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지른 범죄, 플라스틱 폐기를 고백합니다

바다의 어류 무게보다 플라스틱 무게가 많아질 세상, 나도 공범

등록 2021.03.22 08:06수정 2021.03.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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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까지' 무식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설마 생태계와 제3세계 사람들과 미래세대에게 '그렇게까지' 몹쓸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어왔다. 왜냐하면 최소한 주변 사람들보다 소비도 덜 하고 쓰레기도 덜 버리고 에너지도 덜 쓴다고 믿었으니까. 내 주변 사람들도 교양과 상식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들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믿음이 틀렸다. 받아들이기 고통스럽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해왔던 게 맞았다.

한의원 운영할 때 내가 처방한 한약을 사람들이 복용하면 행복했다. 개원 전 한약 파우치의 성분도 확인했고 재활용 표시도 확인했고 인체에 무해한 재질인 것도 확인했다. 한약 복약 설명서에는 '재활용 가능한 파우치이니 물에 한 번 헹궈서 분리수거해주세요'라고 썼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인체에 무해한 것도 맞고 재활용되는 것도 맞았지만 그 재활용이 내가 생각하던 재활용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재활용은 이 플라스틱이 다시 압축되고 가공되어 새로운 물건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었는데, 실제 재활용은 태워서 겨우 에너지를 회수하는 것에 그쳤다. 재활용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내가 상상하던 재활용이 전혀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처방했던 한약의 파우치들만 해도 어마어마한 업보로 느껴진다.

한의원의 환자들에게 폼롤러로 근육마사지하라고 많이 권했다. 내 추천을 받아 폼롤러를 산 환자들도 꽤 된다. 그런데 문득 저 폼롤러가 내가 죽은 뒤, 내 아이가 죽은 뒤에도 저 모습으로 낡았으되 썩지 않고 이 지구상에 500년 이상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짧은 생각으로 폼롤러를 추천했구나.

캡슐커피의 개발자가 캡슐쓰레기의 양에 충격을 받고 자신이 세상에 없어야 하는 물건을 만들어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나도 그 캡슐커피 개발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나 유해한 물건이 왜 이렇게 싸게 양산되는 것인가.
      
미세플라스틱은 세탁 과정에서 다량 배출된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치약이나 바디클리너에 들어있는 스크럽만 생각하고, 나는 그런 걸 안 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휴. 스크럽 쓰는 사람들은 바보 같은 뭐야? 너무 이기적이잖아? 그러면서 합성섬유로 된 보들보들한 극세사 잠옷은 잘 사들였다. 얼마 전에야 알았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대부분의 미세플라스틱은 세탁 과정에서 나온다.

우리가 옷을 빨거나 건조시킬 때마다 아주 조금씩 옷이 얇아지고 작아진다. 그 과정에서 미세하게 갈려나가는 섬유조각이 다름 아닌 미세플라스틱이었다. 그 옷먼지를 우리도 들이마신다. 미세플라스틱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다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흡입하며 산다.

성인은 1주일 평균 신용카드 한 장 정도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고 한다. 따뜻해서 좋다고 샀던 극세사 잠옷과 이불은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을 왕창 바다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쩌지? 이 옷들을 버리고 다 면으로 된 옷을 새로 사야 하나? 그러면 이 합성섬유 옷들은 또 쓰레기로 버려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일단은 세탁 횟수를 최대한 줄이고, 있는 옷들은 입을 수 있는 한 입기로 결정했다. 이제 속옷과 양말을 제외한 더 이상 어떤 종류의 새 옷도 사지 않으려 한다. 합성섬유 옷들은 세탁 회수를 최소화하고, 자주 빨아야 하는 종류의 속옷, 수건 등은 모두 면 제품을 쓰기로 했다.

세탁기에서 흘러나가는 미세플라스틱을 걸러주는 필터도 개발되었다. 프랑스에서는 2025년부터 모든 세탁기에 이 필터 사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단은 이 필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아이쿱생협에서 미세플라스틱 필터를, 알맹상점에서 세탁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자료를 읽으면서 새삼 암울해졌다. 독일에서 (다른 플라스틱은 다 빼고) 일회용 음료 용기만 따졌을 때, 한 재활용회사에서 수거하는 양이 1년에 200억 개였다. 독일이란 한 나라에서, 음료 용기의 양만 쳐도 그렇다.

