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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전자랜드 마지막 시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강팀들 꺾으며 파란 예고 중

20.10.11 12:00최종업데이트20.10.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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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을 끝으로 프로농구에서 사라지는 인천 전자랜드가 시즌 초반부터 뜻밖의 돌풍을 일으키며 또 하나의 반전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전자랜드는 9일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개막전에서 98-96으로 승리한데 이어, 10일에는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홈 개막전에서 서울 SK를 97-74로 완파하고 2연승을 내달렸다.

SK와 KGC는 올시즌 대부분의 전문가와 농구팬들 사이에서 유력한 우승후보 1,2순위로 꼽힌 강팀들이다. 심지어 전자랜드는 지난 시즌 공동 1위팀 SK에게는 5전 전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지난 프로농구 미디어데이에서도 무려 무려 9명의 감독들이 두 팀(SK 6명, KGC 3명)을 우승후보로 지목했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KGC를 지목한바 있다.

반면 전자랜드는 잘해봐야 중위권이거나 심지어 약팀으로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 갑작스러운 모기업의 농구단 운영 중단 결정으로 인한 선수단의 사기저하. 가드 김지완(KCC)의 FA 이적과 군복무중인 포워드 정효근-강상재의 공백, 주포 헨리 심스의 초반 컨디션 난조 등 악재가 더 많아보였기 때문이다. 전자랜드는 10개 구단 중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 소진율(60.3%)이 최저를 기록할만큼 선수들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팀이었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예상을 깨고 끈끈한 모습을 보여주며 농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직력의 팀답게 누구 하나에 치우치지않은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돋보였다. KGC전에서 2옵션 에릭 탐슨과 베테랑 정영삼의 집중력이 돋보였다면, SK전에서는 20점을 올린 전현우가 깜짝스타로 등극했다. 전자랜드는 우승후보 양강을 상대로 2경기 연속 '90점대 팀득점-6명의 선수가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1옵션으로 기대했던 외국인 선수 헨리 심스가 아직 베스트 컨디션이 아님에도 에릭 탐슨이 기대 이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두 선수의 출장시간을 적절히 안배할수 있게 됐다. 두선수는 KGC전에서 나란히 외국인 선수 동반 더블-더블(탐슨 11점 11리바운드, 심스 10점 11리바운드)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NBA 출신인 심스가 득점력이 좋고 장신에도 슛거리가 넓다면, 탐슨은 화려하지않지만 골밑에서 전투적인 몸싸움과 허슬플레이가 강점이다.

국내 선수들도 제몫을 다하고 있다. 유도훈 감독은 국내 선수들에게도 외인들에게만 의존하지않고 기회가 올때마다 적극적인 공격을 강조한다. 전현우, 김낙현, 이대헌 등 전자랜드의 영건들은 공을 잡지 않았을때도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고 오픈 찬스가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슛을 시도하며 자신감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공격형 가드로서 리딩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김낙현이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에 눈을 뜨며 득점 외에도 2경기에서 벌써 1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도 눈에 띈다. 정영삼은 많지않은 출전시간에도 승부체에서 중요한 득점을 집중시키며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수비에서도 앞선의 국내 선수들과 골밑을 지키는 외국인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협력플레이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2020-2021시즌은 KBL에서 전자랜드라는 이름의 구단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자랜드는 지난 8월 열린 KBL 이사회 임시 총회에서도 연맹과 회원사 구단들에게 올시즌을 끝으로 농구단 운영을 끝내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2003년 8월 인천 SK 빅스를 인수하여 프로농구에 뛰어든 이래 17년간 이어온 역사의 피날레를 앞두고 있다.

전자랜드는 아쉽게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험은 한번도 없다. 2018-2019시즌 팀 창단 후 최초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 준우승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성적이나 위상으로 보면 명문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신 전자랜드는 독특한 개성과 역사로 농구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구축한 팀이기도 하다.

초창기에는 기복심한 성적과 경기력으로 '도깨비팀' '개그랜드'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놀림당하기도 했지만, 유도훈 감독이 부임한 2010년대 이후로는 스타 선수 없이도 우승권 팀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반전의 '기적랜드' '헝그리랜드'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신했다. 농구계 판도를 뒤흔들만한 대형스타는 많지않았지만 전자랜드만의 개성있는 스토리텔링과 끈끈한 언더독 이미지를 사랑한 농구팬들이 대거 늘어났다.

전자랜드는 올해 이전에도 몇 차례나 해체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2012-13시즌에는 KBL의 지원보조금을 받아 간신히 구단 운영을 이어가던 상황에서도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역대 프로스포츠에서 해체 위기에 몰린 팀들이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다르다. 이미 8년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유도훈 감독은 당시 팀의 미래와 자신의 거취도 불투명한 상황속에서 선수단을 다독이며 흔들리지않게 중심을 잡아줬다. 설사 팀이 사라진다고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선수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인수 구단도 나타날 수 있다는게 유 감독의 소신이었다.

시즌 초반이지만 전자랜드 선수들의 표정이나 집중력에서는 내일이면 구단이 사라질수있다는 불안감이나 부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잃을 것이 없다는 투혼과 도전정신이야말로 팬들이 생각하는 가장 전자랜드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전자랜드는 늘 과소평가를 당하는데 익숙한 팀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예상을 넘어서 꾸준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으며 이변의 단골 주인공이 되곤 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올시즌에도 전자랜드는 여전히 그들만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벌써 이별을 생각하기에는 앞으로도 전자랜드가 들려줄 스토리는 아직 한참 더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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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전자랜드 유도훈감독 전현우 정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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