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을 바라보는 태도

[주장] 탈시설 정책 개발 중심에는 장애당사자가 있어야

등록 2022.02.21 08:00수정 2022.02.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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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장애계의 오랜 숙원사업인 '탈시설 로드맵'을 심의 및 확정 그리고 발표했다. 중앙정부의 차원에서 최초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계획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로드맵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해야 하고, 선결되어야 하는 현안들이 산적하다. 

주택공급, 지역사회의 인프라 구축 등 여러 선결과제가 있겠으나,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을 폄훼하는 사회 문화적인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시설에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의 고용 승계, 즉 노동권 보장에 대한 쟁점도 선결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본 글에서는 전자에 대해 다루고, 후자의 내용은 후속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우선, 장애 당사자로서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서울복지재단에서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기 위하여 자립생활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자립생활주택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서류가 있는데, 서류에는 자립과 무관한 정보들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가령, 정신장애 치료력이 있었는지를 기재해야 하고, 한글과 수 개념의 인지 여부에 기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해력이 없고 수학적인 개념이 형성되지 않은 장애인은 탈시설의 자격이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시스템은 철저하게 관리중심의 시스템이고, 탈시설은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비장애인이 자립할 때는 이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에게 한글 개념 인지 여부 등에 대해 묻는 것은 차별행위이다. 

중증장애 당사자의 의견은 묵인하는 한국사회

중증장애인의 탈시설 반대의견과 관련하여 의문점이 있다. 그것은 '중증장애 당사자의 의견이 왜 없는가'라는 점이다. 탈시설의 반대의견을 보도하는 언론 그리고 성명서에는 장애 당사자들의 의견들을 찾아볼 수 없다.


중증장애인도 장애정도가 심하더라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의사표현이 가능한 존재인데,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이는 한국사회의 장애에 대한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자립과 관련된 욕구조사에서 무응답한 장애인이 탈시설을 반대하는 것으로도 비추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을 부정적으로 다루고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탈시설이 사형선고"라고 외치는 것이 마치 전체 장애인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이 있다.

또한 장애인 거주시설은 특정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평화신문>에서 2021년 10월 17일에 "한국 교회가 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 역시 당사자의 의견이 배제됐다. 왜 장애 당사자가 아닌, 특정 단체나 비장애인의 의견을 중심으로 보도하는지에 대해 언론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하다.

탈시설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부모단체와 일부 단체의 이야기만 듣고 보도하는 일부 언론은 탈시설이 중증장애인에게 위험한 것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인식하도록 보도하고 있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단체에서 "내 아이는 힘센 치매 환자"라는 혐오표현도 사용하고 있는데 언론은 필터링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는 "탈시설 정책을 실행하려면 안락사도 허용하라"는 극단적이고 탈시설의 기본정신에서 벗어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탈시설이 어떻게 죽음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는가! 오히려 탈시설이야말로 시설거주 장애인이 새로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제고를 위하여 다양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롭게 출범하게 될 차기 정부에서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개혁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탈시설 정책의 실행에 있어 선결되어야 하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 요소는 주거이다. 따라서 현재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시설에 있는 모든 장애인이 단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실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간 생활에 기초가 되는 주거, 즉 지원주택을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에 있어서 형식적인 제도와 법이 마련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삶이다. 형식의 틀에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가치를 놓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든 정책에는 시민의 삶을 투영해야 하듯이, 탈시설 정책의 개발에 있어서 '삶'이라는 입장 속에서 접근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장애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탈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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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현재는 동대원 박사과정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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