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병에 걸리는 사람 없는 휴대폰 공장 되기를

[후기]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 폐암 피해자 산재 불승인

등록 2022.01.03 17:29수정 2022.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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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에서 근무하다 암에 걸린 피해자입니다. 제가 휴대폰 공장에서 근무한 시기는 2005년부터 2007년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당시는 스마트폰 이전 애니콜 시리즈를 만들던 시기였지요. 퇴사 이후에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다른 곳에 취직도 하였지만, 2014년부터 폐암과 데스모이드 종양이라는 큰 병을 연달아 진단받았습니다.

제가 휴대폰 공장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큰 병에 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공장에 들어서면 공기가 회색 빛깔이었고 냄새가 났습니다. 작업자들에게 피부 트러블이나 생리불순도 빈번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별다른 안전교육도 없었고 보호구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근무했기에 공기 빛깔, 냄새, 내 몸의 이상 모두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알게 되었고 2019년에 반올림과 함께 산재신청을 하였습니다. 제 암을 산재로 인정받는 것이 힘든 일인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걱정과 고민 끝에 산재신청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돈을 벌려고 취업을 했는데 오히려 큰 병을 얻어오고 제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졌습니다. 저의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배경에서 휴대폰 공장에서 일한 분들이, 저와 같이 큰 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제가 먼저 목소리를 내고 위험성을 알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2019년에 진행한 산재신청은 긴 조사과정을 거쳐 올해에야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불승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분명 제가 일해 온 환경들과 제 병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암 가족력도 없고, 암에 걸릴만한 별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제 근무기간이 짧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근무해야만 암에 걸린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대폰 공장에는 저 뿐만 아니라 혈액암, 대장암 등으로 투병하고 있는 다른 피해자분들도 있습니다.

산재 과정에서 제가 근무한 공정(SMD : PCB 위에 부품을 납땜하는 공정)에서 암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한 연구를 보았습니다. 그 연구가 사실이라면, 저를 통해 그러한 위험이 사회에 알려져서 조금이나마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 공장의 근무환경이 조금 더 쾌적하고 안전하게 되기를, 휴대폰 공장에서 일하다 큰 병에 걸리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고자료 1] 반올림 휴대폰 피해제보 상황
 
반올림 휴대폰 피해제보 상황 (총 11명)
백혈병 3명
림프종 1명
재생불량성빈혈 1명
폐암 2명
대장암 1명
갑상선암 1명
루푸스 2명
 
[참고자료 2] PCB 부품 납땜 작업의 위험성을 지적한 연구자료

"다른 금속흄들과 용제, 프럭스가 혼합될 경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승효과로 인하여 다양한 만성 건강장해가 일어나며, 알려진 바로는 포름알데하이드와 하이드로크로릭산이 반응하여 발암물질인 비스크로로메칠에테르(BCME)가 생성되어 폐암에 걸리게 될 수 있다."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제조업 사업장 공정별 유해물질 노출실태 편람 개발 연구'

[참고자료 3] 같은 공정 산재 인정 사례

"작업 공정 중에 납, 주석, 플럭스, 이소프로필알콜 등 유해요인에 노출되었고, 2002년도 이전의 사업장에 대한 조사가 충분치 않았던 점, 신청인이 업무를 시작한 시기가 만17세로 비교적 어린나이에 유해요인에 노출되었다는 점, 신청인이 업무를 수행한 1990년대의 사업장 안전관리 기준 및 안전에 대한 인식이 현재보다 낙후되어 보호장구 미착용 및 안전조치가 미흡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최근의 뇌종양 판례 및 판정위원회에서 승인된 유사 질병 사례를 고려할 때 업무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는 것이 심의 회의에 참여한 의원들의 다수 의견이다." - 한혜경님 뇌종양 업무상질병판정서
#직업성암 #전자산업 #휴대폰 #직업병 #반올림
댓글

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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