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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 실패했던 민주당... 지금 남은 건

[주장] 4.19 혁명, 그리고 촛불혁명의 민주당을 톺아본다

등록 2022.03.15 07:34수정 2022.03.1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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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에 출석, 연설을 하고있는 장면 총리. 1960.12.7. ⓒ 연합뉴스

 
두 민주당

1960년 8월 19일, 장면 총리가 취임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다. 원인은 당연히 4.19 혁명이었다. 당시 민주당에게는 3.15 부정선거 진상 규명, 제1공화국 부정부패 시정, 민주주의 회복, 경제성장과 같은 무거운 과제들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내부의 갈등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구파와 신파는 갈라져 싸웠다. 

억눌렸던 목소리는 끊임없이 터져나와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데모 규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향한 요구들을 다시 억누르려고 했다. 사회 불안은 해소되지 못했다. 결국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한국의 짧았던 민주화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났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0.73%p 차이로 당선했다. 5년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전에 있던 총선과 지선에서 대승하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촛불집회로 모인 민심의 반영, 정치개혁 등과 같은 중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로남불 논란과 부동산 문제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더 나은 세상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기대는 결국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탄핵으로 물러났던 보수정당이 다시 집권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1960년 민주당의 패착

이 두 장면에서 민주당은 거대 정당이었다. 1960년의 민주당은 민의원(당시 하원) 의석의 75%를 차지했고, 참의원(당시 상원)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당시 한국의 정부형태는 제2공화국이었으므로 장면 총리는 원한다면 민주적으로 초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다. 개혁의 동력은 충분했다.


2022년의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어떤가. 국회 의석 180석을 차지했고, 지방의회도 대부분 과반 훨씬 넘게 장악했다. 행정, 입법, 지방 권력을 모두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민주당은 모두 개혁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 그런가. 전자의 경우 내부 분열이 너무 심각했다는 데 있다. 신파와 구파의 갈등은 제2공화국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이들은 왜 분열했나? 기본적으로 노선 차이가 있었겠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안심'이다. 민주화가 됐고,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으니 안심하고 권력 경쟁을 해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서로 안에서 치고박고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민주당의 핵심은 '권력 투쟁'이었다. 이는 시대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제1공화국의 독재에서 벗어난 당대 시민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혹자는 당시 '초등학생도 시위했다'라고 평하며 제2공화국은 민주주의 혼란상의 극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초등학생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데 있어 오히려 환영할만한 장면들이 많았다. 

시위의 행렬은 사회 개혁 의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었다. 시대 정신이었지만, 당시 민주당의 핵심은 '권력 투쟁'이었다. 이런 이유로 시위 의제들을 '어떻게 흡수하느냐'보다 '어떻게 조용히 시키느냐'가 더 방점에 찍혀 있었던 것 같다. 만일 당대 민주당 정권이 이 시위 의제를 흡수했다면, 오히려 더 건실한 민주공화국을 세우는데 기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요구들은 무시당했다. 신파와 구파의 싸움은 계속됐다. 결국 민주주의의 빈틈을 노리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한국은 4.19 이후 27년 넘게 '겨울공화국' 상태에 들어가야만 했다.

2022년 민주당의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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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왼쪽부터),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김태년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생개혁법안 실천을 위한 상임위원장 및 간사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있다. ⓒ 공동취재사진

 
2022년의 민주당은 어땠나? 그야말로 가장 거대한 권력을 민주당계 정당이 얻었던 시기다. 개헌 빼고 다 가능한 180석이라는 의석을 얻었고, 광역·기초의회에서도 상당수의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더욱이 촛불집회의 여파로 당선된 대통령 또한 민주당 소속이었다. 당내 분열도 거의 없었고, 오히려 일치된 모습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점은 1960년의 민주당보다 2022년의 민주당이 훨씬 유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비교적 높은 지지율(국정수행평가)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1%p도 안 되는 표차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기존 개혁세력보다 이전의 보수세력에게 기회를 줬다. 개혁세력이 추진하는 개혁은 미진했고, 개혁 지도층들의 내로남불적 행태, 자산불평등의 심화와 부동산 문제는 민심이 등을 돌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러니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도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이 있었다. 또한, 사회 개혁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써달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컸다. 

2022년의 민주당은 이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으나, 정치에 반영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어떻게 흡수는 했지만, 반영은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지금의 민주당이다. 이 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당은 안정의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민주공화국을 강화시키는 진보적인 정책들은 크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 빈틈을 이전의 보수정당은 다시 파고들었고, '궤멸'이라는 평가를 받던 5년 전과 달리 '화려한 부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게 됐다.

기회는 아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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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민주당 정권 시기를 무작정 '안정에 취한 퇴행 시기'라고만 평가할 수는 없다. 공평하게 평가하자면, 두 가지의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기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는 작지만 꾸준히 있어왔다. 제2공화국 민주당 정부는 대법관 선거제를 실시하려 했으며, 지방선거를 부활시켰다. 2022년의 민주당 정부는 사병 인권에 이전 정부보다 더 신경을 써 휴대전화 사용을 허가했고, 월급을 인상시켰다. 세계언론자유지수도 상승해 아시아 전체 1위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개혁들을 계속 이끌고 갈 수 있는 더 큰 개혁에서는 항상 망설이거나 이를 도외시했다는 점에 있다. 이에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허망하게 정권을 넘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2022년 민주당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이들에게는 입법부의 막강한 권력이 있다. 만일 뒤늦게라도 반성한다면 이 입법 권력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에 착수하면 된다. 그렇다면 다시 '개혁적인 민주당'에 대한 신임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여전히 망설인다면 180석도 순식간에 잃어버릴 것이다. 쿠데타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지금이라도 다시 개혁의지를 되찾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기를 바란다. 1960년의 민주당은 한 번만 보는 것으로 족하다.
#민주당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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