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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듀스 떠오르게 한 힙합듀오

[응답하라 1990년대] 오늘의 YG를 있게 한 '개국공신' 지누션

21.02.05 16:15최종업데이트21.02.0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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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엔터테인먼트는 2018년 버닝썬 사태로 인한 빅뱅 막내 승리의 탈퇴와 이로 인한 빅뱅의 긴 활동중단을 비롯해 양현석 대표의 원정도박 및 퇴사, BTS를 앞세운 빅히트라는 공룡의 등장 등으로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잇따른 악재에도 불구하고 YG엔터테인먼트는 4일 현재 시가총액 9105억원으로 빅히트(8조 4606억), JYP(1조 1856억)에 이어 엔터테인먼트 업계 3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처럼 크고 작은 악재가 겹쳤던 YG가 흔들림 없이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 2016년에 데뷔한 6년 차 걸그룹 블랙핑크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무려 5600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블랙핑크는 조회수 10억 뷰를 돌파한 뮤직비디오가 3곡이나 되고 빌보드 Hot100차트에도 무려 7곡이나 차트인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신곡만 나오면 각 음악프로그램에 1위 트로피를 수집하러 다니는 수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블랙핑크 역시 YG의 준비된 시스템과 노하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세계적인 걸그룹으로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996년 현기획으로 시작해 MF기획, 양군기획을 거쳐 1999년 지금의 이름이 된 YG엔터테인먼트는 초창기 이 그룹의 성공을 발판 삼아 차근차근 지금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노하우를 구축했다. 오늘의 YG엔터테인먼트를 있게 한 '개국공신' 힙합듀오 지누션이 그 주인공이다. 

양현석을 좌절시켰던 킵식스의 실패
 

양현석은 지누션의 성공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초석을 세울 수 있었다. ⓒ YG엔터테인먼트

 
1996년 1월 31일.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던 3명의 젊은이들이 대중들 앞에서 굵은 눈물을 쏟으며 해체를 선언했다. 건국 이래 가장 파격적이고 폭발적이었던 댄스그룹이자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는 사실 4집 앨범 발매 전부터 이미 계획된 일이었지만 당시 대중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팀의 막내는 미국으로 떠났고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은 후배 양성에 집중했다. 그렇게 제작자로 변신한 '아이들'은 1996년 여름 각각 직접 제작한 첫 번째 신인 댄스그룹을 세상에 내놓았다. 맏형 이주노가 선보인 팀은 남자 둘(최승민, 지준구), 여성 보컬 셋(임성은, 송진아, 한현남)이라는 획기적인 멤버 구성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5인조 혼성그룹 영턱스클럽이었다.

이주노가 제작하고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영턱스클럽은 '히트메이커' 이승호-윤일상 콤비가 만든 트로트 리듬이 가미된 데뷔곡 <정>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하며 순식간에 정상에 등극했다. 특히 영턱스클럽이 <정> 간주에 선보였던 고난이도의 브레이크댄스는 여성이 소화하기엔 대단히 파격적인 안무였다. 영턱스클럽은 연말 후속곡 <못난이 컴플렉스>까지 히트시키며 1996년 최고의 신인그룹으로 떠올랐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앨범 타이틀곡 <컴백홈>의 안무를 담당했던 양현석 역시 이주노와 비슷한 시기에 3인조 남성 댄스그룹 킵식스를 데뷔시켰다. 타이틀곡은 양현석이 직접 작곡과 편곡에 참여한 <나를 용서해>.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연상의 여자를 사귀던 남자가 여자에게 진짜 나이를 고백하는 내용의 밝고 경쾌한 댄스곡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사실 킵식스의 실패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킵식스가 데뷔한 1996년은 이주노의 영턱스클럽 외에도 언타이틀, H.O.T. 등 개성 있는 대형 신인그룹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당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의 음악게시판에는 제작자로서 이주노와 양현석의 역량을 비교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당연히 제작자 이주노의 역량과 안목을 높게 평가하면서 양현석은 댄서였을 때 빛났을 뿐 제작자로서의 역량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양현석을 향한 일종의 '악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양현석은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다음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양현석은 킵식스의 실패를 거울삼아 재미교포 출신의 두 신인을 발굴해 '양현석 제작'의 두 번째 팀을 세상에 공개했다. 이번엔 어설픈 댄스곡 대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장르인 힙합을 전면에 내세웠다. 오늘날 거대 기획사 YG의 '개국공신'이 된 지누션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DEUX, 지누션의 이름으로 부활하다
 

<말해줘> 활동을 함께 했던 엄정화는 <무한도전 - 토토가>에서도 지누션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 MBC 화면 캡처

