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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여성들이 "이젠 전쟁이다" 외치는 이유

가톨릭 보수주의에 침식되고 있는 폴란드 사회... 여성의 반격이 시작됐다

등록 2020.11.03 10:31수정 2020.11.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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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헌법재판소가 '기형아 낙태 위헌' 결정을 내린 10월 22일부터 현재까지 폴란드에서는 여성들의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 규모는 연일 커지고 있다. ⓒ wiki commons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기형아 낙태에 위헌 결정을 내렸던 10월 22일 이후 폴란드에서는 여성들의 '낙태 금지 반대'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다. "이제는 전쟁이다"이라는 시위 구호가 나올 만큼 폴란드 여성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폴란드 헌재의 결정이 사실상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 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커지고 있으며, 남성들의 지지와 연대도 함께 커지고 있다.

가톨릭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폴란드에서 성당이 시위대에게 점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가톨릭 보수주의가 퍼져있는 폴란드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된다. 폴란드 여성들이 이 문제가 정치권과 결탁한 가톨릭 세력에 의해 불거졌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폴란드에서 어떤 정치세력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가톨릭 보수파와 어떻게 결탁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탈공산화를 이끈 폴란드 우익과 가톨릭의 동맹

1980년대부터 동유럽 지역에서 일어난 탈공산화 운동으로 현재의 동유럽 체제들이 들어서게 됐다. 폴란드의 탈공산화를 이끈 세력은 당연히 자유연대노조인데, 이 자유연대노조는 당시 가톨릭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동구권에서 폴란드는 가톨릭의 존재와 활동을 상당히 인정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가톨릭의 지원을 받았던 자유연대노조와 그 지지세력은 탈공산화 이후 둘로 쪼개졌다. 한쪽은 리버럴 성향의 '시민연단(PO)'으로, 다른 한 쪽은 현재 여당이자 확실한 우익성향인 '법과정의당(PiS)'으로.

법과정의당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우경화됐다. 이들은 폴란드 내 가톨릭 전통 가치를 수호하자는 강령을 내세우며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기존 폴란드는 사회주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탈공산화 운동가들에 의해 이런 조치들이 공격당하게 됐다.


법과정의당 등은 이미 2007년에 낙태를 전면 금지하려고 시도했으며, 2016년과 2018년에도 낙태금지 예외조항을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이럴 때마다 여성들은 강력한 저항으로 법개정을 막아냈다.

그러나 법과정의당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젠더 억압적 조치를 꾸준히 추진했는데 폴란드 지방정부들을 중심으로 'LGBT free zon'을 만들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활동 범위를 제한시켰으며 성소수자 활동가를 구금하기도 했다.

법과정의당은 장기집권으로 보수화가 더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 사제들이 신성모독을 이유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화형시키는 것은 이러한 폴란드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는 법률 개정이나 개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는 우회로를 이용해 낙태 허용의 범위를 줄여버렸다. 이것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폴란드 시위의 원인이다.

이외에도 법과정의당은 언론 통제와 비판 재갈 물리기, 사법 장악 등을 통해 반민주적 조치들을 꾸준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야당은 '새로운 독재세력'이라고 규정하고 반발하고 있다. 가톨릭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역시 이들 법과정의당에 의해 장악됐다는 평가다.

폴란드 여성, 가톨릭 보수주의와 우익 포퓰리즘을 흔들다

법과정의당은 가톨락 보수주의 세력과의 결탁으로 인한 반발을 사회복지정책 확대를 통해 무마해왔다. 실제로 법과정의당은 집권기간 좌파정당이나 리버럴 정당들보다 더 분배정책에 신경써왔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경제 침체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던 상황에서 기형아 낙태 금지 결정이 나오자 여성들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번 시위의 가장 큰 의의는 탈공산화 이후 폴란드를 짓누르고 있던 가톨릭 전통주의와 우익 포퓰리즘에 대한 반격에 있다.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는 기존 체제를 흔들고 있는 이 시위가 폴란드를 더 진보적인 사회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한다.

종교 보수파와 극우의 결탁은 폴란드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종교 극우와 정치 극우의 동맹이 수 차례 이뤄졌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극우 성향을 보이는 종교가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대중은 똑똑히 봤다. 폴란드가 겪고 있는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폴란드 여성의 투쟁을 주의깊게 봐야 하는 이유다.
#폴란드 #낙태금지 #여성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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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사, 사회복지 관련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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