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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적자생존이 아닌 구원의 오디션

[주장] 무명가수 발굴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다

21.02.10 10:20최종업데이트21.02.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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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논리)', '에토스(화자의 성품)', '파토스(감정)'를 제시했다. 설득의 성패는 논리가 결정적일 것 같지만, 의외로 누가 말하는지와 감정적인 호소도 크게 작용한다. 이는 사람을 평가할 때도 예외가 아니며, 고난 끝에 황제에 오른 유비처럼 굴곡진 사연은 우리에게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풍기를 수리하며 힘들게 살았던 허각이 '슈퍼스타K'에서 써 내려간 드라마와 그의 무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언어를 막론하고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은 가수의 사연이 얹어질 때 더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며, 때론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진부한 오디션과 트로트 방송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지난 8일 파이널 라운드를 치르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0년대 오디션 열풍을 낳은 '슈퍼스타K'를 기점으로 '쇼미더머니', 'K팝스타', '프로듀스 시리즈' 등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현재에는 트로트 오디션이 대세다. 
 
그러나 비슷한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양산되면서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해왔다. 현재는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다시 시청자들의 염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싱어게인'도 방송 초기, 그러한 분위기에서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데 10일 기준 유튜브 1800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55호 하진의 'We all lie', 1600만을 기록한 63호 이무진의 '누구 없소'는 방영 직후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외에도 30호 이승윤의 'Honey', 29호 정홍일의 '그대는 어디에' 등 뛰어난 무대 덕분에, '싱어게인'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싱어게인'은 시청자들의 다양한 관심을 충족해줬다. 먼저 트로트 등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포크, 록, 아이돌, 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만날 수 있었다. 또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잊힌 가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일반인과 연습생이 아니라 실력이 보장되는 무명가수 발굴을 취지로 하기에 무대 퀄리티 또한 좋았다. 더불어 경쟁보다 발굴에 가까운 포맷은 기존 오디션과 대비되는 지점이었다. 
 
이로 인해 '싱어게인'은 범람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TV 자체를 외면하던 시청자들을 불러세우기에 충분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착한 연출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팀 대항전에서 승리했지만, 정이 든 형들이 탈락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 30호 가수가 기억에 남는다. 대다수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잔혹한 서바이벌의 성향이 강하고, 악마의 편집, 악의적인 연출을 통해 희화화된 참가자들은 프로그램 흥행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심지어 제작진이 순위를 조작(프듀101)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싱어게인'은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려 했다. 무명가수 발굴의 취지에 맞게, 이름은 물론 참가자의 사연이나 배경에 치중하는 편집을 자제했고, 참가자들을 우습게 만들지도 않았다. 이외에도 파이널 라운드를 제외하고는 라운드 결과를 오로지 심사위원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편집이 가미된 방영본과 그에 따른 공개 투표 방식과 달리 편향적인 등락을 유도하기 어려웠으며, 팬덤과 달리 전적으로 무대만 평가하는 데에 유리했다.
 
물론, 경연 방식은 제작진이 결정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아쉬움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이 흥행해야 우승자를 비롯한 참가자들도 빛을 볼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매 라운드 탈락자를 구제하는 제도가 마련됐고, 결정적인 순간 발휘되는 '슈퍼 어게인' 때문에 참가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배려도 돋보였다. 파이널 라운드의 공개 투표 역시 다수 투표를 허용하면서, 특정 팬덤이 순수한 무대 평가가 아닌 맹목적인 인기투표로 변질되는 것도 억제하고자 했다.
 
공정성을 추구한 심사위원 구성
 

8일 방송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기본적으로 토너먼트 방식은 효율적으로 1등을 가리는 것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대진운, 컨디션 같이 우연이 적지 않게 작용하는 토너먼트에서의 순위란 모두에게 공평하기 어렵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닌데, 특히 음악이라는 것은 박자나 음정, 가사를 틀리는 실수 등이 아닌 이상 주관이 작용하는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심사와 결과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싱어게인'은 보통 서너 명에 그치는 심사위원을 8명이나 섭외했으며, 세대별 그리고 분야·장르별로 다양한 인편을 구성함에 따라, 음악 시장에서의 다양한 수요가 현실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다양한 취향의 청중을 대표하는 8명의 심사위원은 각기 다른 확고한 취향이 있고 비록 그것이 반발을 초래할 수 있겠지만, 각자 1표씩 총 8표를 종합하여 판정하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본인의 주관에 충실하기만 해도 그들이 대표하는 소비자들에 근접하게 반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MC를 맡은 이승기도 예능을 위한 완급 조절을 잘해주었고,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직접 만든 플래카드로 응원하는 등 MC가 아닌 동료로서의 모습이 프로그램의 훈훈함을 배가시켰다. 특히 최종 우승 발표에 앞서 광고로 넘어가기 전에 무릎 꿇은 모습은 짜증 날 수 있었던 상황을 익살스럽게 넘겨 감탄이 나왔다.
 
선순환을 낳는 오디션이 되길
 
이처럼 선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인 '싱어게인'은 다행히 폭발적인 유튜브 조회수 외에 1회 3%대에서 시작한 시청률이 10%대까지 상승세를 이어나갔고, 비드라마 TV 화제성・검색반응에서도 최고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 부분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면서 착한 오디션의 모범적인 선례를 남겼다. 물론 지나치게 번호로만 호명하다 막상 탈락 후 정체를 공개하는 분량이 짧아, 온라인으로라도 무대 영상을 남겨줬으면 싶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지만 흥행은 실패한 MBN <미쓰백> 출연자 나다의 "금방 잊힐 마음이라도 꼭꼭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울음 섞인 간청이, 그리고 SBS <더 팬>에 출연한 카더가든을 보고 유희열이 "많은 기회를 줬는데도 잘 되지 못하고 다시 오디션에 나와 속상하다"는 아쉬움 섞인 탄식이 아련하게 맴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에 그들의 음악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듯 그들에게도 행복을 주기를 바란다. 나아가 스타가 된 '싱어게인'의 참가자들이 또다시 무대를 잃고 '한 번 더 기회'를 갈망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매력적인 무대는 물론 재치있는 말솜씨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뮤지션 이승윤이 "무대 밖의 수많은 72호 가수들을 위한 주단을 깔아놓고 기다리겠다"고 밝힌 것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더 이상 흥행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말 사랑이 고픈 가수들에게 무대를 내어주고, 더불어 주니어 심사위원이나 다른 장르를 '막 귀'라 멸시하던 몰지각한 청중들도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준다면 우리 사회의 음악과 기쁨도 좀 더 풍요로워지리라.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등
싱어게인 음악 오디션 경연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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