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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배구 광탈' KB손해보험을 위한 변명

[프로배구] 감독사퇴-코로나19확진-세터 부상 등 악재 겹쳤던 KB손해보험

21.04.06 06:15최종업데이트21.04.06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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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2011 시즌 KB손해보험 스타즈의 전신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는 정규리그 4위를 차지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올랐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서 '괴물' 가빈 슈미트가 이끄는 삼성화재 블루팡스를 만나 1승 2패로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당시엔 준플레이오프가 3전 2선승제였다). LIG손해보험을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삼성화재는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 7연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010-2011 시즌 이후 팀 명이 바뀌고 연고지가 바뀌는 9시즌 동안 한 번도 봄 배구를 경험하지 못했던 KB손해보험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10시즌 만에 봄 배구 티켓을 따냈다.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학폭사태'로 토종 에이스 송명근이 빠진 OK금융그룹 읏맨. 하지만 KB손해보험은 안방에서 단판승부로 열린 준플레이오프에서 OK금융그룹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하며 '광탈(광속 탈락)'하고 말았다.

KB손해보험은 10년 만에 힘들게 올라간 봄 배구에서 토종 에이스가 빠진 4위 팀을 상대로 허무한 패배를 당하며 단 한 경기 만에 봄 배구 일정을 마쳤다. 하지만 '봄 배구 광탈'을 이유로 KB손해보험의 이번 시즌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이번 시즌 KB손해보험은 너무나 많은 악재들을 겪으면서 힘들게 봄 배구 무대를 밟은 팀이기 때문이다.

부임 첫 해 폭력 사태로 팀을 떠난 감독

KB손해보험은 이번 시즌 개막 후 첫 18경기에서 12승6패를 기록하며 선두권을 질주했다. 시즌 초반의 KB손해보험은 봄 배구 티켓은 물론이고 프로 출범 후 첫 정규리그 우승을 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KB손해보험 상승세의 비결에는 남자부에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말리 폭격기' 노우모리 케이타의 활약이 절대적이었지만 팀의 레전드 출신 이상렬 감독의 신선한 지도력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상렬 감독은 개막 후 5연승을 이끌며 패배가 익숙했던 KB손해보험의 팀 색깔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작년 12월 대한항공 점보스에게 1위 자리를 내줬을 때는 홀로 강원도 산골에서 얼음물에 입수하며 선수들의 정신무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여자배구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배구계가 시끄러워지자 "가해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면서 과거 자신이 저지른 폭력사건에 스스로 불을 지피고 말았다.

당시 폭력사건의 피해자였던 박철우(한국전력 빅스톰)의 폭로 인터뷰로 폭행사건이 재조명되자 이상렬 감독은 잔여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셀프징계'를 선언했다. 하지만 추가폭로가 나오는 등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상렬 감독은 지난 3월 12일 스스로 팀을 떠났다. KB손해보험은 이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지만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로 인한 혼란이 쉽게 진화될 리 없었다.

KB손해보험은 이경수 감독대행 부임 이후 봄 배구 진출이 일찌감치 좌절된 하위권 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를 상대로 승점 5점을 챙기면서 정규리그 3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은 OK금융그룹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무려 35개의 범실을 저지르며 자멸했다. 아무리 케이타가 37득점을 퍼붓는다 해도 상대에게 공짜로 35점이나 내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최초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 선수
 

V리그 남자부는 박진우의 코로나19 확진으로 2주 간 리그가 전면 중단됐다. ⓒ 한국배구연맹

 
작년 2월 코로나19가 국내에 처음 퍼지기 시작했을 때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정규리그 종료를 앞두고 시즌을 중단했다. 그리고 역대 최초로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고 시즌을 중단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경험이나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의 방역이라 여겼기 때문이다(물론 방역에 대한 대전제는 코로나19가 퍼진 지 1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의 대유행을 겪으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이 생겼고 한국 스포츠는 작년 KBO리그와 K리그, 그리고 여자프로농구를 단 한 번의 시즌 중단 없이 무사히 마무리했다. 따라서 V리그 역시 방역수칙만 잘 지키면 큰 문제 없이 시즌을 완주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새해 첫 날 중계 방송 관계자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이틀 간 경기가 미뤄졌던 것을 제외하면 우려했던 리그 장기 중단 사태는 없었다. 

그러던 지난 2월 22일 KB손해보험의 주전센터 박진우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V리그 선수의 첫 확진 사례였다. 전날 KB손해보험과 풀세트 경기를 치른 OK금융그룹 선수들을 비롯해 최소 4팀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접촉 위험이 있었다. 한국배구연맹은 2주 간 남자부 리그 중단을 결정했다. 선수의 확진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된 것은 4대 프로 스포츠(야구, 축구, 배구, 농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추가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중단됐던 리그는 3월 11일 재개됐으며 박진우도 3월 13일 음성판정을 받고 다시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남자부는 여자부에 비해 일정이 상당히 밀리고 말았다. 결국 여자부의 챔피언 결정전 일정이 모두 끝난 3월 30일, 남자부는 여전히 정규리그 일정을 치르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부상으로 봄 배구에 함께 하지 못한 주전세터
 

경험이 적은 최익제 세터가 감당하기에 준플레이오프는 너무 큰 무대였다. ⓒ 한국배구연맹

 
매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신장이 크고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가 상위지명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인기만화 <슬램덩크>의 대사처럼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도 선수의 신장을 크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남자부 역대 최초로 세터 포지션의 선수가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성균관대 2학년을 마치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KB손해보험의 황택의가 그 주인공이다.

KB손해보험은 대학시절부터 한선수(대한항공)의 뒤를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 세터로 주목 받았던 황택의가 팀의 오랜 암흑기를 씻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황택의는 데뷔 첫 시즌 신인왕에 이어 2년 차 시즌 대표팀에 선발되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 무려 7억3000만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하며 프로배구 최초로 '연봉 7억 원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황택의는 이번 시즌 괴물 외국인 선수 케이타와 좋은 호흡을 선보이면서 KB손해보험의 돌풍을 일으켰다. 이대로 시즌을 잘 치르면 KB손해보험을 10년 만에 봄 배구로 이끌면서 FA를 앞두고 자신의 가치도 한껏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황택의는 지난 3월 18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공을 쫓다가 코트에 넘어져 발목을 다쳤고 정규리그가 끝날 때까지 코트에 돌아오지 못했다.

KB손해보험은 황택의의 회복을 기다렸지만 끝내 그는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정규리그 17경기 출전에 그쳤던 백업세터 최익제를 봄 배구에서 주전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즌 대부분을 황택의 세터와 호흡을 맞췄던 KB손해보험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최익제와의 호흡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범실을 남발한 끝에 허탈하게 봄 배구 일정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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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KB손해보험 스타즈 이상렬 감독 황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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