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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대체 뭐길래

[김성호의 씨네만세 354] <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21.11.10 10:43최종업데이트21.11.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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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어페어 포스터 ⓒ (주)슈아픽처스

 
사랑만큼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때로는 남자와 남자가, 또 여자와 여자가 사랑을 한다. 연인이 되면 서로 껴안고 입술을 맞대거나 몸을 섞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보고 또 사랑을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것만 사랑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아끼는 걸 보고도 사랑한다고들 한다.

누구는 아가페적 사랑과 에로스적 사랑을, 또 누구는 플라토닉 사랑과 에로스적 사랑을 구분한다. 그런데 그 구분을 따라 다시 들어가 봐도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정의하기 어렵다. 아가페와 에로스, 플라토닉과 에로스가 얽히고설키며 뒤섞이다 나눠지는 게 사랑이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내가 아는 사랑과는 꽤나 멀리 있는 것일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하겠다.

사랑이란 이처럼 복잡다단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사랑에 식지 않는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아무리 시시껄렁한 술자리라도 누군가 사랑을 말하면 확 불타오르곤 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관심 가는 선생님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묻는 것도, 예능과 드라마와 가요 중 사랑이 빠지는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가 아무리 진화할지라도 끝끝내 완전히 극복하지 못할 것, 그것이 사랑이다.
 

▲ 러브 어페어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사랑이 무엇이냐, 답을 찾는 여정

엠마누엘 무레의 <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영화다. 여기서 사랑에 대한 영화라는 건 연인이 나와서 역경을 뚫고 결실을 맺는다는 흔해빠진 멜로란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영화라는 뜻이다.

누군가 무레에게 "자네가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를 물은 것처럼, 감독은 러닝타임 내내 열성적으로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랑의 단면을 펼쳐낸다. 그려지는 수많은 사랑 가운데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그 모두를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점차 혼란스러워져 참지 못하고 '그래서 도대체 사랑이 뭔데' 하고 묻고 싶어질 때쯤 영화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답을 내린다.

이야기는 프랑스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 한 남자가 나타나며 시작한다. 소설가를 꿈꾸는 그의 이름은 막심(니엘스 슈나이더 분), 오랜만에 사촌형(빈센트 맥케인 분)을 만나러 떠나온 길이다. 애써 찾았지만 마침 형은 자리를 비웠다.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며칠 출장을 나간 것이다. 별장엔 임신 3개월 차인 형의 애인 다프네(카멜리아 조다나 분)가 있다.
 

▲ 러브 어페어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썸과 연애, 어장과 물고기

영화는 막심과 다프네가 서로 자신들의 연애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된다. 막심은 제가 오랫동안 짝사랑한 여자 때문에 속을 썩이는 중이다. 우리 표현으로 그녀는 어장관리의 달인이다. 프랑스식 첨단 어장에 막심의 마음이 남아나질 않는다. 막심의 친구가 그녀와 연애를 하고, 막심은 그들의 제안으로 그들의 집에 함께 들어가 살기까지 한다. 몸은 나누면서도 마음은 주지 않고, 마음은 주면서도 몸은 나누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거듭 펼쳐지며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사촌형을 보러 떠나온 길이다.

다프네의 이야기도 가관이다. 다큐멘터리 편집자인 다프네는 남몰래 감독을 짝사랑하지만 그는 자신이 소개해준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친구에겐 이미 애인이 있지만 사랑에 빠진 감독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다프네가 낙담하고 있을 때 다가온 한 남자가 있으니, 그가 막심의 사촌형이다. 다프네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몸은 물론 마음까지 주고 만다.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에 부담 없이 맺은 관계지만 어느 순간 불붙은 관계는 그의 부부관계까지 깨뜨리기에 이른다.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사랑이야기가 거듭되는 가운데 영화는 줄거리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를 조금씩 깊이 진행해나간다. 그로부터 때로는 욕망이고 때로는 책임이며 또 때로는 유혹과 외로움이기도 한 사랑의 여러 면모가 드러난다. 각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의 사랑을 실현하는 가운데 삶은 거침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영화는 답을 내리지 않는 듯, 답을 내린다.

<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명성을 지닌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2020년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꼽은 작품이다. 한국에도 부산국제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를 통해 영화팬들 앞에 선보여 썩 괜찮은 평을 얻었다. 생소하다는 평을 자주 듣는 프랑스영화지만 사랑을 주제로 한 만큼 국경과 문화권을 넘어 충분한 호소력을 지녔다고 봐도 되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부디 이 영화를 지나치지 않기를.
 

▲ 러브 어페어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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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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