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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후회한다'는 셀프인테리어,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세입자 15년 경력의 이사 스토리 2] 집 관리,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등록 2021.02.05 08:22수정 2021.02.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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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썼던 내 집 마련 스토리에 이어 이번에는 집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사실 내가 내 집에 애정을 갖고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이 곳으로 이사오기 직전의 전셋집부터였다.


서울 살이 거의 10년 만에 방 두 개에 드레스룸까지 있는 집다운 집을 얻었고, 정말 행운이게도 너무 좋은 집주인 분을 만났기에 계약을 두 번이나 연장하면서 6년간 이 곳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이 살다, 아버지가 퇴직하고 고향에 가신 이후에는 친구와 함께 살기도 하고, 가장 마지막엔 남편과 신혼집을 새로 구하는 대신 이 곳에서 계속 살았기에 추억이 많이 쌓였다. 1층이라 화장실 하수구에서 이물질이 정기적으로 역류한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다른 부분은 가격 대비 정말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새로 구한다 해도 이 곳만한 집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는, 집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작은 곳에만 살다보니 서울 집에서는 침대도, 식탁도, 진공청소기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맘에 드는 테이블과 행어, 침대, 빈백 등을 샀고 엄마한테 요리에 필요한 냄비와 쟁반 세트도 선물로 받았다.

아빠는 세탁기를, 언니와 형부가 청소기를 선물로 사줬다. 하지만 전셋집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일. 아쉬운 대로 좋아하는 사진이나 그림은 벽지에 구멍을 뚫어 붙이는 꼭꼬핀을 사용해 걸고, 처음 생긴 자그마한 거실에는 욕실 발판과 세트를 이루는 가벼운 핑크색 러그를 깔았다. 집의 분위기가 한층 되살아났다.

하지만 18평, 나름 큰 곳에 살면서 늘어나는 관리의 부담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청소를 게을리해도 집안 곳곳에서 먼지가 발견되고, 1층이다보니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창문틀에는 시꺼먼 먼지가 지속적으로 쌓였다. 그나마 1층이라 바깥에서도 창문틀을 닦기 쉽다는 건 다행이었다.


비교적 널찍한 싱크대가 생겨 요리를 했더니 가스레인지 위의 환풍기에 기름때가 끼고, 청소를 위해 구입했던 온갖 청소도구 또한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청소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하다가는 하루 종일 닦아도 끝날 수 없는 게 청소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청소에 매몰되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나만의 청소 스케줄을 만들었다. 
 

나만의 청소스케줄 평소에 바닥과 먼지 제거 위주로 청소하면서 놓치기 쉬운 구석구석을 관리하기 위해, 그리고 하루종일 청소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일 30분 정도, 주말엔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집을 돌보는 계획을 수립했다. ⓒ 김혜민

 
이 스케줄을 봤던 당시의 남자친구(현 남편)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을 모조리 계획으로 만드냐"며 "기본적으로 청소하면서 챙기는 수준의 일들"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와 나는 조금 달랐다. 청소가 체화되지 않는 내게는 이런 계획이 꼭 필요했고, - 한 달 정도 지키고는 흐지부지 된 것은 사실이나 - 내가 기본적으로 집의 구석구석을 항상 신경쓰고 관리하는 태도를 갖는 데 도움을 준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지금의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집주인이 되었으니 이제 마음대로 벽에 못도 박고, 이전 집주인이 그대로 두고 간 선반 등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다 떼버리고, 살짝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배도 직접 했다. 베란다 근처에는 작은 조명도 달고, 쏟아지는 햇빛을 은은하게 담아줄 얇은 소재의 하얀 커튼도 장착했다.

[관련 기사 : 모두가 구입 말린 서울 아파트, 제 선택이 옳았습니다]

화장실 타일의 줄눈 시공은 남편이 손쉽게 했으나 벽의 타일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기에, 타일을 고르고 주문하는 데까지는 우리가 하고(이 또한 발품을 팔아야 훨씬 저렴하다!) 시공은 설비 및 타일 분야에 근 20년 정도는 종사해오신 바 있는 아버지가 모든 연장을 챙겨와서 손수 정말 예쁘게 발라주셨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전, 물론 깨끗한 청소가 선행되었다. 작은 부분부터 자랑하고자 한다. 우선 집의 모든 손잡이를 바꿨다. 나는 아주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남편은 너무나도 바꾸고 싶어했던 부분이다. 결과는? 과연 손잡이만 싹 바꿨을 뿐임에도 새로운 문짝을 얻은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았다.  
   

