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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의원님, '가재 조롱'을 거둬 주십시오

[현직교사의 공개편지] 말이 가진 감성은 아름답지만 퇴행적 주장을 펴셨더군요

등록 2020.08.11 08:23수정 2020.08.1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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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받는 윤희숙 의원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임대차보호법의 부작용을 지적한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서울 서초구갑)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님.

우선, 일면식도 없는데 불쑥 편지 보내는 무례를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청합니다. 사실 직접 육필로 써서 국회의원회관에 등기우편으로 보내려고 우편번호와 도로명 주소까지 알아놨는데, 의원님의 심기를 경호하는 보좌진에 의해 걸러질 것만 같아 그냥 인터넷의 힘을 빌기로 했습니다. 부디 어떤 경로로든 의원님께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방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23년째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교사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23년 경력이면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훈수 정도는 둘 자격과 역량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쭙잖은 글솜씨지만, 꽤 오랫동안 이곳 <오마이뉴스>에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의원님의 프로필을 보니, 저랑 비슷한 연배여서 괜스레 더 친근하고 반가웠습니다. 저는 1971년 돼지띠이니, 의원님이 한 살 터울의 손위가 됩니다. 흔히 486세대니, X세대, Z세대니 하는 말도 따지고 보면 세대를 기준 삼는 것이니, 같은 시대를 경험했다는 게 처음 만난 사람조차 허물없이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5분짜리 국회 연설 '나는 임차인입니다'는 감동이었습니다. 내용에 공감해서라기보다 통합당에도 저렇게 또박또박 연설을 할 줄 아는 분이 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입니다. 더 잘 아실 테지만, 지난 국회의 통합당 의원님들이 단상 마이크 앞에서 보여준 모습은 하나같이 근거도 맥락도 없는 고함과 반대를 위한 반대가 전부였습니다.

의원님이 불과 얼마 전까지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한 임대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연설의 진정성을 의심받긴 했지만, 큰 흠결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송구합니다만, 저는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통합당에 대한 기대는 단 1도 없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통과시킨 법으로 가만히 앉아 23억 원을 시세차익으로 벌어들였다는 분이 원내대표인 정당인데, 바라는 게 어리석을 수 있겠습니다.

상식적으로 건물주, 곧 임대인과 세입자, 곧 임차인은 길항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공사 구분이 확실한 국회의원이라도 건물주가 세입자를 위한 법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통해 보았듯, 현직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임대인(건물주)입니다. 허술한 정부의 대책을 나무라며 임차인 편에 서겠다는 의원님의 사자후도 시늉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나이 먹도록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입안한 국회의원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부동산에 한정시킨다면, 보수와 진보를 떠나 건물주면 규제를 풀고 보유세를 내리기 위해 혈안이 됐고, 세입자면 공공 임대주택을 늘리고 세금을 올리는 입법에 매진했습니다. 물론, 늘 우리 국회는 건물주를 향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집값은 늘 올랐고, 여야의 건물주들끼리 호들갑 떨며 '깜'도 안 되는 대책을 가지고 보란 듯 난투극을 벌이는 '쇼'를 벌여왔습니다. 단언컨대,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없습니다. 오로지 건물주와 세입자의 구분만 있을 뿐입니다. 결국 부동산 문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재 성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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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일 강원 춘천중학교 1학교 교실의 모습. ⓒ 연합뉴스

 
그런데 윤희숙 의원님. 지난 8일엔 '수포자'(수학 공부를 포기한 학생) 언니를 거론하며 우리 공교육의 퇴행을 질타하셨더군요. 주야장천 수월성 교육만 강조해온 통합당 소속의 의원님께서 기초 학력 미달 학생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 점만큼은 놀랍고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주장과 지적에 대해서는 동년배의 현직 교사로서 조금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 7일 오후, 동료 교사들과 함께 의원님께서 페이스북에 남긴, 이른바 '가재 성장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초선임에도 '나는 임차인입니다'의 유명세 덕에 의원님의 성함을 모르는 이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의 경제학 박사 출신이라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재 성장론'에 대해서는 외람되지만 혹평 일색이었습니다. '오로지 강남 학부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거나, '공교육을 경제학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것 같다'는 평가가 잇따랐습니다. 심지어 '학교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교사를 향한 적개심을 표출한 망언'이라고 발끈하는 동료 교사도 있었습니다.

의원님께선 교육 개혁을 위한 시도가 교실에 도입되지 않는 이유가 '교사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짚으셨습니다. 졸지에 교사 집단은 교육 개혁을 가로막는 수구 세력이 돼버렸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전국 40만 교사 중에는 교육자로서의 자질조차 의심스러운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를 전체인 것처럼 교사 집단 전체를 매도해서는 곤란합니다.

