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인간과 동물 사이의 따스한 '공명'

창작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20.09.14 16:29최종업데이트20.09.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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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사진 플루토로 분한 '고훈정'과 랩터로 분한 '배나라' ⓒ 강선영

 

"눈을 보면 알게 돼, 목소리로 알게 돼."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과 사는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바라곤 한다. 그리고, 또 그들은 말한다. 사용하는 언어는 달라도, 동물들이 취하는 몸짓과 표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고. 이렇게 인간과 동물 사이에 '공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려낸 한 편의 뮤지컬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 7월 7일에 프리뷰 첫 공연을 올린 후 코로나19로 공연예술계가 어려운 시국에서도 철저한 방역 체계를 갖춘 상태로 진행 중인 창작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뮤지컬 <팬레터>를 함께 만든 한재은 작가와 박현숙 작곡가, 김태형 연출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내놓은 3년 만의 신작이다.

주인공은 길에서 나고 자란 검은 고양이 '플루토'와 자신이 살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나긴 시간 동안 집 앞을 서성거리고만 있는 검은 도베르만 '랩터'로 2인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둘은 '견묘지간'이라는 말처럼 첫만남에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 검은 털색과 치료를 위해 한 쪽 눈에 안대를 한 플루토의 모습을 보고 랩터는 "루이가 다시 돌아왔다!"라고 기뻐하며 외치고, 플루토는 "루이가 대체 누구야?"라고 반문하며 그런 랩터를 "정신 나간 검은 개"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사료에 독을 타서 자신의 친구들과 엄마를 해친 범인을 찾으려는 플루토와 자신이 잃어버린 프리스비를 찾아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랩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둘은 함께,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무려 9분이란 시간 동안 진행되는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라는 대곡의 노래와 춤을 통해 정육점과 꽃집, 생선가게 등을 오가며 사람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의 모습은 한 편의 모험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사진 플루토로 분한 '고훈정' ⓒ 강선영

 

인간이 만든 뮤지컬이다 보니 일정 부분 한계는 있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의 작고 사소한 행동들-개가 입 위로 혀를 내밀며 날름거리는 것처럼 얼굴 표정을 쓴다거나, 고양이의 작고 동그란 손 모양을 표현하기 위해 공연 내내 손을 동그랗게 잡고 있다거나-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배우들의 역량 덕분에 관객들은 그들이 작은 동물들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개' 랩터는 공원에서 낯선 노숙자가 내미는 손길을 "너무나 오랜만의 따스한 손길"이라며 반기는 반면, 자신의 치료를 위해 깔때기와 안대를 채워주고 먹이를 내어주기까지 하는 인간조차도 처음에는 경계하고 불신하던 '고양이' 플루토는 느린 속도로 인간과의 신뢰를 쌓아간다. 극 후반부에서는 인간이 집에 늦게 들어오면 걱정하며 마구 운다거나 하는 등의 변화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동물을 그려낸 대표적인 고전 뮤지컬 <캣츠>가 배우들이 완전히 고양이 분장을 하고 고양이처럼 행동하는데 반해, 2020년에 첫선을 보인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의도적으로 그런 인위적인 의상이나 분장을 배제하고, 검은 개와 검은 고양이라는 설정을 반영하기 위해 온통 까만색 옷을 입은 배우들의 표정 연기와 섬세한 동작들로 극의 많은 부분을 채워나간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게 한다.

작은 개와 고양이에 관해 다루는 뮤지컬인 만큼 두 동물이 실제로 프리스비를 무대에서 함께 던지고 받는다거나, 동물의 시점에서 인간에게 이름을 지어준다거나, 하는 등의 귀엽고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다. 하지만 아기 고양이 플루토의 엄마와 친구들이 인간에게 해코지를 당해서 죽었다는 기본 설정이라거나 랩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며 "인간들 진짜 미쳤다!"라고 외치는 플루토의 대사 등을 통해서 동물을 학대하거나 괴롭히는 인간들에 관해서 언급하는 장면들도 나온다. 

슬프게도, 실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자신의 폭력성을 말 못 하는 동물에게 표출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극을 보다 보면 인간과 동물이 어떤 식으로 공존해서 살아가야 할지, 가볍지 않은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이란 제목 그대로 극은 철저하게 랩터와 플루토 중심의 2인극으로 진행되지만, 라이브캠을 적극 활용하여 14개의 미니어처 하우스를 동물의 시각에서 올려다본다거나, 동물보다 커다란 인간이 작은 동물을 내려다본다거나 하는 시각을 담아내는 등 신선한 연출을 선보인다. 공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인간의 목소리에 맞춰 배우들이 대사는 하지 않고 마치 무성영화처럼 표정과 몸짓으로만 연기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전면에는 내세우지 않으면서 구현해 낸다. 
 

▲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사진 플루토로 분한 '고훈정'과 랩터로 분한 '고상호' ⓒ 강선영

 

극을 다 보고 돌아가는 순간이면 길에서 만나는 작은 개와 고양이들의 행복을 무한히 기도하게 만드는 다정한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9월 20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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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때때로 글을 쓰기도 하는 작업자.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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