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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로 승부 건 개그 어벤져스, 지상파 코미디 부활할까

[TV 리뷰]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개승자>

21.11.14 11:44최종업데이트21.11.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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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 KBS

 
지상파 방송에 공개 코미디가 부활했다. KBS 2TV 새 예능 <개승자>는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로 2020년 6월 종영된 <개그콘서트>에 이어 약 1년 5개월 만에 지상에서 선보이는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개승자>만의 특징은 공개 코미디에 서바이벌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희극인들이 팀을 이뤄 다음 라운드 진출 및 최종 우승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매 라운드 시청자 개그 판정단의 투표로 생존 결과가 좌우되며 최종 우승팀에게는 1억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13일 방송된 <개승자> 첫 회에는 오랜만에 공개 코미디 현장으로 돌아온 희극인들의 설레는 모습과 치열한 무대 준비과정이 그려졌다. 방송은 KBS 공채 7기인 국민 MC 유재석의 내레이션을 통해 공개 코미디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개그콘서트>가 배출한 스타였던 김대희, 김민경, 이수근, 박준형 등은 공개 코미디 폐지 당시 희극인들이 받은 충격과 선배로서의 미안함을 언급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희극인을 통하여 <개승자>를 통하여 다시 찾은 코미디 부활에 대한 강한 사명감과 의욕도 함께 드러내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12인의 희극인 팀장들은 고음불가(이수근), 왕비호(윤형빈), 갈갈이(박준형), 발레리노(박성광-이승윤) 등 각자 <개그콘서트> 시절 전성기를 보냈던 추억의 캐릭터로 분장하고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이어가던 상황에서 돌연 김성주가 등장했다. <슈퍼스타K>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국민가수> 등 '서바이벌 전문 MC'답게 김성주가 "내가 진행자로 왔다는 의미는 무조건 경쟁이다"라고 선언하자 희극인들은 일순간 긴장감에 휩싸였다.
 
본 경연 전에 자체 사전 투표로 선정한 유력한 우승후보에는 박준형과 이수근이 공동 1위로 선정됐다. 박성광은 '박준형은 히트 코너 제조기로 대부분이 본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다'며 높이 평가했다. 윤형빈은 '구성 난이도가 높은 다양한 개그 장르 형태의 전성기를 연 인물'이라고 박준형을 호평했다. 변기수는 이수근에 대하여 공연 순서가 펑크가 났을 때 기타 하나만 들고 20~30분간 즉흥 개그로 관객을 웃겼던 일화를 공개했다. 또한 박준형과 이수근은 모두 스스로에게 셀프 투표를 한 사실이 공개되며 못말리는 자기애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팀장보다는 내가 낫다'는 설문에서는 거침없는 디스전이 이어졌다. 이수근은 김준호를 지목하여 "가정사는 내가 낫다"고 놀리며 이혼이라는 흑역사를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박준형은 김대희를 지목하여 "김준호 팀의 팀원 아니냐"는 독설을 날려 희극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실제로 친구인 김민경과 오나미는 나란히 서로를 지목했는데 둘 다 이유가 "예뻐져서"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던지자 지켜보던 남성 출연자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김준호는 모든 팀장들이 '자기보다 밑'이라고 선언하는 패기를 선보였다.
 

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 KBS

 
희극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탈락 후보 1위'라는 주제가 나오자 분위기가 다소 진지해졌다. 이승윤이 4표를 얻어 불명예 1위가 됐다. 동료들은 "뻔한 근육 개그를 할 것 같다", "산(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내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도시에선 약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예상했다면서도 표정관리에 곤혹스러워하던 이승윤은 "더 열심히 하기 위한 자극이 됐다"며 전의를 다졌다.
 
김성주는 경연의 룰을 설명했다. 코미디 경연의 모든 결정은 대국민 투표로 진행되고 우승자를 가릴 때까지 매 라운드마다 탈락자가 발생하는 데스매치 구성이었다. 김성주는 경연에 참가하는 또다른 한 팀의 존재를 밝히며 1라운드에서는 총 13팀 중 12팀이 생존한다고 설명했다. 모습을 드러낸 13번째 팀의 정체는 바로 KBS 공채 코미디 29기, 32기 막내 기수로 이루어진 신인팀이었다.

13팀의 각 팀장에게는 4장의 캐스팅 카드가 주어지며 팀장 포함 5명의 팀원을 구성할수 있었다. 여기에 매 라운드 와일드카드로 1명씩을 추가 영입할 수도 있다. 투표방식은 밀어내기 방식으로 득표수가 적은 팀이 계속 잔류하며 마지막까지 남은 팀이 탈락하게 된다.
 
