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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앞두고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

[20대 대선, 서사로 읽는 한국 정치 5]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

22.02.28 11:24최종업데이트22.02.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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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역대급 대선입니다.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로 20대 대선과 한국정치를 읽습니다. 어떤 후보와 정당이 나의 일상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할 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지 다각도로 모색해 봅니다.[편집자말]
검찰총장 출신 대선후보가 20대 대선에 출마했다. 공정과 상식, 법과 정의를 구현할 후보가 본인임을 앞세우는 절대적인 명분이 바로 검사 출신이란 배경이다. 이를 통해 집권 후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공약까지 내놨다.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하는 첫 번째 요인은 바로 '정권교체'다.

여기서 생각나는 영화 한 편이 있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2017년 1월 개봉한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인데, 엄밀히 말해 특수통 검사들의 생태보고서다.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검찰개혁과 그에 대한 저항이 이어지며 지속적으로 현실로 소환되며 각광을 받아왔다.

20대 대선 정국에서 영화 <더 킹>을 되짚으니 소름이 끼쳐온다. 그건 오롯이 영화 때문이라기보다 유권자들이 맞닥뜨린 20대 대선 정국과 바로 그 검찰총장 출신 대선후보 덕택이라 할 수 있다.

권력자 검사 한강식에 대하여  
 

영화 <더 킹> 스틸 이미지. ⓒ (주)NEW

 
그는 나이 20대 초반에 사시를 패스하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목포를 박살내더니 김영삼 정권에서 하나회 쑥대밭으로 만들어 차세대 검사장으로 강력히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군부독재 청산의 주역, 문민정부의 공헌자. (수사하는) 건마다 굵직하게 대박을 친다.- <더 킹> 속 박태수 대사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그'의 이름은 바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략수사3부장(실제로는 과거 특수부) 한강식 부장. 조인성이 연기한 박태수 검사의 흥망성쇠를 그린 <더 킹>에서 박태수는 한강식을 만난 처음 알현한 자리에서 관객들에게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렇다면 <더 킹> 속 가난한 목포 출신 박태수 검사는 왜 한강식을 동경했을까.
 
그의 라인을 잡는 것이 바로 1% 검사가 되는 길이다. 밤을 세워 사건을 해결해도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타깃을 잡고 기획하여 첩보를 모으고 그리고 가서 박살내는 일을 한다. 이렇게 눈에 뛴 검사야 말로 부장검사, 검사장으로 승진할 확률이 높으며, 그 위로는 쳐다도 볼 수 없는 검찰총장까지 간다. - <더 킹> 속 박태수 대사

박태수가 한강식을 처음 만나는 장면의 시대적 배경은 1996년. 군부독재 시대를 거쳐 YS가 하나회를 척결했다. 이후 군 권력의 빈자리는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이전 경찰이, 정보기관이, 검찰이 각자 분투했다. 이중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그 기소권은 정치권력도, 심지어 대통령까지 타깃으로 잡을 수 있었다. 상징적인 한 장면. <더 킹>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중앙지검 간부 캐릭터는 " X발 대학도 안 나온 새끼가, 상고 출신에 고졸 촌놈의 새끼가 그런 촌스러운 새끼가 이게 말이 되냐고. 이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 어떻게 세운 나란데 저런 조무래기 새끼가"라며 분개한다.

<더 킹> 속 특수통 검사들
 

영화 <더 킹> 스틸 이미지. ⓒ (주)NEW

 
그런 권력층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특수부의 별건수사는 대통령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그들만의 무기였다. 그렇게 타깃을 '박살내는 일'이야말로 특수부 검사들의 본연의 임무였다. 그래야 검찰총장까지 바라볼 수 있다. "그럼 끝이냐고?" 이어 박태수는 말한다.
 
