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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상황도 없는데, 왜 '남매'에게서 눈 뗄 수 없었을까

[리뷰] 가족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꿈, 영화 <남매의 여름밤>

20.08.21 13:56최종업데이트20.08.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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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오래 살던 집을 떠나 '아빠(양흥주)'와 함께 '할아버지(김상동)' 집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게 된 남매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지만, 옥주는 이혼한 뒤 보기 어려워진 엄마와 남자 친구를 비롯해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마냥 해맑은 동주와 매번 다툰다. 그러던 와중에 할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진 것을 계기로 '고모(박현영)'가 남편과의 불화를 피해 양옥집에 들어오면서 오랜만에 한데 모인 남매들의 여름밤 이야기가 시작된다.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남매의 여름밤>은 소소하다. 제목대로 여름 방학을 보내는 남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몇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을 담아내다 보니 딱히 극적이라고 할 만한 전개가 없기도 하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매의 여름밤>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매력과 뜨거운 울림을 주는 감동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인 일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그래서 보편적인 사회의 아픔까지도 보듬어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매의 여름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에 담긴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어둡고 가슴 아픈 내용이다. 영화는 옥주와 그녀의 가족이 본래 살던 반지하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봉고차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그들 뒤에는 철거되기 직전의 골조만 앙상한 건물, 건물이 철거되고 재개발 준비 중에 있는 공사장, 공사장으로 향하는 트럭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 장면은 할아버지에게 미리 말을 했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는 아빠의 모습에 더해져 이 가족이 집을 떠나게 된 경위를 대략 짐작케 한다. 
 

<남매의 여름밤>은 다섯 명의 가족이 한 집에 살면서 겪는 일상, 그리고 그 속에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뤘다. ⓒ 그린나래미디어

 
할아버지 집에 들어와 오래간만에 재회하고, 왁자지껄하게 지내는 남매들의 모습에도 각기 다른 슬픔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옥주네 가족은 의도치 않게 집을 잃고 얹혀살게 되었고, 집과 직장을 잃은 아빠는 짝퉁 운동화를 팔고 새로운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옥주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연애와 이혼한 엄마와의 관계로 마음고생을 한다. 고모는 결혼 생활 중에 남편과의 관계가 어긋나서 도망쳐 나온다. 자녀와 손주들과 함께 살게 된 할아버지는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중증 환자이며 아빠와 고모가 그를 간호한다. 이러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며, 어떤 사람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역경이다. 

하지만 <남매의 여름밤>이라는 영화 자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다지 무겁지 않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영화가 청소년인 옥주의 시선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옥주가 떠날 집에 혼자 남아있는 장면을 비추면서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이야기가 철저히 그녀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세운 계획이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지적할 만큼 성장했지만, 스스로도 비슷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동생에게 화풀이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불완전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어두운 현실의 구체적인 측면들을 온전히 직시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남자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쌍꺼풀 수술을 원하는 십 대 소녀의 눈에 불편한 현실의 날카로움은 자연스럽게 순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어쩌다 집을 잃게 되었는지, 할아버지의 병은 무엇인지, 고모와 고모부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대략적인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백은 영화 내용을 이해하고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공백 덕분에 영화는 더욱 풍부해진다.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이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은 각자가 경험했던 삶의 조각들로 그 공백을 맞춰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카메라의 프레임 밖으로 주인공들이 나간 후에도 비어있는 공간을 한동안 잡아주다가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그 빈 공간을 제각기 다른 감상들이 대신 채웠으면 하는 것처럼.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밝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게 현실을 비추고 일상의 공백을 통해 공감을 끌어낸 뒤, 영화는 흩어져 있던 남매들이 한여름밤에 한데 모여서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시절 가족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다시 1인 가구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점점 쪼개지는 현실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따스함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움은 실직, 취업, 이혼 등의 다양한 이유로 가정이 분리되는 직간접적 경험이 늘어나는 세태와 맞물려 더 강한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인지 <남매의 여름밤>은 유독 식사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함께 밥을 먹고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관계로서의 가족, 곧 식구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다. 실제로 옥주네 가족이 할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콩국수를 먹는 장면과 고모가 집에 온 후 잡채를 만들어 먹는 장면, 할아버지 생일 파티 때 케이크를 나눠먹는 장면을 비교하면 단순한 가족에서 식구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옥주의 꿈 안에서 그녀의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행복하게, 또 맛있게 육개장을 나눠 먹을 때 완성된다. 

물론 옥주의, 그리고 영화의 꿈은 현실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영화의 마지막은 결코 냉정하거나 날이 서 있지 않다. 밝은 여름밤의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한 소녀의 일상은, 영화가 보여주는 아련함과 행복함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며 잔잔한 울림과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남매의 여름밤 가족 윤단비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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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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