새롭게 장착한 문 손잡이 ⓒ 김혜민

   
거실 도배 전에 작은 방의 도배를 또 먼저 해보았다. 둘 다 완전히 처음 해보는 도배, 거실보다도 더 흠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다행히도 책상이 가려주는 부분이 많아서 실수가 거실 벽면보다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듯해 이 정도면 만족한다. 아래는 도배 비포 앤 애프터 사진.
 

도배 전 벽지를 뜯어낸 방 상태 ⓒ 김혜민

 
 

책상이 붙어있는 쪽 벽면이 새롭게 도배한 부분이다. 아마추어 수준이었으나 벽의 많은 부분이 책상으로 가려진 덕분에 어설픈 도배 실력이 크게 티나지 않고 있다. ⓒ 김혜민

 
현관 들어오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거실인데, 전체적인 색감이 살짝 밋밋하단 생각이 들어 타일을 붙이기로 했다. 이 아이디어는 타일 붙이는 기술의 보유자이신 아빠가 내주셨으며, '타일'이란 말을 들으니 갑자기 뇌리를 스쳐가는 이미지가 있었다.

수 년 전 엄마와 스페인 여행에서 알람브라 궁전에 들렀었고, 궁전 타일의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됐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게 좋았는지, 여행 목적지마다 자석을 꼭 하나씩 수집하는 내가 알람브라 궁전 모양의 자석 대신 알람브라 궁전 타일 모양 자석을 사와서 냉장고에 붙여놨다!

그 이미지를 이 집에 재현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면서 비슷한 타일을 찾으러 을지로로 향했고, 완전히 원하는 이미지의 타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해보이는 타일을 골랐다(북유럽풍 타일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타일 가게에서는 정말 친절하게 직접 공장으로 주문을 넣어주셨고, 집 근처 택배 회사로 가서 30kg이 넘는 그 타일을 운반해왔다. 예상보다 훨씬 화려한 색상을 구매하게 되었지만, 타일을 붙일 벽면이 아주 넓지는 않았기에 강렬하면서도 적당한 포인트를 주는 것 같아 너무나 맘에 든다. 
       

새로운 벽 타일 살짝 밋밋한 거실의 포인트가 되고 있는 벽 타일, 가까이서 촬영. ⓒ 김혜민

    
크게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의 집은 아니다. 남아 있는 일도 많다. 겨울이 지나면 베란다 문짝 양 옆으로 길다란 식물을 키울 예정이고, 틈 나는 대로 거실 벽에는 단열벽지를 다시 바른 뒤 원하는 사진과 그림을 착착 붙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속도가 뭐가 중요하랴! 우리가 조금씩 우리만의 무언가를 집에 담아내고 있으며, 즐겁게 추억을 만들어간다는 점에 나는 가장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깔끔한 자태를 뽐내는 유리창과 커튼, 조명을 보면 남편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들이란 생각에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남편과 아주 가끔 다툼이 생겨도 집안 구석구석 스며든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다보면 좀 누그러지기도 한다.

알록달록 타일을 보면 열심히 그걸 붙이고 막걸리를 시원하게 드시던 아빠 생각도 나고, 알람브라 궁전에서 아빠 보여드리겠다고 타일 사진을 열심히 찍던 엄마 생각도 나면서 뭔지 모르게 애틋하고 행복해진다.

쭈글쭈글한 벽은 좀 한심한 부분이지만, 덕분에 초등학생이 된 마냥 열심히 물과 풀을 섞어 도배지에 바르고, 벽에 붙이고, 실패해 좌절했던 기억 또한 오랜 추억이 될 것 같다. 단열벽지로 '심폐소생술'을 거치면 그 과정 또한 우리에겐 중요하고 커다란 경험이 되겠다 싶어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크게 멋진 집이 아니어서 조금 민망해지기도 한다. 집 관리 초보가 이제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터라 들떴다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리고 집 관리에 전혀 취미가 없고 청소조차 하기 싫지만 앞으로 좀 해보고 싶은 독자가 계시다면 그런 분들께는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정리 #집관리 #집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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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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