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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례식 날 잔칫집에 가야만 했던 이 남자의 사연

[리뷰] 영화 <잔칫날>

20.11.26 09:36최종업데이트20.11.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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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영문 관용구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온 수저계급론은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계속 부유할 수밖에 없는 씁쓸함을 보여준다. 2015년부터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금수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을 나타내는 말이 유행했다. 태어나서 사는 것을 결정하는 수저가 만약 죽음까지 결정한다면 얼마나 씁쓸한 일일까.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4관왕에 빛나는 <잔칫날>은 이런 씁쓸함을 담은 영화다.  

작품은 두 개의 공간을 번갈아 가며 교차로 진행된다. 그 두 장소는 극과 극인 곳이다. 무명 MC인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식 날 장례식장을 떠나 잔칫집을 향한다. 그가 이곳에서 MC를 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장례식을 치러주기 위해서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는 병세가 회복되면서 함께 낚시를 가자고 약속한 이후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경만은 아버지의 죽음 후 가난을 실감한다.   

<잔칫날>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그가 가진 돈으로는 제대로 된 관 하나 장만해 드릴 수 없다. 편육도, 육개장도 없는 장례식 상차림을 보며 경만은 서러움을 느낀다. 아버지가 병원에 있을 때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이 끝난 뒤 가족의 모습을 돌아본 그는 가난의 지독함에 치를 떤다. 가난은 돈이 필요한 순간에 처절하게 다가온다. 경만은 계모임을 들지 않았다며 조의금을 적게 내자는 친구들의 말에 야속함을 느낄 만큼 이 순간이 괴롭다.  

그는 선배가 제안했던 행사 MC 자리를 수락하기로 한다. 상주 자리를 동생 경미에게 맡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시골로 향한다. 마음은 울고 있지만 얼굴은 웃어야만 하는 경만의 아이러니한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슬픔 속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웃음과 친절을 파는 광대가 되어 가면을 써야만 한다.  

빨리 행사를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경만은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며 발이 묶이게 된다. 이런 경만의 상황에 당황하는 건 동생 경미다. 경미는 영화의 상황이 주는 안타까움을 더 진하게 만든다. 경만이 사라지면서 상주가 된 경미는 주변의 압박을 받는다. 보이지도 않던 친척들은 갑자기 나타나 상주가 자리를 비울 수 있느냐며 화를 낸다. 경만의 친구들은 예쁜 친척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보채고, 상조회사는 장례비용을 빨리 결정하라며 성화다.   

 

<잔칫날>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오빠마저 사라지자 경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자신을 지탱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진 것이다. 경만에게 전화를 걸며 오열하는 경미의 모습은 슬픔 속에 위로받아야 할 가족이 오히려 상처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만 가족의 불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나타낸다. 탄생의 순간 수저계급론으로 삶의 모양이 결정되듯 죽음의 모양마저 정해진다.  

영화의 아이러니는 제목 '잔칫날'과 이런 상황적인 측면에서 이뤄진다. 그 백미는 경만이 행사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경만은 팔순잔치를 맞이해 아버지가 돌아신 후 한 번도 웃지 않는 노모를 즐겁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최선을 다하는 그는 할머니를 비롯한 참가자 모두가 다 같이 일어나 춤을 추도록 행사를 유도한다. 이때 할머니는 경만을 보고 '여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잔칫날>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이때 할머니는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는 경만의 모습에서 남편을 보았을까. 가족은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만 노력했을 뿐, 그 상실의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즐거운 잔칫날, 그 주인공이 가장 슬픈 아이러니다.

이런 감정적인 아이러니는 장례식장에서 경미에게 가해지는 압력과 경만이 잔칫집에 가는 이유가 된다. 영화는 상황에만 기대어 전개를 만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감정적인 측면을 확실히 붙잡고 가기에 마음 한 구석을 묵직하게 때리는 먹먹함과 함께 진한 여운을 만든다. 죽음의 가치마저 돈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모습을 통해 슬픔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죽음을 바라보는 존엄하고도 냉철한 통찰력을 지닌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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