올라 있다). 음... 정말 그런 걸까? 그럼 결국은 꽃으로 마무리 될 거라는 중년 여성들의 프사는 나와는 무관한 얘기란 말인가.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공감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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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만난 철쭉 ⓒ 최은경

 
남편으로부터 무슨 얘기만 하면 상대방 말에 먼저 공감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문제 해결부터 하려 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 터라 가뜩이나 내가 점점 감성이 메말라가는 게 아닌가, 살짝 고민스럽던 중이었다. 

그러나 프사에 꽃을 올리지 않는다고(앞으로도 상당기간 올릴 것 같지도 않지만) 내 공감력이 떨어진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내가 꽃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예쁜 꽃을 보면 내 마음도 설레고 좋으니까. 일요일마다 오르는 북한산의 신록(新綠)은 눈이 부시다. 매주 푸르름을 더해가는 나무들 사이사이, 이름 모를 야생화와 꽃나무들이 지천이다.

처음 보는 꽃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앱에 올리면 조금 지나 '띠리링' 알림음과 함께 꽃의 이름이 뜬다. 그렇게 오늘 새로이 알게 된 꽃 이름들, '줄딸기', '귀룽나무', '야광나무', '산괴불주머니', '병꽃나무', '겹벚나무'(요건 벚나무인 건 알았지만 꽃 모양이 일반 벚나무보다 두텁다).

비슷한 듯, 다른 색과 모양으로 피워내는 꽃들에 마음이 홀린다. 번쩍이는 황금 무더기 같은 황매화와 새색시의 다홍빛 치맛자락 같은 주목 나무 꽃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과연 꽃은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제 시기가 되면 피었다 진다. 누군가는 화려한 꽃에 눈이 갈 것이고, 누군가는 구석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에 마음이 갈 것이다. 

중년 여성들의 카톡 프사가 결국 꽃 사진으로 마무리 된다는 말은, 정여울 작가가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에서 말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한없이 따스한 사랑과 공감의 눈길'과 같은 맥락은 아닐까. 

동요 <모두 다 꽃이야> 노래 가사는 말한다. 산에 피어도, 들에 피어도, 길가에 피어도,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봄에 피어도 여름에 피어도, 몰래 피어도 모두가 꽃이라고. 50여 년을 살아오며 화려하진 않더라도 저마다의 꽃을 피워낸 이들에게 오랜 동지 같은 대상. 그게 바로 그들의 프사에 피어난 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50대 #중년 #카톡프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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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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