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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 그만 두고 무작정 유학, 22년차 음악치료사 됐죠"

[인터뷰] 곽은미 음악치료사를 만나다

등록 2020.08.18 15:10수정 2020.08.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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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은미 음악치료사가 음악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현주

  띠-띠-띠, 긴박함과 분주함 속에 온갖 의료장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중환자실의 한 격리병실. 그 사이로 힘찬 멜로디와 가사가 들려온다. 환자가 평소 즐겨 들었던 노래 에미넴의 <Not afraid>다. "I'm not afraid (난 무섭지 않아)/ To take a stand (당당히 설 수 있어) / Everybody (모두다)"


노랫소리에 의식이 없던 환자가 왼쪽 발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며 반응한다. 옆에는 같이 음악을 들으며 의료장비 모니터의 생체징후수치들을 보고 반응을 살피는 한 여성이 서 있다. 음악치료사 곽은미씨다.

음악치료사란 인간의 감정과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음악을 매개로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직업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음악치료는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 영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다양한 임상 연구를 바탕으로 영향력 있는 임상 기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음악치료에 발을 디딘 지 어언 22년. 그녀는 교통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소년부터 윌리엄 증후군에 걸린 소녀까지 다양한 환자들을 만났다. 또한 현재 전국음악치료사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음악치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음악이 주는 힘으로 아픈 이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곽은미 음악치료사. 지난 15일, 상봉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퇴직금을 털어 유학길에 오른 이유

26년 동안 음악치료를 하며 곽은미 음악치료사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음악치료가 무엇이냐는 물음이었다. 많은 사람이 음악치료라는 명칭은 들어봤지만, 아직 추상적인 개념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치료란 인간의 심미적 경험을 충족시키기 위한 음악 본래의 역할을 넘어 사람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말해요. 쉽게 말하면 음악의 치료적 측면을 환자에게 적용하는 겁니다. 음악이 마음의 평화를 넘어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아직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죠.

그 때문에 의료종사자들은 음악이란 단어를 치료라는 말에 붙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연구를 통해 음악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정식 학위 과정이 생긴 지 60년이 흘렀고 한국에서도 1996년 숙명여대 대학원에 음악치료 석사과정이 개설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곽은미 음악치료사는 수학과를 전공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하지만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에게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사람과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는 우연히 본 음악치료사에 대한 기사를 보고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우연히 기사를 통해 음악치료라는 분야를 알게 됐어요. 음악과 사람을 좋아했기에 흥미를 느껴 미국 유학을 준비했으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죠. 하지만 음악치료를 배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기에 퇴직금을 모두 사용해 1년 치 등록금을 내고 무작정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저의 확고한 의지가 보였는지 부모님도 이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어요."  

8월 15일, 본인이 운영하는 음악카페에서 곽은미 음악치료사를 만났다. ⓒ 이현주

  그녀는 22년이라는 긴 시간만큼 수많은 환자를 돌봤다. 때로는 환자들이 차도를 보이지 않아 음악치료사로서 한계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음악을 통해 환자와 깊은 교감을 나누며 함께 울고 웃었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어요. 교통사고를 당해 아무런 반응이 없는 반 혼수상태의 환자였죠. 환자의 이름은 종현(가명)이로 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아이가 평소 즐겨 들었던 노래를 틀었어요. 가수 에미넴(Eminem)의 노래부터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배경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했죠. 의료장비 모니터의 생체징후수치들을 보며 늘 종현이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또 지속해서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노래의 박자에 맞춰 손을 잡아주었죠.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가족과 함께 종현이(가명)의 손발을 보면서 어디든지 좋으니까 움직이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처음 움직인 것은 왼쪽 첫째 발가락이었어요. 왼쪽 발가락을 움직인 후 팔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걷고, 말하고, 집안에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됐어요. 종현이는 의식이 돌아온 후에는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종현이가 평소 좋아했었던 11가지 음악. 곽은미 음악치료사는 이 음악을 틀어가며 치료를 진행했다. ⓒ 곽은미

그녀는 반 혼수상태였던 종현(가명)이 말고도 윌리엄스 증후군을 앓고 있던 다미(가명)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증후군은 7번 염색체 일부가 결실되어 특정적인 외모와 함께 심장질환과 지적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증후군을 말한다.