경연순서 추첨에서는 1번 박성광- 2번 이수근-3번 박준형-4번 김대희-5번 김민경-6번 김원효-7번 변기수-8번 유민상-9번 신인팀-10번 김준호-11번 윤형빈-12번 오나미-13번 이승윤 순으로 결정됐다.
 
첫 주자로 나선 박성광은 이상훈과 양선일, 김회경을 팀원으로 영입한 데 이어 남호연을 와일드카드로 추가했다.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2번으로 무대를 꾸미게 된 이수근은 윤성호, 유남석, 김민수, 정성호에 이어 와일드카드로는 고유리를 추가로 영입했다.
 
99인의 일반인 개그판정단과 함께하는 1라운드가 시작됐다. 1번 박성광 팀은 '개승자 청문회' 코너를 준비했다. 국회 청문회를 패러디한 콩트로 남호연이 개그위원을, 박성광-이상훈-양선일이 증인을, 김회경이 개그위원장 역할을 각각 맡았다. 증인들의 지난 개그과 흑역사를 소재로 남호연의 속사포같은 질타와 박성광 특유의 억울한 샌드백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대본에 얽매이지 않는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와 리액션이 돋보였다.

이수근 팀은 음악을 활용한 '아닌 것 같은데'를 준비했다.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이수근의 기타 연주와 노래 가사에 맞춰 다른 팀원들이 자연스러운 상황극을 펼치다가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마무리짓는 재치있는 구성이 돋보였다.
 
결과는 53대 46으로 이수근 팀이 승리를 거두며 첫 번째로 생존했다. 이어진 예고편에서는 남은 11팀의 경연과 함께 준비과정에서 연이은 시행착오로 멘붕에 빠진 희극인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궁금증을 높였다.
 
<개승자>는 위기에 빠진 한국 정통 코미디의 명맥을 잇는 프로그램으로 기대를 모은다. 2020년 <개그콘서트> 폐지를 끝으로 지상파 3사의 공개 코미디가 모두 전멸하며 코미디 위기론은 현실이 됐다. 정통 코미디는 tvN <코미디 빅리그>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 가운데, 그나마 인지도있는 희극인들은 유튜브나 타 방송 예능에 진출하는 식으로 새 활로를 찾았지만, 대다수의 희극인들은 생존의 위기에 몰렸다. 생계 문제로 희극인의 길을 아예 포기한 이들도 다수였다.
 
KBS는 <개승자>를 통해 공개 코미디 부활을 염원해온 시청자와 희극인들의 간절한 바람에 화답했다. 출연자들은 마치 처음 데뷔하는 신인의 열정과 초심으로 프로그램에 임한다.
 
김민경이 방송에서 오랜만에 경쟁 상대로 만난 후배들을 보며 미안함과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선배로서의 죄책감'을 토로하는 장면, 신인팀의 리더 홍현호가 목매인 음성으로 "대단한 선배님들과 경쟁하는 게 영광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 이겨버리겠다"는 패기 넘치는 출사표를 던지는 장면, 이수근 팀의 멤버로 합류한 유남석이 그간의 한을 풀 듯 온갖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투머치 토커' 본능을 드러내는 장면 등은 쉽게 보기 힘든 희극인들의 진지한 속내를 보여주며 웃음 이상의 진한 여운을 남겼다.
 

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 KBS

 
바로 많은 희극인들에게 무대가 어떤 의미인지, 그동안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무대를 기다려왔는지를 잘 보여주었기에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했다. <개콘>의 전성기를 이끈 베테랑 희극인에서부터 막내 기수들, 여기에 타 방송사 출신의 희극인들까지 참가시키며 모든 서열과 구분, 계급장의 벽을 깨고 오직 개그만을 위한 최정예 멤버를 구축하여 기대감을 높였다. 매 라운드마다 탈락팀이 나오기에 희극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존의 방식과 달리 서바이벌 방식과 상금제를 도입한 변화를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더 우세하다. 기존 콩트 형식의 공개 코미디 포맷이 시대 흐름에 뒤쳐졌다는 지적을 수용하여 참가자들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양질의 개그가 나올 수 있게 유도했다. 누구보다 코미디의 부흥을 원하는 '코미디 어벤져스'의 간절함이, 지상파 코미디 부활을 이끄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개승자 박성광 서바이벌 이수근 공개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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