2050년에는 어류 무게보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무게가 더 나가게 된다. 1분당 쓰레기트럭 한 대 분량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고, 2050년에는 바다에 있는 물살이(어류)의 무게보다 플라스틱의 무게가 더 많을 것이라 한다. 막연히 재활용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겨우 플라스틱의 9%만 재활용된다.

혼합, 재활용불가능, 오염 플라스틱 폐기물은 중국, 인도, 필리핀 등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로 팔려가서 그 나라의 삶터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내가 버린 쓰레기로 저개발국가에 쓰레기 산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료를 사먹는 사람,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사람, 냉동 택배를 주문하는 사람... 내 주변에 너무나 많은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모두 지독하게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중이라는 걸 믿기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회용 용기를 반환할 때마다 용기 보증금을 돌려줘서 재활용을 장려하는 시스템에 대한 자료를 읽게 되었다. 언뜻 이상적으로 보였다. 90% 이상 수거하여 재활용한다니! 하지만 행간에서 문제점이 보였다. 사람들이 사먹는 일회용 용기 음료의 절대량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용기를 반환하고 보증금을 받으러 가게에 오면 꽁돈 생긴 기분이 들어 소비를 더 하게 된다(더 많은 소비 = 더 많은 쓰레기). 반환에 참여하는 가게에서 소비하는 돈이 50% 정도 더 많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비가 친환경적이라는 착각 때문에 더 많은 소비를 편하게 하게 될 수 있다.

재활용도 무한정 할 수는 없고, 재활용할 때에도 역시 에너지가 들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재활용할 때마다 재질의 품질이 떨어지므로 더 낮은 질(단계)의 물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다운사이클링도 문제였다. 맘 놓고 마음껏 쓸 수 있는 친환경 재질은 없었다. 모든 것을 아껴 쓰고 재사용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결국 멀티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겠다. 지금까지의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일단 안 산다. 되도록 덜 쓴다. 뭐든지 사기 전에 두 번 세 번 열 번 고민한다. 텀블러, 개인 그릇 가지고 다니면서 음식은 그 안에 담아달라고 한다. 남들에게도 쓰지 말자고 말하자.

2. 제품 생산부터 수거, 폐기, 재활용의 전체 과정을 포괄하는 프레임을 정부에서 짜고 대대적으로 국민들과 소통 및 교육해야 한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분리수거하는 폐기물이 결국 어디로 가는지 알 권리와 의무가 있다. 중앙화된 관리가 없으면 결국 흐지부지된다.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우라고, 포장재의 가격을 올리라고, 배달에 다회용기 쓰는 음식점은 혜택을 주라고 청원하고 시위하자.

3. 음수대를 곳곳에 설치하고 깨끗하게 유지한다. 무료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모든 시민에게! '물 공짜로 제공' 네트워크를 만들자. 텀블러 들고 오며 물을 담아주겠다고 약속한 가게들과 음수대 위치 정보를 등록하고, 그 앱을 깔아놓으면 주변에 물 공짜로 뜰 데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4. 일회용 용기의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촉진한다. 보증금제도도 도입한다.

5. 옥수수 전분이나 대마초 등 플라스틱 대안의 생분해성 재질을 개발하고 플라스틱 대신 쓴다.

6. 정부와 지자체는 수거, 재활용 시스템도 신종전염병으로 인한 락다운 가능성에 대비해 플랜B를 늘 짜둔다.

일회용 용기의 생수 상당수는 그냥 수돗물이라고 한다. 사실 한국 수돗물은 음용수 기준을 만족시키니까 그냥 마셔도 된다(스위스 수돗물도 괜찮다고 해서 얼마 전부터 그냥 마시고 있는데 물맛 괜찮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시도해볼 예정이다). 일회용 용기의 물을 사서 마시면 녹아 나오는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만 추가로 마시게 될 뿐이다.

깨끗한 물을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것이야말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 아닐까. 그 물을 마시기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병을 사야 하는 사회는 참으로 끔찍하다.

파리 출신의 친구가 자기 어렸을 때는 파리 어디에나 음수대가 많았는데 요새는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왜 그런 퇴행이 일어났냐고 묻자, 노숙인들이 음수대를 생활공간으로 쓰니까 자꾸 없앴던 것 같다고 한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는 모두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미세플라스틱 #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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