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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부조리는 '건수'가 되지 않는다고?

[누구나 청년을 좋아해 ①] 우리가 이 기획을 시작하기까지

등록 2021.07.07 14:00수정 2021.07.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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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청년유니온 기획 '누구나 청년을 좋아해'는 마치 누구나 청년을 좋아하는 것 같은 우리 사회를 깊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청년을 위한다'고 하는 경기도 내 비청년들의 왜곡된 시각이나 '청년을 위한다'고 홍보하는 일터에서의 실제 경험, 또는 현장에서 목소리 내는 청년들이 겪는 탄압(?)과 문제의식 등 언론에서 취재하지 않은 다양한 주제로 두 달 동안 연재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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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픽사베이

 
지난해, 한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고심 끝에 우리가 경험한 부조리를 고발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 기자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으로 보였다.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몇 번의 끄덕임을 거쳐, 때때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빼앗기던 끝에 나온 기자의 말을 통해 그가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평가는, 우리가 겪은 일상적 부조리는 '건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마 그가 말하는 '건수'가 되려면 언젠가 뉴스에서 봤던 것처럼 대학원생에게 교수가 똥을 먹이는 수준의 끔찍한 사건이어야 했나 보다. 그런데 그 교수 사건은 어떻게 해결되었던가? 뉴스에서 그 폭력성과 엽기성을 반복해 강조하던 영상만이 떠오른다. 그 보도 이후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지만 '건수' 타령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이후에 일어났다. 우리의 인터뷰 내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내부 의견을 수용해 싣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기자는 그 철회 과정에서 우리가 가졌던 고민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기사가 개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악용되기보다 구조적으로 만연한 비민주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취지로 고민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후 마주하게 된 기사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기사는 기사라기보다는 사실상 소설에 가까웠다. 우리의 의도와 말을 온전히 왜곡하여 우리를 '외압 앞에 말도 못 하는, 힘없고 불쌍한 청년'으로 타자화시켰다. 그리고 취업한 자신을 '불쌍한' 우리와 구분 지으며, 값싼 동정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우리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가치가 없어서 기사가 될 수 없었다면, 개인적 감상에 가까운 그 글은 대체 어떤 사회적 효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그 글은 '착하지만 불쌍한 청년', '그리고 그런 청년들을 억압하는 악마'라는 유치한 이분법적 해석만을 제시했다. 기자는 '너희 존재 화이팅!'이라는 결론을 맘대로 도출하며 현장의 고민을 덮어버렸다. 문제 제기로 마무리되어야 할 글이 물 묻은 성냥처럼 불이 붙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직접 쓰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다른 기자로부터 '물가도 오르는데, 취업 안 되는 청년 좀 소개해달라'는, 맥락을 알 수 없는 부탁을 받았다. 이 또한 청년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 제기보다는 '보편적인 청년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불행 포르노'의 소재가 될 것이었다. 여러 일련의 뼈 저린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청년을 '불쌍한 패배자'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는 기성 언론에 염증을 느꼈다.


기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기자를 만난 이유는 기사라는 외적 수단을 통해 우리의 경험에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인 기사는 온전히 주관적이었는데, 그 주관성이 기자의 의도를 관철하는 데에만 활용되었다.

어차피 기사가 그런 주관적인 스토리텔링이라면, 우리가 불쌍하게만 보여지는 소설보다 차라리 당사자로서 직접 쓴 글은 어떨까. 기사는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험이 그토록 '건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우리의 경험이 모두의 이야기라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련한 피해자로 박제되는 대신 이 자리를 빌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직접 쓰려고 한다. 청년이 아닌 사람들이 그토록 입에 많이 담는 '청년의 일터와 삶'에 대해, '청년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의 위선과 부조리에 대해.

또한, 결국 청년의 이름으로 말하는 우리가 겪은 사회문제가 결국 청년 대다수가 겪는 모두의 고통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청년의 목소리를 지워내려는 사회를 향한 투쟁 방식이기도 하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말을 끝으로 우리의 글을 시작해나가고 싶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존재들은 지워집니다."
덧붙이는 글 청년 정책과 관련된 일터에서 겪은 부조리함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 경기청년유니온(조합원 뿐 아니라 비조합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에서 쓴 글입니다. 이름이 밝혀지면 겪게 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실제 이름 및 개인을 특정하여 밝히지 않았습니다.
#경기도청년 #청년문제 #경기도청년정책 #청년정책 #청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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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노동현장을 조명하기 위한 일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경기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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