아니, 진짜 큰 판이 기다린다. 대기업이나 굵직한 로펌으로 들어가 연봉 40억에서 50억 받으며 떵떵거리면서 살거나, 정계로 진출하여 국회의원이 되던지 더 깊숙이는 장관이나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더 큰 권력을 주무르고 휘두른다. 이거 우리 건데 잘 좀 봐줘, 이렇게 선배 후배 만나 술 마시고 그리고 용돈 주고.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세상에서 온갖 권력 다 누리면서 걱정 없이 사는 것이다. - <더 킹> 속 박태수 대사

이처럼 박태수가 한강식을 처음 만나는 장소가 젊은 여성 접대부들과 기자와 검사, 사업가 등이 질펀하게 어울리는 펜트하우스라는 설정은 꽤나 상징적이면서 사실적이다.

<더 킹> 속 특수부 검사들은 무속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차기 대권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정권에 줄을 서야 할 검사들에게 있어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운명을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일 터. 그 결과를 점치기 위해 무속인을 찾던 한강식은 급기야 직접 굿판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 이전 대선과 시대 배경을 겹쳐 놓은 <더 킹>은 한강식이 누굴 지지했는지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유력 재산가나 재벌 봐주기는 일상이다. 지방 검찰청에서 "밤을 세워 사건을 해결"하던 박태수가 한강식 일당의 눈에 띄는 계기도 장애인 여학생을 성폭행한 지역 유지의 아들의 범죄를 봐주면서다. 

정치개입도 예사다. 2002년 대선 직전, 한강식은 사우나를 즐기는 야당 정치인들에게 비위자료를 넘긴다. "이거 상대편 박살내라고 갖고 온 건데"라는 노골적인 당부와 함께 "잘 쓰세요. 차분히, 천천히. 쓸데없이 여유 부리지 말고"라는 확인사살도 잊지 않는다. 정치인이 상대방 정적을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한다. 말 그대로 고발의 사주다.

한강식과 박태수의 사무실 한 편에 마련된 자료실엔 이러한 비위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검찰이 확보 중인 비위 자료, 수사 자료들이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동원되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더 킹>은 한강수와 박태수 등이 어울리는 자리에 항상 일간지 기자를 대동시키는 설정은 빼놓지 않았다. 그 확보해 놓은 수사 자료를 유리할 때 마다 수사로 터트리는 이른바 '이슈를 이슈로 덮는다'는 검찰의 언론 플레이도 자세히 소개한다. 영화 속 검사와 기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검언유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결정을 위하여  

그리고, 사상 최초 검찰총장 출신 대선후보에 대한 검증 국면이 펼쳐졌다. 무속이, 고발사주가, 검언유착이, 제 식구 감싸기가, 봐주기 수사와 같은 의혹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실시간 전파되는 중이다. 후보 본인이 검사 시절 맡은 사건들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는 한편 부인이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을, 장모가 저지른 사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쪽에선 그에 대한 언론의 검증이 부실하다 질타하고, 다른 한쪽에선 상대 후보에 대한 '검찰'발 의혹들에 주목한다. 보수언론들마저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제1야당 경선에서 승리한 검찰출신 대선후보는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는 중이다. 반면, 유권자들은 검찰출신 대선 후보에 대한 더 기준 높은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더 킹>에서 한강수와 함께 흥망성'쇠'를 겪은 박태수도 결국 여의도에 진출한다. 한강식은? 수갑을 차고 후배 여성 검사에게 수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영화의 마지막, 총선 개표 결과를 앞둔 박태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기꾼이자 양아치였고 권력을 위해 충성하는 개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잘 먹고 잘 살아왔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실히, 자기 일에 충실히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은 돌아간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 언제 속임수를 쓰는지 언제 딴짓을 하는지 한시도 긴장을 풀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백발백중 당한다. 내가 어떻게 됐느냐고? 당선 됐냐고? 떨어졌냐고? 그건 나도 궁금하다. 왜냐면, 그건 당신이 결정하는 거니까.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
더킹 20대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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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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