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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비열한 건달? '뜨거운 피'가 선보인 밑바닥 누아르

[미리보는 영화] <뜨거운 피>

22.03.17 14:53최종업데이트22.03.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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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거운 피>의 한 장면. ⓒ (주)키다리 스튜디오

 
한국영화에서 누아르 장르는 나름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학교 폭력, 청춘의 방황에서부터 어느 순간 조직폭력배와 하위 조직 문화를 다루더니 공권력과 정치권까지 파고들어 나름 현실적인 한국 사회를 반영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몇몇 한국 누아르 영화가 개봉해왔다. 이처럼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다른 장르에 비해 흥행도나 역사도 나름 있기에 <뜨거운 피>의 일대 과제는 차별성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영화는 1993년, 부산의 변두리 동네 구암을 배경으로 토착 건달인 희수(정우)와 외부 세력 간 생존 싸움을 담고 있다. 현재 시점이 아닌 약 20년 전 부산, 그것도 작은 항구를 끼고 있는 가상의 항구 마을이 주 무대인 셈이다.
 
시작부터 이야기는 극적 긴장감을 가득 품는다. 회장이라 불리는 사람과 희수, 그리고 구암의 실세 건달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가 복잡한 표정을 내보인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주저하지 않고 이들의 과거를 하나둘 소개하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가족의 보호 밖인 세상에서 탈선을 일삼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희수는 오로지 구암 안에서 세력을 키웠다.
 
희수는 구암 최고 실세인 손 회장(김갑수) 밑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뒤 나름 독립의 꿈을 키우고 있기도 했다. 일찌감치 구암을 떠나 영도에서 세력을 키워 온 철진(지승현)에게 뭔가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연인 인숙(윤지혜)과 그의 아들 아미(이홍내)를 위해서라도 큰 돈을 벌고 싶어 한다. 그런 와중에 기회가 왔고, 그것을 잡고 나니 결국 모든 건 윗선이 치밀하게 짜놓은 판이었다.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뜨거운 피>는 말 그대로 혈기 넘치는 청년 건달이 조직의 생리를 뼈저리게 느끼고 스스로 절망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건달이 중심에 서 있긴 하지만 사실은 인생 밑바닥, 즉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부적응자의 인생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뜨거운 피>의 한 장면. ⓒ (주)키다리 스튜디오

 
<고령화가족>의 원작자이면서 그간 여러 상업 영화 각본을 써온 천명관 감독은 자신의 글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원작 삼아 새로 각본을 짰다. 감독 스스로도 밑바닥 인생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공언했듯 원작에 깔린 짙은 현실감을 영화화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이 새로운 누아르인지는 의문이 든다. 장면마다 나눠보면 캐릭터의 개성과 그 정서가 사뭇 농도 짙게 잘 깔려 있고, 영화적 색감 또한 준수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줄기가 희미하다. 결국 한 사람의 사랑이자 아버지이고 싶었던 한 건달의 몰락기를 다루는 식인데 관객 입장에선 희수마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또다른 가해자로 생각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화면 곳곳을 채우는 여러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현실감이 있고 배우들 또한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현실과 가공 사이에 어떤 감흥과 정서를 환기시켜야 할지 머뭇거리게 될 뿐이다. 누아르적 새로움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간 명멸했던 여러 누아르 영화들 중에선 나름 몰입도와 완성도는 높은 편이다.
 
한줄평: 그 뜨거움은 이해하지만 내심 공감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평점: ★★★(3/5)

 
영화 <뜨거운 피> 관련 정보
각본 및 감독 : 천명관
원작: 소설 <뜨거운 피>
출연 : 정우,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 외
제작: ㈜고래픽처스
제공: ㈜키다리스튜디오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공동배급: ㈜키다리스튜디오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0분
개봉: 2022년 3월 23일
뜨거운 피 정우 김갑수 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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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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