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지금 이강인에게 필요한 건 감독의 '신뢰'다

[주장] 중요한 분기점 앞둔 이강인, 안정된 출전시간 확보가 관건

20.11.19 11:12최종업데이트20.11.19 11:12
원고료로 응원
'한국축구의 미래' 이강인은 세계무대에서도 주목받는 유망주로 꼽힌다. 재능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지난해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아시아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골든볼까지 수상했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유럽 빅리그인 스페인 라리가의 명문팀 발렌시아CF의 일원으로 활약중이며 대한민국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성인무대에서의 이강인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발렌시아 유스 팀에서 성장한 이강인은 일찌감치 팀 내 최고 유망주로 꼽히며 2019년 1월 1군으로 승격했지만 벌써 2년이 다되도록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강인은 2019-20시즌 종료 뒤에 발렌시아를 떠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구단은 이번에 팀 개편과 함께 이강인을 중용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붙들었고 이강인은 일단 잔류했다. 프리시즌까지는 약속이 지켜지는 듯 했다. 이강인의 출전 기회가 늘었고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경기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에 돌입하자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이강인은 올시즌 리그 8경기에 출전했다. 선발이 5회, 교체가 3회였고 풀타임 출장은 한번도 없다. 전체 출전시간을 다 합쳐도 388분에 불과하다. 이강인을 중용할 듯 보였던 하비 그라시아 감독은 전력보강 문제와 팀운영의 방향성을 놓고 발렌시아 수뇌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인에 대해서도 무언가 확실한 신뢰는 부족한 듯한 모습이다.

부족한 기회가 이강인의 탓은 아니다. 일관성 없는 기용방식과 부족한 출전시간 속에서도 이강인은 도움만 벌써 3개나 기록했다. 스페인 현지 언론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발렌시아에서 가장 전진패스와 탈압박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이강인이다. 거함 레알 마드리드를 4-1로 격침시킨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81분을 소화하며 화려한 패싱력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다. 꾸준한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높은 생산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표팀에서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강인은 2019년 3월 벤투호에서 처음 승선하여 성인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한동안 훈련에만 참여하는 '연습생'으로 머물렀다. 그 후 무려 6개월이 지난 9월 조지아전에서 겨우 공식 A매치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주전과 검증된 선수들을 선호하는 벤투 감독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이다.

이강인은 A매치에서 5경기에 출전했지만 선발 출전은 두 번, 풀타임은 작년 10월 열린 최약체 스리랑카전 한번 뿐이다. 11월 열린 레바논전에서는 후반 35분 투입되여 10여분을 소화한데 이어, 1년만에 A대표팀이 소집된 이번 멕시코-카타르와의 2연전에서도 모두 후반 30분에 교체되투입되어 약 15~16분씩을 소화했다. A매치 출전시간을 다 합쳐도 200분이 조금 넘는다.

이강인은 투입된 시간만큼은 자신의 몫을 해냈다. 멕시코와 카타르 모두 상대의 거센 압박에 고전하여 중원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강인이 투입된 이후 안정된 볼키핑과 넓은 시야, 예리한 킥 능력으로 그나마 한국의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포지션인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을 때 오히려 '벤투 감독의 황태자'로 꼽히는 남태희보다도 더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다.

2-3으로 패한 멕시코전에서는 경기 종반 권경원의 만회골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2-1로 승리한 카타르전에서도 몇차례 위협적인 롱패스를 선보이며,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언제든 '탈압박'의 활로가 될 수 있는 카드임을 증명했다. 전문가들과 축구팬들은 가뜩이나 코로나 악재로 선수가용자원이 부족했고 경기내용도 그리 좋지 않았던 벤투호의 이번 2연전에서, 차라리 이강인을 좀더 일찍 투입하여 많은 시간을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강인은 현재 축구선수로서 중요한 분기점을 앞두고 있다. 2022년 6월까지 발렌시아와 계약돼 있는 이강인은 최근 구단의 재계약 요청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은 이강인이 가까운 시일내에 발렌시아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이강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된 출전시간을 보장받는 것이다. 발렌시아는 선수구성상 이강인을 전술적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데다 구단 내부의 정치적 사정도 어수선하다. 잠재력이 풍부한 이강인이 이적시장에 나올 경우, 유럽의 여러 명문클럽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19세의 이강인은 성인 선수로서는 아직 수비와 피지컬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아직 어리다고 하기에는 이강인이 벌써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것들이 너무 많다. 지금 이강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의 능력을 믿어주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감독의 신뢰가 아닐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이강인 하비그라시아 파울루벤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