"윌리엄스 증후군을 앓고 있던 다미(가명)도 기억에 남아요. 이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정서적 지능은 매우 높은 데 비해 수학적인 능력과 공간 감각은 좋지 않습니다. 다미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저를 찾아왔어요. 공간 감각이 좋지 않아 신발의 좌우를 구별하지 못했고, 모음의 가장 기초인 'ㅡ, ㅣ'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글을 읽을 수가 없었죠.

정서적 지능이 높았던 다미는 자신이 못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안 되지?'라며 무척 속상해했었죠.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교육을 계속 진행해도 될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어요. 다미가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맞춤 교육을 해나갔죠.  'ㅡ' 위에는 사자 으르렁을 놓고 'ㅣ'위에는 이빨을 놔서 연상작용을 유도했습니다.

또 가나다라 송, 거너더러 송, 그느드르 송, 기니디리, 구누두루 송, 아예이어오 송 등을 만들어 열심히 가르쳤어요. 윌리엄스 신드롬 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은 집중력이 약한데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치료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치료를 병행하는 중에는 다른 치료는 병행하지 않았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다미가 지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나아갔습니다. 현재는 의사소통이 될 만큼 많이 호전됐어요. 말을 너무 잘한답니다. (웃음)" 


질병으로 가장 괴로운 것은 환자 본인이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가족의 아픔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장애 아동뿐 아니라 그의 부모와도 음악치료를 통해 깊은 교감을 나눴다.

"부모협의회의 의뢰로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저는 오랫동안 음악치료를 했기 때문에 부모의 얼굴을 보면 장애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표정을 읽을 수 없었던 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뇌성마비지만 인지는 정상인 아이의 엄마였어요. 아이의 자폐가 너무 심해 통제가 불가능했고 치료 세션을 진행하기 힘들었죠.

어느 날 세션을 하며 음악이 인도하는 대로 생각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위층에서 공사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치료에 방해가 됐어요. '저 쿵쿵거리는 소음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어머니가 '내 아이를 저 소음처럼, 저것만 없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펑펑 우시더라고요. 저는 음악에 집중하며 본인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음악의 힘을 다시금 느꼈어요."

 

단체세션 때 쓰이는 악기들 ⓒ 곽은미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음악치료를 연구하며 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아직도 자신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은사가 말한 대로 음악치료사란 늘 공부가 필요한 직업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음악에 담겨 있는 개인적인 기억과 추억이 다양하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이 다 달라요. 약물처럼 일률적으로 반응하지 않죠. 또 '제 경험들이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자책하기도 하죠. 저의 은사님은 55년 동안 음악치료사로서 활동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나는 완성된 음악치료사가 아니며 앞으로도 완성된 음악치료사가 될 수 없다. 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이 늘 맴돌아요. 저도 은사님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려 해요. (웃음)"

전국음악치료사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한국의 음악치료 수준이 선진국들에 절대 뒤지지 않지만,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한국의 음악치료 수준은 매우 우수합니다. 미국 같은 음악치료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을 정도죠. 치료사의 80% 이상이 석사 출신으로 매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의 방향, 신경 재활, 장애아동, 기초 연구 등을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또 치료의 질이나 치료의 보급률도 대부분의 국가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죠. 하지만 미국과 다르게 한국은 병원과의 협업이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에요." 

곽은미 음악치료사는 한국 음악치료의 변천사를 함께한 선구자다. 음악치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예전에는 음악치료 분야가 매우 생소했었죠. '음악치료는 음악을 듣고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었어요. 음악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던 거죠. 이랬던 인식이 최근에는 '한번 해보고는 싶어! 근데 뭔지는 잘 모르겠어. 과연 될까?'로 발전했어요. 인식에 변화로 한국 정부에서도 음악치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일명 '바우처 제도'라는 사업인데 이 제도 덕분에 2008년부터 장애아동들은 웃음치료를 받을 때 국가에서 치료비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죠.

이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이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음악치료가 의학계에서 정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치료사인 우리가 아직 음악치료 분야의 효용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학계에서는 음악치료를 '옛날 떠돌이 약장수' 정도의 수준으로만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니 협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의료보험조차 되지 않죠. 이제부터는 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음악에는 힘이 있다.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가사가 어우러진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하고 때론 마음을 안정시킨다. 애절한 발라드를 들으면 감성이 예민해지고 신나는 댄스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 몸을 움직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음악은 뇌에 영향을 주고, 뇌는 우리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 아직 많은 사람이 음악으로 치료가 될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곽은미 음악치료사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음악이 가져올 작은 기적을 꿈꾸며 그녀는 오늘도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만난다.  
#음악치료 #전국음악치료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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