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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다쳐도 알바에 가는 청춘... 이들이 사회에서 배운 것

[리뷰] 영화 <에듀케이션>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인생공부

20.11.25 14:46최종업데이트20.11.2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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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케이션> 포스터 ⓒ 씨네소파

 
<에듀케이션>은 새로운 삶을 꿈꾸는 두 청춘의 '인생 공부'를 통해 지금 청춘의 고난과 역경을 말한다. 영화는 마치 연극과 같은 구성을 보인다. 카메라의 화면은 고정되어 있고 멀리서 인물들을 비추는 형식을 취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성희와 현목, 두 주인공이 대부분이다. 다만 어투는 연극에 비해 건조하다. 자막이 없으면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의 대화 역시 현실적이다. 이런 기본적인 설정은 현실감을 더한다.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질감으로 실제 청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에듀케이션> 스틸컷 ⓒ 씨네소파

 
성희와 현목, 두 주인공은 각기 다른 미래를 꿈꾸며 서로를 수단으로 여긴다. 성희는 사회복지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 계획은 스페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스페인어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한다. 워홀을 가기 위한 돈을 벌려고 장애인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희는 허리를 다친다. 문제는 아르바이트생이라 치료비마저 자비 부담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자비로 치료를 받는 것도 억울한데 몸이 아프니 일을 주기도 곤란하다고 센터장은 말한다.
 
사정 끝에 성희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보내는 중증 장애인의 집에 새롭게 배정받는다. 그곳에서 엄마와 단 둘이 지내는 현목은 사사건건 성희의 일을 간섭한다. 현목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공무원 공부를 독학한다. 두 사람은 공부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 각자는 그 미래를 위한 수단에 가깝다.

성희는 현목의 가정을 워홀을 위한 단계로만 생각한다. 다툼이 날 때마다 성희는 현목의 집을 찾아가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이가 가까워지면 피어나는 우정이나 희생 같은 게 성희에게는 없다. 철저하게 워홀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현목의 집에 간다. 현목이 성희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부족한 모성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현목은 성희를 통해 충족하고자 한다.
  

<에듀케이션> 스틸컷 ⓒ 씨네소파

 
성희가 현목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는 건 현목의 미래를 알기 때문이다. 성희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친구들은 그녀가 사회복지사가 되었다고 생각했음을 말한다. 성희는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지만 떨어졌다. 현목은 인터넷 강의를 들을 돈도 없어서 독학을 한다. 여기에 아르바이트와 학교수업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 그런 현목의 미래를 아는 성희는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성희가 먼저 받은 인생수업 때문이다. 센터장은 성희와 같은 학생들을 도구처럼 여긴다. 영화 도입부에서 그는 성희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다른 직원을 가리키며 '겉보기에는 친절해도 학생들에게 실습 점수를 짜게 준다'고 험담한다. 성희는 센터장에게 잘 보여야만 하는 위치다. 사회 초년생인 그는 남의 눈치를 보고 부당한 일에도 눈을 감아야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성희의 모습은 센터에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이들은 휠체어에 앉아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성희가 센터장의 눈치를 보고, 현목이 성희의 눈치를 보는 모습은 생계를 유지하느라 자유롭지 못한 요즘 청춘들의 모습이다. 엄마가 휠체어에서 넘어졌을 때도 돈 때문에 119를 부르지 못하는 현목은 허리를 다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성희와도 겹쳐지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에듀케이션> 스틸컷 ⓒ 씨네소파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다. '젊을 때는 사서 고생도 한다'는 말처럼 청춘들의 고통을 당연시 여기는 듯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재 청춘들은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높은 학력과 스펙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하고, 노력해도 결과가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힘들게 취업에 성공해도 '갑질' 등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생 공부'를 겪은 청춘들이 영화 속 성희처럼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에듀케이션>은 흙수저 청춘들이 뭉쳐 밝은 미래를 그려내지도, 감정을 자극하며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잔혹한 인생공부에 내몰린 두 주인공이 모습을 건조하고 차갑게 그려내며 안타까운 공감을 자아낸다. 청춘을 다룬 영화는 많으나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차분하게 담아낸 작품은 드물다. 성희 역의 문혜인과 현목 역의 김준형, 두 배우의 앙상블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에듀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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