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절대 부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건축가, 그 이유가

지속 가능한 건축을 추구하는 2021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안 라카통과 장필립 바살

등록 2021.05.14 09:07수정 2021.05.14 09:17
1
원고료로 응원

2021 프리츠커상 수상자 안 라카통(왼쪽)&장필립 바살 두 사람은 허물지 않는 건축으로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 하얏트재단

 
'절대 부수지 않는다(Never demolish)'는 신념으로 공간 리모델링 작업을 해 온 프랑스의 건축가 듀오가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16일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해 건축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안 라카통(Anne Lacaton, 65)과 장필립 바살(Jean-Philippe Vassal, 67)은 1970년대 후반 보르도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만나 30년 넘게 문화·학술기관, 공공장소, 사회주택, 도시개발 등 유럽과 서아프리카 일대에서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파리 외곽 몽트뢰유에서 활동하는 두 사람은 낡은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저렴한 비용을 들여 재건축과 리모델링으로 되살리는 지속 가능한 건축을 제시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건축
 
a

니제르의 초가집 ⓒ Lacaton & Vassal

 
이들이 지속 가능한 건축을 하는 이유는 바살의 유년 시절 경험과 1980년대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2년간 지냈던 경험 때문이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난 바살은 어릴 때부터 아프리카의 자연을 느끼며 살아왔다.

1980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보르도 국립건축학교(ENSAD Bordeaux)를 졸업한 후 두 사람은 1984년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로 넘어갔다. 서아프리카의 덥고 습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선 자연 재료로 집을 지어야 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혹독한 환경에서 초가집을 개·보수하며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건축 방식을 알게 되었다.

라카통과 바살은 사회적, 생태적,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고심한 끝에 1987년 보르도에서 설계 사무소를 개업했다. 사람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건축 방식을 나누고자 사회주택과 아파트, 공공기관 등으로 활동반경을 넓혔다.

라카통은 프리츠커상 수상 소감에서 "건축은 드러나도록 표현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친근하고,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며 그 안에서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조용히 도와야 한다"고 자신의 건축관을 밝혔다.


환경과 풍경까지 챙기는 생태 발코니

생태 발코니는 라카통과 바살 건축의 특징이다. 바닥을 넓혀 답답한 실내를 트고 넓은 창으로 채광까지 챙긴다. 동시에 온실 기술을 이용해 겨울에도 자연 채광으로 난방할 수 있다.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거주민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 의식을 함께 나눈다.

  

Latapie House(1993, 프랑스 보르도) 투명 폴라카보네이트 패널로 공간을 확장하고 온실 기능을 갖춘 생태 발코니를 만들었다 ⓒ 하얏트재단

 
1993년 지어진 라타피 하우스(Latapie House)는 생태 발코니가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적은 예산으로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접이식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거실, 주방 등 공용 생활 공간을 넓혔다.
  

부아르프레트르타워(La Tour Bois le Pretre, 프랑스 파리, 2011) 철거 대신 외벽 콘크리트 제거와 발코니 증축으로 공간을 확장시켰다 ⓒ 하얏트재단

 
라카통과 바살 두 사람이 주력한 아파트 리모델링에도 생태 발코니에서 출발한 공간 확장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이들은 부아르프레트르 타워(La Tour Bois le Prêtre, Paris)를 리모델링했다.

부아르프레트르 타워는 1960년대 초 지어진 17층 건물에 96가구의 도시 공동 주택이다. 파리시는 이 아파트를 철거하려고 했으나 두 사람이 아파트를 새로이 만들어냈다. 노후된 콘크리트 외벽을 없애고, 기존의 좁은 바닥을 확충해 각 가구에 발코니를 설치하고 방의 면적을 늘렸다. 거주민은 새로운 발코니로 공간을 넓게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넓은 창으로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G, H, I 빌딩(2017, 프랑스 보르도) 3개 빌딩, 530가구 규모의 사회 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거주민의 퇴거 없이 이뤄냈다 ⓒ 하얏트재단

 
이와 유사한 작업으로 G, H, I 빌딩(2017)이 있다. 보르도의 Grand Parc에 지어진 사회 주택 단지는 3개의 건물(G, H, I) 53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업은 엘리베이터, 배관을 새로 바꾸고 공간을 확장했으나 거주민의 이사 없이 진행했고 철거 비용의 3분의 1을 사용해 주목받았다.

미니멀, 재료 최소화

미스 반 데어 로에, 안도 다다오 등 구조와 소재를 단순화시키는 미니멀리즘 건축은 꾸준히 발전되어왔다. 그러나 라카통과 바살의 작업은 건물을 짓는 것마저 최소화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바살은프리츠커상 수상 소감에서 "우리의 작업은 제약과 문제를 해결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감정과 느낌을 생성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노력과 과정의 끝은 가볍고 단순해야 한다"며 건축 과정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팔레스 드 도쿄 지하 공간(2012, 프랑스 파리) 라카통과 바살은 2012년 현대미술관 팔레스 드 도쿄의 지하 리모델링을 담당했다 ⓒ 하얏트재단

 
2012년 파리 팔레스 드 도쿄(Palais de Tokyo, Paris) 지하 리모델링 작업에서도 건축관이 드러난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 일본관으로 사용된 이 건물은 2001년 복원해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다수의 현대미술 전시는 흰 큐브로 구성된 갤러리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두 건축가는 팔레스 드 도쿄의 지하를 2만㎡까지 늘리고 골조를 노출해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1층의 햇빛이 부분적으로만 들어와 지하를 밝힌다. 어두운 공간적 특성을 살려 비디오 작품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톰 프리츠커 하얏트재단 회장은 "라카통과 바살은 민간‧공영주택, 공공 공간, 문화‧교육기관 등의 설계를 통해 인간의 풍요를 우선시했다. 건축이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으로 개인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도시의 진화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수상 의의를 밝혔다.

이들은 공간 안에서 삶을 조용히 지탱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배달·택배가 폭증하면서 플라스틱 배출이 급격히 늘어났다. 디지털 환경과 유통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역시 급증해 기후 변화가 앞당겨졌다.

현재 가장 주요한 관심사는 재생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일상이다. 두 사람은 파괴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자연과 인간을 이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건축 #프리츠커상 #건축가 #지속가능성 #리모델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