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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강사 확진 판정에 딸 "엄마, 내 일 년 어떡하지?"

이제야 털어놓는 코로나 시대 수험생 집안 사정... 잘 버틴 수험생 모두에게 박수를

등록 2020.12.05 14:20수정 2020.12.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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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내내 '코로나 수능'이라고 불렸다. 수험생은 수능 당일 긴장감에 코로나 감염 우려가 더해져 이중고를 겪었다. 입장 시 고열 체크, 책상 위 칸막이, 마스크 의무 착용, 매 시간 환기와 손 소독 등 지켜야 할 방역 수칙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재수생인 딸은 수능 고사장에 책상마다 칸막이를 설치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당황했다. 책상 면적이 작아져 시험지를 한 번에 펼 수 없기 때문에, 지문이 한 페이지가 넘는 국어 시간을 가장 걱정했다. 만약 누군가 실수로 칸막이를 떨어트려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면 부정 행위로 간주하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남은 기간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다며 연습용으로 칸막이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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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마스크 착용은 이미 피부와 같은 일상이 된 지 오래 되었다. 재수학원에 등록한 3월부터 딸은 학원 내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마스크를 써야했다. 마스크 끈 때문에 귀 뒤가 헐고, 입 주위에 접촉성 피부염이 생겼다. 나는 외출할 때만 잠깐씩 마스크를 써도 답답한데, 온종일 마스크 안에서 숨 쉬며 공부할 딸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예상보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유럽에서 수능과 같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딸은 우리나라도 올해 수능이 실시되지 않으면 '자동 삼수'인가 겁을 먹기도 했다. 수능 날짜가 2주 미뤄졌고, 학원은 자주 휴원하고, 모의고사도 취소되는 등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2020년 '역병수능', 재수생도 온 가족도 1년 내내 방역모드

온 가족도 초비상이었다. 확진자 그래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수험생 가족은 1년 내내 방역을 해야 했다. 한 집에 사는 외할머니는 2월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고 온라인 예배를 봤다. 아빠도 어쩔 수 없는 회식에만 참여했다. 대학생 언니는 답답할 텐데도, 친구 만남을 자제하고 외출 삼갔다. 엄마인 나 역시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조심스럽게 독서 모임에 참석했지만, 뒤풀이 장소에는 갔다가 그냥 나왔다. 식당에서 냉난방 시설로 비말이 멀리 전파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명절인 추석 때도 집에서 조용히 보냈다. 서울 근교 전원주택 사는 시부모님은 동네 대기업 연수원이 코로나 확진자 격리 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니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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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날인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 수능 감독관을 위해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나름 신경 써서 잘 예방했다 생각했던 수능 열흘 전, 딸이 다니는 재수 학원 강사가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았다. 수업을 들은 딸도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내 일 년 어떡하지?" 눈물이 핑 돌았다는 딸의 말에 나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방에 식사를 넣어주고, 화장실로 따로 썼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하면서 내내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학원생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마스크 사용이 정말 중요하구나 한 번 더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수능은 인생의 수많은 문들 중 하나

지난 3일, '역병 수능'이라고까지 불린 수능일이 막상 지나니 매일 아침 차로 데려다 주면서 함께 들은 음악도 잠시 나눈 이야기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재수생도 이렇게 힘든데, 한 살 아래인 고3 아이들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까 우려하는 딸에게서 의젓함을 보았다.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힘들어 하거나, 평소 체온이 높아 늘 체온 검사에 걸리는 친구를 걱정하는 딸에게서 친구를 경쟁자로만 보지 않는 마음이 대견하기도 했다.

흔히 미디어에서 수능을 '인생의 첫 번째 관문'이라 표현한다. 나는 수능이, 인생을 걸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수능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 다른 문으로 지나갔다가, 되돌아와서 문을 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수능 결과에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반드시 통과해야 할 첫 번째 문이 아니듯 마지막 문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노력과 성실함으로 보낸 시간의 경험을 다른 문을 열 때 소중한 지혜의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로 불안과 공포, 우울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성인의 문턱 안팎에 있는 수험생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었을 테다. 일 년간 학업 더불어 코로나와 싸우며 잘 버틴 수험생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나저나 학원에서 연습용으로 썼던 칸막이를 이제 집에서는 무엇에 쓸고?
#수능 #코로나19 #수험생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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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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