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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 집의 치명적 단점

[1인 재택러, 이렇게 삽니다] 층간소음에 자꾸 비좁아지는 마음... 전셋값 고공행진에 더 우울

등록 2021.01.18 07:37수정 2021.01.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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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회사가 아닌 집에서 일을 한다는 건, 1인 가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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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이 묘하게 달라졌다. ⓒ pixabay

 
전세 계약 만료일까지 딱 4개월이 남았다.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서 이제 슬슬 마음을 결정할 때가 돌아온 것이다.

물론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서울에서 내 집 없이 떠도는 1인 가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겠지만, 내가 이 집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나름대로 포부가 있었다. '내 집 장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는 동안 부지런히 벌어서 2년 뒤 계약이 끝나면 조금 더 쾌적하고 넓은 집으로, 한 뼘쯤은 내 삶의 공간을 '업그레이드' 해서 떠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지금의 이 코로나 사태를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일은 점점 더 줄고 벌이는 예년만 못한데 전세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요즘 내 고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지금 사는 집의 보증금을 빼고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보탠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의 집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다.

결국, 나는 집주인에게 계약 연장 의사를 밝히고 2년 더 이 집에 눌러앉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내가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이 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 달 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내가 일하던 학원은 문을 닫고, 모든 업무를 재택근무 형태로 전환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독립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던 나는 본의 아니게 온종일 혼자 집안에 갇혀 지내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자연스레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집의 단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나의 평범한 이웃들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낯설고 어색한 21세기, 같은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우리는 그동안 적당한 선을 지키며 예의 바르고 건조하게, 또 담백하게 잘 지내왔었다. 내가 재택근무를 통해 '층간 소음'이라는 이 집의 치명적인 단점과 맞닥뜨리기 전까지 말이다.
 
옆집 여자는 하루에 최소 두 번 이상 청소기를 돌리고, 위층에 사는 신혼부부는 냉전 중인지 요즘 들어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일이 잦다. 아래층 복도에서는 몰티즈나 치와와 종으로 추정되는 작고 충성스러운 개가 한낮의 정적을 가르며 "월! 월!" 짧고 굵게 짖곤 한다.

물론 하나같이 당장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곤 못 배길 정도로 듣기 괴로운, 고의적인 소음은 아니다. 그러나 온종일 집에 붙어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이 나만 빼놓고 작당을 했나,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그동안 왜 한 번도 이 집이 시끄럽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직업의 특성상 일반 회사원보다 출퇴근 시간이 늦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오후 세 시에 출근해서 열 시에 퇴근하는데, 집에 돌아오면 열한 시가 넘는다.

그래서 남들 다 잘 때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서 사부작사부작 뭔가 할 일을 찾거나, 남들이 기지개 켜고 일어나 상쾌하게 하루를 준비할 때 오밤중처럼 깊은 잠을 자는 때가 더 많다. 게다가 주말엔 더 바빠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집을 비운다. 한마디로 나는 그간 이웃들과 '타이밍'이 달랐던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짐을 싸서 시골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학원에서 불시에 호출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 앱을 켜고 근처 전세 시세를 알아보니 지금 덜컥 이사를 결정하는 것도 내 형편엔 무리다. 결국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시름만 깊어 갈 즈음, 뜻밖에 반전이 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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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딱 평수만큼 내 마음 씀씀이도 좁아진 게 아닌지 씁쓸하다. ⓒ pixabay

 
며칠 전, 나는 오전부터 수업이 있어서 화상 회의 전용 앱으로 라이브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서 모니터 속 아이들과 일일이 눈을 맞춰가며 수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황당하게도 위층에서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했지이마아안, 그대를 사아랑 했지마아안~"
 
나는 재빠르게 노트북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남자의 노랫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수업 중인 아이들에게까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젖히고 천장에 대고 빽 소리를 질렀다. 그간 쌓여 왔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묵직한 한 방이었다.
 
"거참, 조용히 좀 하세요!"
 
노래가 뚝 끊기고 후다닥 창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모니터 속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는 그제야 비로소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그 노래는 위층 사는 신혼부부 중 남편 쪽이 아내에게 불러주는 사랑의 세레나데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근래 싸움이 잦다 싶더니 먼저 화해를 신청하려고 혼자 노래 연습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평일 한낮이니 웬만한 사람들은 다 출근을 하고 집을 비웠을 것이라 안심한 모양이다.
 
문득 나로 인해 위층 남자가 얼마나 무안하고 민망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위층 남자에게 조용히 하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 대신에 좀 더 유쾌하고 다정하게 부탁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좁은 집에 갇혀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딱 이 집의 평수만큼 내 마음 씀씀이도 좁고 비루해진 건 아닌지 씁쓸하다. 따지고 보면 내 이웃들도 지난 두 달간 얼마쯤은 나라는 존재가 내는 하찮은 소음들을 견뎌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쯤 되면 그간 나를 괴롭혔던 소음은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모니터로만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이 상황의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내 속에서부터 새어나온 비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속이 시끄러웠던 탓이다. 그러니 부디 다시 고요한 일상을 되찾아 시끄러운 속을 달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날이 올 때까진 나는 계속 이 집에 살아야겠다. 나의 평범한 이웃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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