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에 날개를 달아드리고 싶었어요!"

[인터뷰] 양숙현 서산검정고시학원(노둣돌평생교육원) 원장

등록 2021.07.01 09:11수정 2021.07.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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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숙현 서산검정고시학원(노둣돌평생교육원) 원장 . ⓒ 최미향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죽도록 일만 했던 분들이 바로 우리 학원생들이에요. 이분들이 한글을 몰라 은행 일도, 차표도, 심지어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마음대로 시키지 못하시는 분들이에요. 이름 석 자를 배우기 위해 병원 간다는 말로 둘러대고 학원에 다니는 게 너무 마음 아팠어요. 이분들이 바로 우리나라를 이만큼 성장시킨 분들이거든요."

배움에 목마른 분들이 벽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설 때 벽 뒤에는 반드시 문이 있다는 것을 학원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서산검정고시학원(노둣돌평생교육원) 양숙현 원장. 지난달 26일 충남 서산시에 있는 교실에서 그간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양 원장에게 들을 수 있었다.
 

노둣돌평생교육원(서산검정고시학원) . ⓒ 최미향

 
- 서산에서 검정고시학원을 설립한 배경이 듣고 싶다.
"천안에서 검정고시학원을 먼저 운영했다. 초창기 태안에서 천안까지 유학 오신 남자 수강생이 '서산·태안 쪽에 나처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텐디 배울 디가 없슈. 서울까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유'라며 지나가는 바람보다도 더 빠르게 말씀하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음을 정하고 서산교차로 담당자에게 학원 자리 광고를 의뢰했다.

시장조사차 서산에 처음 오던 날은 억수 같은 비가 내렸고, 천둥번개까지 치는 악천후였다. 속으로 '서산에 들어와 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날씨마저 나를 시험했던 걸까. 올 놈인지, 말 놈인지'라며 툴툴거렸다.

남편의 고향은 온양이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을 남편과 슬하에 4살 2살인 어린 두 딸을 놓고 서산에 입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로서 자녀교육은 생각 끝에라도 있기는 했던 건지. 간혹 그 시절을 생각하면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하긴 후회하면 뭣하랴. 그때는 그게 맞았노라고 위로해 본다. 후회가 밀려들 때마다 두 딸에게 얘기한다. '엄마 사랑으로 컸어야 할 니들을 챙기지 못해 그게 제일 맘에 걸려. 말할 수 없이 미안해. 나중에 니들 애기들은 엄마가 잘 키워 줄 거야.' 그 말이 끝나면 큰 애의 기억은 어느새 4~5살에 가 있는지 낮잠에서 깨보니 할머니가 없어서 울었다는 둥, 아기스포츠단 시절 수영복을 안 챙겨가서 창피했는데 진주라는 아이의 엄마가 빌려줬다는 둥. 사실 그때마다 딸 아이의 애린 기억을 잊게 할 마법의 약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안 학원은 다행히 듬직한 강사에게 인계하고 그렇게 지역을 옮겨 서산에서 터전을 잡았다. 꼽아보니 어느새 21년이다. '21년이면 서산 유지다 야. 애썼다 애썼어~~.' 이 말은 한 달 전쯤 고창 너른 청보리밭에서 난생처음 통화한 외사촌 이모의 말씀이다. 입김을 내쉬며 '여기까지 참 잘 왔다. 그런고로,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노라고...'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2018년 노둣돌 수학여행 중 군산에서 . ⓒ 최미향

 
- 검정고시학원을 서산에서 설립하고 '소중한 인연들', '날개 편 인연들'이 많았을 것 같다.
"서산에 검정고시학원 둥지를 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 시대적, 경제적, 여자라는 이유 등으로 교육의 기회를 놓쳐 늘 마음 한쪽이 휑하도록 베어내고 계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배움의 갈증은 배우자의 성공도, 자녀들의 높은 교육도, 옷장 안에 자리한 고급 모피코드도 치장한 보석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아픔이다.

'그래 배우지 못해 생긴 병이다. 이대로 못 배우고 인생 끝나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다. 서로가 기로에 선 만남들이었기에 영어 수학이 문제였겠나. 까짓것 어렵다 해도 못 해낼 게 뭐 있겠나. 정말 오기로 한마음이 되어 한 차례씩 오는 공부병(痛)을 이겨가며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노둣돌평생교육원 교실 전경 . ⓒ 최미향

 
-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이런 아픔을 많이 겪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분들이 있나?
"대부분의 학원생이 기억난다. 이곳은 일반 학원과 달리 배우자와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 좁은 지역에서 뉘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만도 하는 사이에는 둘러댈 말도 한정돼 있다.


'날마다 어데를 그렇게 나가나'라고 물으면 '안 아픈 데가 없어. 병원 가', '아들네 가. 손주 좀 봐 달랴'라고 둘러댔단다. 또 '춤 바람나서 그랴'라고 하는 분들에게는 '자꾸 알려고 하면 다쳐'라며 적당히 둘러대기도 했다는 학생들이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검정고시학원은 학원이 아니고 병원이요, 시장이요, 한의원이요, 아들네 집으로 둔갑하여 비밀리에 공부하는 불안한 곳이었다. 그 이면에는 '짜릿함'이 더 컸을 것도 같고.

컴퓨터나 요리나 영어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가벼운 찬사라도 받겠지만 졸업장이 없어서 공부하러 다닌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졸업장이 밥 멕여 주냐, 졸업장 없이도 잘살아왔는데 웬 고생을 사서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말하고 나면 더 얕본다는 사람이 많아서 더욱 비밀리에 하려는 입장이 바로 우리 늦깎이 학생들이다. 괜히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 소리를 학원에 와서 하게 되면 내 임무는 더 커진다. 교과목 익혀서 합격도 시켜야 하고, 배웠으니 더 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니 말이다. 더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 어디서든 빛이 나도록 해야 하니까. 충동질이 많고 클수록 상대적으로 목표물의 질량치 역시 커졌다. 어찌 보면 그런 다짐이 고맙기만 하다."
 

