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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여도 손해 볼 것 없는 거짓말로 구원받은 한 남자

[리뷰] 영화 <부다페스트 스토리>, 히치콕 영화의 21세기식 재해석

20.08.16 12:28최종업데이트20.08.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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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부다페스트 스토리>포스터 ⓒ 알토미디어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21세기에 히치콕이 살았다면 만들었을 법한 연출이 돋보인다. 누군가를 훔쳐보는 관음적인 연출과 클래식한 음악,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서스펜스까지. 우리나라에 잘 소개되지 않아 낯설지만 신비로운 헝가리 영화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활용한 치정극의 형식을 넣어 로맨스와 스릴을 결합했다. 희망고문이 현실이 되는 흔하지 않은 스토리가 매력적인 시대극이다.

또한 <부다페스트 로큰롤>로 알려진 사보 킴멜 타마스, 어머니의 강인함과 팜므파탈의 모습이 돋보이는 비카 케레케스, 눈빛만 봐도 마초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리벤테 몰라르의 호연이 돋보인다. 세 배우의 분위기는 스릴러에서 멜로, 치정으로 변하는 톤을 완성한다.

한코(사보 킴멜 타마스)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애타게 찾는 신문 광고를 탐닉한다. 당시 유럽은 신문마다 노동 수용소로 끌려간 남편, 아들, 형제, 친구를 찾는 구인광고가 신문의 몇 페이지에 달했다. 한코는 이를 이용해 실종자 가족에게 누군가의 친구, 전우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애타게 듣고 싶었을 달콤한 희망을 선물한다. 당신이 찾는 사람은 전장의 진정한 영웅이었노라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가족을 찾아가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어떨 때는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 주는 마음과 편의를 봐주는 소소한 감사에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떠돌이다. 겉으로 본다면 그들이 내어주는 따스한 무언가로 살아가는 거짓말쟁이지만 실종자 소식을 간절히 원하는 가족은 한코의 이야기에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영화 <부다페스트 스토리> 스틸컷 ⓒ 알토미디어

 
사기꾼이자 위로자가 된 한코

때문에 한코는 사기꾼이자 진심으로 위안을 건네는 위로자다. 가족의 마지막을 지켜봤으며 이를 전해주는 전달자인 동시에 가족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해방자다.

타인의 비극을 이용해 기생하며 개인의 행복을 쌓는 인물이다. 사람들의 애달픔을 이용하나 결국 그 꾀에 자기가 당할 줄은 몰랐던 어리석은자다.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이란 운명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큰 눈에 아이 같은 순수함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교활함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이 들통 나 쫓기다 못해 부다페스트 근교 한적한 시골까지 도망치게 된다. 정처 없이 숲을 헤매던 중 총을 들고 쏠 기세로 위협하는 모자(母子)와 마주치게 된다.

엄마 유디트(비카 케레케스)와 아들 비르길(베르셀 토트)은 전쟁에 나간 아빠 빈체(레벤테 몰나르)를 정처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코는 위기 상황에서도 실력을 발휘해 남편 빈체와 있었던 일을 두서없이 늘어놓지만 유디트는 믿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하는 남편은 사실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는 폭력적인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부다페스트 스토리> 스틸컷 ⓒ 알토미디어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 된 헝가리

결국, 빈체의 실체가 드러나며 한코는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로맨틱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가 되어주겠노라 다짐한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죽은 줄만 알았던 빈체가 살아 돌아오며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이때부터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은 세 남녀의 알 수 없는 속마음처럼 끓어오른다. 천재 스토리텔러 조차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헝가리의 모습을 다룬다. 극심한 기근과 인플레이션, 전쟁에 가담한 사람을 전범자로 규정하고 공개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극심한 혼란기이자 패전 후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상황도 전해진다.

이 틈을 타 한코는 자연스럽게 현실을 이용했고, 능수능란하게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하지만 역마살을 잠재우고 안착하려고 하자 사달이 난다. 스스로 운명을 거스르는 일은 쉽지 않다. 통과의례는 생각보다 엄격했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부를 만큼 강렬한 이끌림으로 시작되었다.

한코는 자기 최면에 빠지며 급기야 신화 속 주인공이 된다. 거짓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진실한 사랑의 부표를 찾는다. 녹록지 않은 삶의 덫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었던 유디트를 구하며 본인 삶까지 구원받는 러브스토리다.

할리우드 고전의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며 현대식 디테일을 잘 살렸다. 영화의 제목인 'Tall Tales'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한코가 전쟁 후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기술이다. 속고 싶은 거짓말, 속여도 손해 볼 것 없는 하얀 거짓말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부다페스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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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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