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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응원'마저 짜릿했는데... 축덕은 다시 웁니다

[일상 비틀기]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다시 닫힌 축구장... 제발 공동체의 '생존'을 고민합시다

등록 2020.08.19 14:11수정 2020.08.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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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축구장에 갔다. 축구를 좋아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나는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고 관중들과 함께 응원을 하는 것이 제일 신난다. 그런 내게 2020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세계였다.


코로나19로 5월 8일이 되어서야 개막한 K-리그였는데, 그마저도 관중 없이 진행됐다. 축구팬이자 축덕(축구 덕후)으로 살아온 게 스무해를 넘는 동안, 원하면 언제라도 갈 수 있었던 축구장이었다. 축구장에 갈 수 없는 세상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잠식한 2020년은 지금껏 당연했던 것들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여름휴가로 직관을 준비하고 있던 유로 2020은 연기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K-리그가 열렸지만 그마저도 선수들에게만 허용된 시간이었다. TV 화면에서 보여주는 대로 즐기는 축구는 내가 원하던 방식은 아니었기에, 꽤나 오랫동안 축구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모든 금단현상이라는 게 그렇듯이 나는 '허용되지 않은 것'에 의한,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초래한 우울감에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축구장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려왔다. 급하게 예매 가능한 경기를 찾았고, 8월 8일에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들렀다. K리그2의 대전과 경남의 경기였다.

소리를 지르다가도 '아차'
 

경기장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시대에 축구팬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네요. 오랜만에 힘들게 열린 경기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좌석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반갑습니다. ⓒ 이창희

오랜만에 찾은 경기장은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르느라 분주했다.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여, 간신히 되찾은 일상이 깨지기라도 할까 봐 바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예매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사람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했고,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QR코드로 신원을 확인해야 했다.

마스크를 쓴 채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 했고, 목소리를 내서 응원을 할 수도, 물을 제외한 어떤 음식도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뛰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감동이었다. 금단현상으로 억눌려있던 마음도 조금은 시원해졌다. 


"응원은 박수로만 해 주시고, 육성을 통한 응원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기장에서의 설렘에 몸과 마음이 움찔거릴 때엔, 어김없이 안내방송이 울렸다. 비까지 내렸음에도 우비까지 챙겨 입고 관중석을 지키던 관중들은, 쉽게 동요했으나 또 쉽게 냉정을 찾았다.

하지만 그날 경기는 전반전에서만 대전이 두 골을 터트렸고, 후반전에는 상대편의 세 골을 넣으며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규정을 지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관중석의 우리들은 모든 순간이 갈등의 연속이었다. 소리를 지르다가도 '아차'해야 했고, 골이 들어가던 순간의 환희에도 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지난 광복절에 울산과 포항의 경기가 열린 울산 문수구장에 들렀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중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경기장 입장에도 평소보다 조심스럽습니다. 울산문수구장에서는 QR코드를 이용한 출입자 관리는 물론, 체온 확인을 철저히 진행하느라 입장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 이창희

이번 나는 이 경기가 열리는 곳을 광복절 연휴 피서지로 택했다. 동해안 더비로 불리는 두 팀의 경기는, 한국프로축구 리그 역사에서 꽤나 흥미로운 라이벌이기에 기대와 긴장감을 동시에 갖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게다가 울산의 팬이라면, 작년 리그 막바지에 울산을 선두 자리에서 끌어내린 포항에 대한 원한도 있었을 테니 오랫동안 기다렸던 홈경기였을 것이다. 문수구장의 좌석이 4만 석이 넘으니, 이날 입장한 3242명의 관중은 규정상 입장 가능한 25퍼센트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다. 하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최고온도 37도에 육박하던 광복절의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물론, 경기 중간중간 코로나19에 의한 방역조치를 상기시키며 조심해달라는 안내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울산은,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관중에게 동해안 더비의 승리를 선물로 안겨주며 K리그1에서 1위를 지켜냈다.

희망은 금세 절망이 됐다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 후반전 킥오프와 함께 쏘아올려진 폭죽이 화려합니다. 초록색의 경기장을 가득채운 선수들의 모습을 직접 경기장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평소와는 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요. 계속 이렇게 경기장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창희

축구팬이 축구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하지만, 조금씩 이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찾은 축구장에서, 최선을 다해 경기를 풀어내는 선수들을 통해 우울감을 이겨내고, 에너지를 얻은 순간이 행복했다.

조만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응원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 교회를 통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를 들었다. 게다가,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개최된 대규모 집회의 사진과 함께,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며 해당 지역의 프로경기가 다시 무관중으로 전환되었다는 속보가 들렸다. 희망은 금세 절망으로 바뀌었다. 연휴를 마친 출근길이 걱정스러웠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북에서 살면서 느꼈던 '2월 말의 공포'에서 간신히 벗어나던 중인데, 또다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특정 집단을 향한 분노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길 수 없음을 알지만, 공동체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그들에게 화가 난다. 힘들게 일상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주저앉을까 두렵다. 코로나19는 정치가 아니다, 공동체의 생존이다. 제발, 잊지도 속지도 말자. 
#일상 비틀기 #축구팬 #코로나19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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