노둣돌문해교육생들 3명과 함께 참석했던 충청문해교육협의회 열린운동회 . ⓒ 최미향

 
- 검정고시학원을 하며 보람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못 배운 공간을 채워 대학에 진학하신 분들, 석사 박사과정도 마친 이들, 정치가가 꿈이었던 이는 그 꿈을 이룬 분도 계신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이는 국문학을 전공하여 시집도 여러 권 내셨고, 복지 분야 전공 후 복지기관을 설립하여 사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21년 동안 배출한 합격생만 해도 어림잡아 1700여 명이다. 서로의 안부를 꾸준히 물으며 만나는 졸업생들이 많다. 우리의 보석 같은 인연이 결실이 되어 현 위치에서 더 강하고 넓게 자리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최근에는 18살 지로가 생각난다. 이쁘기 그지없는 지로는 올 4월에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올 3월만 해도 '선생님, 저 합격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준비하는데 떨어지면 창피해서 어떡하죠?', '하우~~붙겠죠? 잘 해볼게요. 또 해봅시다.' 지로는 자문자답에 능한 아이다. 그런 지로가 보란 듯이 시험에 합격해 케이크 상자를 들고 학원을 찾아왔다.

'선생님 덕분에 합격했어요. 많은 얘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준비하는 학생들도 8월에는 다 합격하길 바래요'라는 덕담도 함께 선사했다. 지로와 나는 수업하는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꽃을 피운 것 같다. 하하 호호 깔깔대며 한자 급수도 공부하고, 우쿨렐레도 함께하며 말이다. 때로 공부하다 지치면 퀴즈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바둑 알까기도 하고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시간을 메워갔다.

위로 형제가 없던 나로서 언니 오빠가 있었다면 내게 해줬음 직한 얘기들, 내가 듣고 싶은 얘기들을 지로를 통해 또는 노둣돌 학습자를 통해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올해는 8월 11일 검정고시 2회 시험을 앞두고 있다. 준비하는 모든 학생이 무난히 합격하기를 기원한다."
 

노둣돌과 실버통합교육 강사와 워크샵(용인에서) . ⓒ 최미향

 
- 노둣돌평생교육원 설립 배경과 교육 과정은 어떻게 되나?
"2001년부터 교육인적자원부에서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이 시작되었고 서산시는 2006년에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됐다. 평생교육이란 정규학교 교육 이외의 모든 교육을 말한다.

평생교육의 시대가 온다는 화두를 들고 교육의 현장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우선 나부터 평생교육을 받아야겠다고 결정하고 공부를 했다. 교육사업을 하며 가르치는 일에만 급급하다가 서른 중반의 나이에 또다시 학생의 신분이 된 나 자신을 보니 그게 얼마나 설레고 기쁜 일인지 학생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레크리에이션을 시작으로 웃음치료사, 한자지도사,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 평생교육사, 성폭력상담사 공부를 즐겁게 해나갔다. 공부가 힘들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재충전하는 시간이라 말하면 콧방귀 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정말 적어도 내겐 그런 의미가 더 컸다.

배우는 일이 내 교육의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이니 그 외에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대학원에 등록하여 평생교육 석·박사과정을 마쳤고 2015년 수료했다. 그리고 노둣돌평생교육원을 설립했다."
 

2020년 충남평생교육진흥원 소외계층 사업 프로그램에서 하트김밥 만들기를 하며 . ⓒ 최미향

 
- 이름이 참 특이하다. 노둣돌은 어떤 뜻인가?

"노둣돌은 말에 오르내릴 때 딛는 디딤석이다. 꿈을 꾸려는 이들이 안전하게 딛고 올라서라는 뜻으로, 정호승의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라는 수필집을 읽다가 발견한 보석 같은 말이다.

안 그래도 검정고시 합격 후에 원생들과 소통거리 부재의 아쉬움이 있었는데 노둣돌 설립 후 학습자들이 요구하는 부분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더 즐거운 소통을 하고 있다.

학력보완교육(검정고시), 문해교육, 충남평생교육진흥원 공유로 사업·평생교육사 실습 기관, 실버통합교육, 동아리활동, 교육부 지원사업인 디지털배움터, 남편의 학부전공인 컴퓨터교육과 대학원 전공 분야인 한자급수교육 및 아동한자지도사, 교육부 주관 평생교육 바우처 지원 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한 말씀 해달라.
"적어도 기초학력교육을 받는 학습자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더 이상 밀려나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찾아 도움을 드리고 싶다. 학력보완교육 책무를 하다 보니 기초교육 졸업장 없는 설움이 어떤 마음일지 크게 공감이 간다.

꿈은 있되 경제적인 이유와 시대적인 이유로 시도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포기해야만 했던 아픈 과거의 우리 부모님 세대. 그리고 살면서 개인과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와 위축을 느끼며 살아왔던 분들의 삶.

학력취득 후에 비로소 평생교육에 입문하게 된 사례들을 보며 학력보완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교육의 시작이요. 평생교육의 자양분이 되는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 기업이나 개원 후원을 동원해서라도 교육의 격차를 좁혀가도록 힘쓸 예정이다.

또한 희망의 날갯짓을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이곳이 더 안전하고 든든한 디딤석이 되도록 자리매김하고 싶다. 노둣돌 부부 역시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인의 표상과 귀감이 되도록 쉼 없이 정진하고 노둣돌을 찾는 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정신을 생각하며 오늘의 희망을 잇는 터전으로 가꿀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문해교육 #노둣돌 #서산검정고시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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