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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우리는', 끝내 이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리뷰] 25일 종영한 <그 해 우리는>, 시청률이 말하지 않는 것

22.01.26 17:23최종업데이트22.01.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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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종영한 월화 드라마 '그 해 우리는' ⓒ SBS

 
사랑은 유한적인 우주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그냥 N분의 1일 뿐이겠지만, 개인에게는 사랑이 나를 움직이는 독립 변수가 된다. 삶의 모든 요소들이 사랑의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랑은 나를 움직이는 독립 변수가 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보편적이고 매력적인 주제지만, 뻔해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극본 이나은·연출 김윤진)은 기억에 남을 사랑 서사였다. 전국 기준 최고 시청률은 5.3%. 시청률만 놓고 보면 흥행작이라 보기 어렵겠지만, 더 이상 시청률은 절대적인 지표가 아니다. <그 해 우리는>은 지난 1월 2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3위에 선정되었다. 한국 넷플릭스 1위를 기록했고, 일본,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여러 아시아 국가의 넷플릭스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두터운 MZ 세대 팬덤을 바탕으로 대본집과 OST 음반의 발매도 확정되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 건데?'
 

SBS <그 해 우리는> 포스터 ⓒ SBS

 
1993년생인 이나은 작가는 EBS의 다큐멘터리인 '꼴찌가 1등처럼 살아보기'에서 착안해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고등학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 국연수(김다미 분), 그리고 수업 시간에 매일 잠만 자는 꼴찌 최웅(최우식 분)은 함께 청춘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 서로 다른 세상이 근거리에서 부딪히면서, 5년간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첫사랑 이후 10년, 그 사랑이 마침표를 찍은 지도 5년, 스물아홉살의 연수는 능력있는 회사원이 되었고, 스물아홉살의 웅은 스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 10년 전 찍었던 다큐멘터리가 다시 기억 속에서 살아나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협업을 매개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게 사랑의 역사를 훑는 시간이 시작된다. 이나은 작가의 담백한 극본, 그리고 계절감을 담은 파스텔 톤의 영상미는 낭만과 현실을 균형있게 교차했다.

<그 해 우리는>의 형식은 <연애의 발견>(2014)을 떠올리게 만든다. 장기간 사랑했던 연인이 헤어진 이후 일을 매개로 다시 만나고, 그 마음을 인터뷰와 내레이션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사랑의 역사를 더듬으며, 근사하지만은 못한 연애의 민낯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우리의 사랑은 미숙함으로 점철되었다. 웅과 연수의 연애도 그랬을 것이다. 현실의 장벽, 미래에 대한 불안 역시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 자리잡는다. 이 드라마는 첫사랑의 몽글몽글한 낭만을 소환하는 동시에,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건데?'라는 웅의 질문에 답하는 여정이었다. 더 단단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끝까지 사랑 외친, 여백의 드라마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 포스터 ⓒ SBS

 
"내 인생 별거 없는 줄 알았는데, 꽤 괜찮은 순간들이 있었어.
내 인생 괴롭힌 건 나 하나였나봐." - 국연수


현실적인 연애를 다루고 있는 동시에, 인물의 성장을 그려내는 것에도 성공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의 결핍과 열등감에 짓눌려 있는 인물들이었다. 언제나 앞만 보고 살아왔으며, 가난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연수는 이제서야 뒤를 돌아본다.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음을 깨닫는다.

웅은 '버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열등감을 내려놓고, 삶의 지도와 사랑을 모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관찰자의 역할에 머물고 있었던 지웅(김성철 분) 역시, 비로소 자신을 중심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없었던 조각을 찾아가는 인물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응원하게끔 했다.

<그 해 우리는>은 순한 여백의 드라마다. 극의 흐름이 평이하다고 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12회 말미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다시 시작된 이후 진행된 13~15회의 경우,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루즈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청자의 미움을 받는 악역도 없다.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피카레스크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애 소멸'이라는 표현이 자주 들려오는 요즘, <그 해 우리는>은 오히려 우직할 정도로 사랑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였다. 사랑은 연인, 짝사랑, 가족과 친구의 범주를 가리지 않는 것이다. 막이 내렸다. 웅과 연수, 지웅과 엔제이, 솔과 은호, 채란 등. 막이 내린 후에도 모든 인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그 해 우리는>은 '결국 사랑하게 된 이야기'가 되어 막을 내렸다.
그 해 우리는 최우식 김다미 웅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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