 
지누션은 재미교포 김진우와 노승환으로 구성된 힙합듀오다. 김진우는 1994년 <나는 캡이었어>라는 노래로 이미 솔로데뷔를 했던 중고신인이다. 만약 그 시절 <나는 캡이었어>가 크게 히트해 김진우가 인기가수가 됐다면 양현석은 '지누' 역할을 대신할 다른 멤버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션은 지누션으로 데뷔하기 전 현진영,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양현석은 킵식스가 데뷔할 당시 자신의 존재를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후배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반면에 지누션이 데뷔했을 때는 자신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내며 지누션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양현석은 지누션의 데뷔곡 <가솔린>을 직접 작사, 작곡했고 랩 피처링을 맡았으며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심지어 앨범 속지에도 양현석의 사진이 들어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양현석의 후광을 입은 지누션의 데뷔곡 <가솔린>은 순위프로그램 상위권에 오르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지누는 솔로가수 경험자답게 <가솔린>에서 노래와 랩을 넘나들며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하지만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누션 1집을 넘어 지누션 커리어 최고의 히트곡으로 꼽히는 노래는 따로 있다. 바로 양현석과 함께 지누션 1집을 공동 프로듀스했던 듀스의 이현도가 만든 <말해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제작하고 듀스의 이현도가 만든 <말해줘>를 부르는 지누션은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가 지누션을 통해 부활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말해줘>는 당시 최고의 여성가수로 명성을 떨치던 엄정화가 피처링에 참여하고 직접 활동도 함께 하면서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인기가수의 노래에 신인가수가 함께 활동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신인가수의 활동에 인기가수가 함께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다). <말해줘>는 지상파 3사의 순위프로그램에서 모두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지누션을 전국구 가수로 만들었다.

여담으로 당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남학생들은 <말해줘>의 랩을 거의 의무적으로 외우고 있었다. 랩에는 가창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 노래를 잘 못 부르는 학생들도 <말해줘>의 랩을 외웠다가 노래방에서 가사를 보지 않고 랩을 소화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하지만 곧 '엄정화 파트'도 남자가 불러야 한다는 슬픈 현실에 봉착했다). 아마 지금도 30~40대 남자 중에는 <말해줘>의 랩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누션은 1집에서 <가솔린>과 <말해줘> 외에도 듀스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현도 작사, 작곡의 댄스곡 <내가>까지 히트시키며 90년대 후반 최고의 힙합듀오로 떠올랐다. 이 밖에도 지누션 1집의 공동 프로듀서 이현도와 양현석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 Young Nation >과 지누의 감성적인 보컬을 들을 수 있는 이 앨범의 유일한 발라드 넘버 < Celebrate >도 지누션 1집의 숨겨진 명곡으로 꼽힌다.

오늘의 YG엔터테인먼트를 있게 한 개국공신
 

지누션은 2015년<전화번호> 이후 11년 만에 싱글앨범 <한 번 더 말해줘>를 발표했다. ⓒ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은 지누션의 성공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1998년 원타임 1집과 자신의 솔로 앨범 <악마의 연기>를 제작할 추진력을 얻었다. 2000년대에는 세븐, 렉시 같은 독특한 느낌의 신인 가수들을 데뷔시키며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고 M-Boat와의 제휴를 통해 선보인 휘성, 거미, 빅마마도 나오는 족족 성공을 했다. 그리고 2006년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빅뱅을 선보이며 최고의 엔터 회사로 떠올랐다.

다소 심한 비약일지 모르지만 만약 양현석이 킵식스에 이어 지누션까지 실패를 맛보면서 후배가수 양성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YG엔터테인먼트를 업계의 거물로 만든 빅뱅이나 2NE1은 물론이고 오늘날 K-POP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블랙핑크 역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지누션이 초창기 YG엔터테인먼트가 자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지누션은 1999년 <태권브이>를 타이틀로 한 2집 앨범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누션은 2001년 3집 < A-Yo >를 크게 히트시키면서 최고 힙합듀오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지누션은 2004년 4집 <전화번호>를 마지막으로 10년이 넘도록 활동이 뜸하다.

지누션은 2014년 <무한도전-토토가>에 출연해 <전화번호>와 < A-YO >, <말해줘> 등 히트곡을 불러 큰 호응을 얻은 후 2015년 에픽하이 타블로가 참여한 신곡 <한 번 더 말해줘>를 발표했다. 물론 이제는 현역가수보다는 YG엔터테인먼트의 이사라는 직함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옛날가수가 됐지만 지누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업계 굴지의 엔터테인먼트회사 YG의 '개국공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응답하라 1990년대 지누션 김진우 노승환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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