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AI가 부른 김현식의 노래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리뷰] 엠넷 <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 >

20.12.18 16:21최종업데이트20.12.18 16:21
원고료로 응원
내 생애 첫 음악 콘서트는 고 김현식의 콘서트였다. 음악에 별다른 소양이 없던 나를 이 콘서트로 인도한 이는 내 짝꿍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짝꿍은 좀 특별한 아이였다. 우선 헤어스타일이 그랬고(당시는 '날라리' 스타일로 불리는 헤어스타일), 짝꿍이 된 첫날 첫 물음을 "넌 어떤 노래 좋아해?"라고 묻는 아이였다. 갑작스런 질문에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일천한 음악 지식으로 변변한 대답을 했을 리 없다.
 
나와는 사뭇 다른 짝꿍과는 놀라우리만치 급속히 친해졌다. 전적으로 친화력이 좋은 그 애의 공로였고 나로선 행운이었다. 이 아이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TV 음악 프로그램 정도나 보던, 음악 취향이랄 것도 없는 내겐, 엄청난 신세계의 인류였던 셈이다. 노래(음악)을 신청하면 틀어주는 음악실이 있는 것도, 그 애의 인도로 알게 되었다. 돈을 내고 노래만 듣는 곳이 있다니, 문화 수준이 낮은 내겐 매우 황홀한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10여 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음악 분식점(당시엔 엘피가 서가에 잔뜩 꽂혀 있는 부스에서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는 분식점이 있었다)이 있다는 것도 그 애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후 그곳은 군색한 용돈이 흘러들어가는 블랙홀이 되었다. 돈만 있으면 그곳에 가 입과 귀를 즐겁게 하느라, 내 고등학교 1학년은 더없이 즐겁게 흘러갔다. 그 애는 팝송을 틀어주는 음악 방송('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애청자였고, 이런 매체를 통해 해외의 뮤지션을 접하고 음악 정보를 꾸준히 쌓아 조예를 넓혀온 터였다. 음악 잡지가 있는 것도 모르던 내게 중학교 때부터 이를 꾸준히 구독해온 그 애는 내게 매우 경이로운 존재였다. 그 애가 없었다면 그런 문화를 어떻게 향유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그 애는 내게 노래라는 복음을 전해 준 전도사였다.
 
나와 전혀 다른 종족인 그 애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우리의 우정은 날로 돈독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가 콘서트에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 콘서트? 나는 단박에 오케이를 했고 그렇게 난생처음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당시 인천 신포동에 한 나이트클럽이 있었는데 꽤 유명한 곳이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무슨 콘서트를 하느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처럼 마땅한 공연장이 있지도 않았고, 당시는 김현식이 스타로 급부상한 때도 아니어서, 나이트클럽을 빌려 콘서트를 하는 것은 어떻게든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뮤지션으로서는 썩 나쁜 조건도 아니었다. 나이트클럽을 빌려 영업 시작하기 전에 공연을 하는 것이라, 콘서트는 좀 이른 시간에 진행되었다. 콘서트 시작 전 미리 짝꿍과 만나 좀 놀다 가보니, 벌써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의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김현식이 나만 몰랐지 나름 팬덤이 있는 가수라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그때는 객석의 위치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지 않는 균일 공연비의 선착순 입장이라, 일찍 줄 서서 먼저 좋은 자리를 선점하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무대에서 아주 멀지 않은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열호 속에 김현식이 등장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사랑했어요'가 첫 곡이었다. 난생처음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기분이라니... 정말 황홀했다. 노래는 또 어찌나 잘하던지, 그때 울었던가?
 
김현식은 이렇게 내게 특별한 가수였다. 내게 첫 대면 가수였고, 첫 콘서트 대상이었고, 이후 처음으로 가수의 팬이 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정말 늘어지도록 들었다. 그러던 그가 불운하게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내 소녀 시절 팬이 그렇게 소멸했다. 많이 슬펐다. 그런 슬픈 정서 때문인지, 이상하게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즈음이면 영락 없이 그의 앨범을 꺼내게 된다. 승용차의 시디플레이어엔 겨우내 그의 앨범이 걸려 있다. 겨울을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셈이다.
 
