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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삶을 선택한 그들은 실패자인가요?

[오늘날의 영화읽기] <노매드랜드>를 통해 모두의 삶을 생각하다

21.04.27 10:26최종업데이트21.04.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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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났고, 돈벌이를 위해 직장을 따라 사는 곳을 옮겼다. 그 사이 '보통의 사람들'처럼 결혼을 해서 가족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정착했다고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고향의 집을 떠난 열여섯의 그 날로 돌아가, '언젠가' 내가 떠나온 그 곳으로 돌아갈 것을 상상할 뿐이다.

말하자면, 나는 집을 떠난 그 후로 계속 유목민처럼 떠돌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정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노매드랜드>(2021)를 만났다. 

"나마저 그를 잊으면, 그가 이 세상에 왔던 시간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어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인 펀은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길 위의 삶을 택했다. 중년의 여성이 혼자서 길을 떠나는 상황은, 영화 시작부터 수많은 위험을 상상하게 했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거나 누군가로부터 해를 입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을까를 걱정하며 지켜본 그녀의 여정은, 길 위의 사람들을 만나며 점차 편안해졌다.

주변을 경계하며 자신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던 펀의 날선 모습은,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열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펀은 그녀의 삶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여유를 찾는다. 그녀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펀의 표정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었다. 

"엄마말로는 집이 없으시다(Homeless)던데 진짜예요?"
"집이 없는 것은 아니야. 거주할 곳(House)이 없는 곳과 집(Home)이 없는 것은 다르잖아?"


두려움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
 

< 노매드랜드 >의 주연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왼쪽), 감독 클로이 자오(오른쪽)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는 제시카 트루더의 동명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작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주택을 포기한 채 길 위에서의 삶을 택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길 위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눈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주연배우이자 제작자인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이 책을 발견하여 판권을 사들였고, 중국계 신예인 클로이 자오에게 감독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원작에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펀이라는 인물은 없었지만, 영화용으로 각색하면서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갈 화자로써 집어넣은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니, 영화적인 각색이 훌륭하게 이뤄진 것에 놀라웠고 이 작품을 발견하고 영화로 만들어준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이도, 그녀가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해주는 삶 자체가 지니는 긴장감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도시의 삶은 휘몰아치는 시간의 폭풍을 버티는 느낌이다. 첫 번째 직장을 다니는 동안 서울에서 몇 년을 살았다. 새벽 4시면 잠에서 깨서, 한 시간쯤 운전을 하면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해서는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했고, 습관처럼 야근을 하고 나서 지옥 같은 퇴근길을 버티고 나면,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시간을 초 단위로 나누면서 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주변으로 밀려날 듯한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런 삶을 버텨내지 못했고,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오며 꽤나 오랫동안 내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다. 여전히 현실은 나를 힘겹게 몰아세우지만, 그때만큼 아프지는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로 숨쉴 틈이 없는 도시를 벗어나면서, 조금은 자연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니까.

자연의 시간은 인간이 정해놓은 시계를 따르지 않는다. 수천 년의 시간은 자연의 거대한 규칙 안에서 성장해왔고, 존재 안에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인간의 기록으로도, 초 단위로 나눠지는 시간의 눈금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증거이다. 영화에서 펀을 치유한 것도,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정한 동지들이었고, 결국은 자연의 영원성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서 망치려고 해도, 결국은 살아나고야 마는 불멸의 생명은, 그녀를 치유했고 인간 세상의 갈등을 초월하도록 도왔다.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우리가 매달려 사는 것에서 벗어났더니, 삶의 고난과 상처도 저만치 멀어졌다. 게다가,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다수의 길 위의 사람들이, 원작에서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니, 영화를 통해 가상의 세계와 현재의 미국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위로를 받았다.

길 위의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  

< 노매드랜드 > 중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우리는 '안녕'이라고 하지 않아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죠."

길 위의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고 했다. 어디에도 얽히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 만으로도 이어져 있었고, 그들 앞에 놓인 길은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이 되어 언젠가 만나게 한다. 그들은 고독하지도 위험하지도, 안쓰럽거나 불행한 실패자로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길 위의 삶을 나서지 못하는, 내 삶의 부자유가 불행해 보였달까?

삶에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리의 삶을 선택한 그들을 통해, 영화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거기에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중이고, 조금씩은 타인의 삶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지옥을 살아내느라 힘겨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로하는 존재들은 분명히 있다. 

펀에게 린다 메이와 스웽키, 광활한 자연을 통해 얻은 위로가 있었듯,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노매드랜드>를 통해, 각자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진실한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괜찮으니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속에 등장했던,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의 일부를 옮긴다. 우리도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길!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속에서 시들고/우연히 혹은 자연의 변화로 빛을 잃지만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으리/그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리
죽음도 그대가 제 그늘속을 헤멘다고 자랑 못하리라/그댄 영원한 운율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사람이 숨을 쉬고 눈이 보이는 한/이 시는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오늘날의 영화읽기 노매드랜드 프랜시스 맥도먼드 삶의 정답 길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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