내가 가진 앨범은 그의 불운 후 1991년 유작 앨범으로 발매된 6집이다. 이 앨범 속 김현식의 목소리는 그가 마지막까지 빚어낸 사리와도 같다. 병마가 자신의 육신을 집어삼키기 직전까지 처절히 싸운 고투의 흔적이 배어있다. 밭은 숨소리와 갈라질 대로 갈라져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영혼을 갈아 넣은 노래들. 앨범의 노래들은 그를 오래 애정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듣기 불편할 죽음의 흔적이 스민 소리들로 채워져 있다. 추워지면서 차에서 그의 앨범을 재생하던 하루, 차에 같이 타고 있던 딸이 "다른 거 들으면 안 돼"냐고 한 건, 사실 크게 이상할 것 없는 반응일지 모른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들을 수밖에 없다. 다른 이에겐 듣기 어려운 그의 목소리를 나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Mnet 특집프로그램 <다시 한번>의 한 장면 ⓒ Mnet

 
그가 무대에 서 있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홀로그램으로 어색하게 재현된 무대에서 보게 되자, 굉장히 이상했다. 객석에 초대된 그의 동생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고, 카메라가 비치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울고 있거나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광경에 도무지 이입되지 않았다. 직장인처럼 트렌치코트를 입고 어색한 몸짓으로 마이크를 쥐고 노래하는 저 사람이 내가 사랑한 김현식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이 놀라운 일이 생긴 경위는 이랬다. 케이블 채널 <엠넷>의 <에이아이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이하 <다시 한번>) 프로그램은 흥미로운 시도를 한다. 제작진은 AI에게 김현식의 생전 목소리를 빅데이터로 학습하게 한 후, 그의 생전에 존재하지 않던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기술적으로 설명할 재간이 없다. 제작진은 놀라운 기술로 그의 목소리를 '복원'했다고 하지만, 나는 AI가 데이터 수집으로 노랫소리를 흉내 내는 이 현상을 '복원'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충격이었다.
 
1995년 서울음반이 일본에 방치되어 있던 일제 강점기 시대 대중가요들 복원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의 사랑을 받던 노래들이 그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목소리 그대로 되살아났다. 복원된 노래가 흘러나오는 방송을 듣고 놀란 기억이 있다. 사라질 뻔한 가요 역사 일부를 되살려낸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복원(復元/復原)'이라 부르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죽은 가수의 목소리를 데이터로 입력시켜 흉내 내게 하는 일을 '복원'이라 부르는 데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제작진의 주장대로 '복원'된 김현식의 목소리로 부른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는 기술적으로는 성공한 듯싶다. 거의 그의 목소리처럼 들렸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목소리라고 해도 무방할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그의 노래를 들었고, 사후에도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내게 묻는다면, 나는 AI의 목소리를 그의 노래라 부를 수 없다. 나는 몹시 당황했고, 어색하게 홀로그램으로 무대에 서있는 그가 무척 외로워 보였다. 그는 죽어서도 쉬지 못하고 타인을 만나야 하는 건가. 객석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겐 내 감정이 마땅치 않겠지만, 카메라가 비추지 않은 다른 사람의 감상도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의 김동규 피디는 "해당 가수의 유가족과 관계자의 동의를 얻어 상업적 요소는 배제하고 고인의 뜻을 추모하려는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인의 뜻을 추모'한다는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선 1990년엔 자신의 목소리가 AI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고인의 뜻'을 30년 후의 우리가 좋을 대로 해석해서 '고인의 뜻'이라 불러도 되는지, 그리고 '추모'의 방식 또한 문제다. 나와 같이 김현식을 추모할 다른 많은 사람들이 AI가 흉내 낸 재현 방식에 환호나 동의를 보낼지 의문이다. 죽은 사람이 무대에 깜짝 등장해 생전과 거의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일을 목격할 때, 잠시 흥분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저것은 현실도 진실도 아닌 재현, 즉 증강현실(가짜)이라는 것을 말이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나의 사후 내 자손이 나를 저런 식으로 소환한다면 어떨까 하는. 나는 싫다. 어떻게 재현됐든 저 모습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 재현 어디에 나의 고유함이 깃든단 말인가. 나는 나의 고유함(오리지낼러티)은 나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라고 믿는다. 문제는, AI 재현을 공상과학쯤으로 여긴 앞선 세대의 사망자들은 이런 유서를 남길 생각조차 못 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자신들의 고유함을 지킬 방도가 없다는 데 있다. 문득, 내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 '나를 AI로 재현하지 말라'고 유언장이라도 남겨야 하는 건가 하는, 웃픈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엠넷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 김현식 너의 뒤에서 AI 목소리 복원 노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