제 한 몸 편하자고 교육을 등한시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들도 초임 시절부터 그랬던 건 아닐 겁니다. 교직에 대한 열정과 임용시험을 통해 실력이 검증된, 명실공히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백 보 양보해서, 의원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 세력으로 전락했다면, 비난에 앞서 그렇게 만든 구조에 주목하는 게 순서 아닐까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의원님의 언니도 경험한 '수포자'의 현실입니다. 학교에서 '수포자'가 양산되는 이유를 의원님께선 교사의 나태함과 무책임으로 돌리고 있지만, 단언컨대 잘못된 진단입니다. 수업시수도 많은 데다 위계형 교과라서 수학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 특정 교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수포자'는 수학을 포기한 학생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자존감에 생채기가 난 무기력한 아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학교마다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을 위해 별도의 수업을 꾸리고, 방과 후까지 교사가 돌아가며 최선을 다해 보지만, 효과가 미미한 까닭입니다. 고등학생쯤 되면, 아예 공부에서 손을 놓은 채 교과서를 모두 버린 아이도 있습니다. 공부를 경멸한다는 뜻입니다.

의원님께선 교육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용이 되고 싶은 가재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며, 노력하고 성장하는 가재로 키워 어떤 개천에 흘러가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낼 역량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라고. 이야말로 '말이 가진 감성은 아름답지만', 상호모순적이며 퇴행적인 주장입니다. 소수의 가재들에게 용이 되는 길을 터주느라, 대다수 가재들이 살아갈 개천은 방치된 채 나날이 탁해졌습니다.

모두가 용만을 꿈꾸고 용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사회에서는, 끝내 용이 될 수 없는 대부분의 가재들에게 열패감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개천에 흘러가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낼 역량'을 애초 기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교사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의 전쟁터가 돼버린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의원님의 우려대로 최근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건, 그만큼 어릴 적부터 열패감에 시달려온 가엾은 아이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앳된 초등학생들조차 건물주를 꿈꾸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입에 달고 사는 현실입니다. '1/2과 1/3을 더하면 5/6이 된다'는 걸 배우기 전부터 이미 아이들은 자신들의 미래 모습을 냉철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끊어진 사다리'라면서 '수월성 교육'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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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 wiki commons

 
윤희숙 의원님께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의 연구까지 인용하며, '계층간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애석해하셨습니다. 대학 진학 여부가 이미 취학 전에 결정된다면서, 고장이 난 공교육 시스템을 질타하셨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그건 가정과 사회가 '싸질러놓은 ×'을 왜 제대로 치우지 못하느냐고 되레 학교를 욕하는 꼴입니다.

끊어진 사다리를 이어야 한다면서,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는 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으로 서열화시킨 '고교 다양화'와 우열반으로 귀결된 '수준별 수업'은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증명됐습니다. 의원님께서 이를 모르는 척 수월성 교육을 언급한 건, 아마도 통합당의 당론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칸트의 통찰인즉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데, 굳이 '수포자' 양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애먼 교사 집단을 탓할 게 아니라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감히 자부하건대,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용과 가재, 붕어, 개구리, 그 무엇이 됐든 자존감이 높고 공감 능력을 갖춘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권능을 어느 누가 폄훼하겠습니까. 다만, 정부가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타박하셨듯이, 부디 의원님께서도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국회에서 학교를 향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우나 고우나 공교육 개혁의 주체는 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백하건대, 2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한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큰 차를 타려 하고, 넓은 집을 꿈꾸고, 명품에 집착할까? 아이들은 왜 모두 대학에 가려고 하고, 서울에서만 살고 싶어 할까? 지금껏 이 '우문'에 답해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건 상식이자 통념이며 의심할 여지 없는 우리 사회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의원님이 제안한 대로 공교육이 바뀌면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요? 큰 차와 넓은 집, 명품, 대학과 서울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을 그저 본능이라고 내버려 두면, 우리 교육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는 당위조차, 되레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하는 의원님께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인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과도한 욕망을 제어하도록 이끄는 교육'만이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믿습니다.

눈여겨 보겠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대학원 근처에도 못 가본 일개 지방의 고등학교 교사가 감히 미국 명문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의원님과 말을 섞는다는 게 불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교육에 관해 의원님과 끝장 토론을 벌여보고 싶습니다. 차기 서울특별시장과 교육부장관감이라며 찬사를 한 몸에 받고 계신 의원님께 직접 묻고 듣고 싶은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수요에 맞춰 대학 정원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왜 최근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으신지. 또 그러잖아도 수요가 없어 인문학이 대학에서 퇴출되는 현실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여쭙고 싶습니다. 미국 쪽 통계에 근거한 주장 말고 유럽 등으로 대조군을 넓힐 의향은 없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까발려진 지금 미국의 현실을 보건대, 미국 교육을 모범 삼는다는 게 여간 찝찝한 일이 아닙니다.

괜히 오해하실까봐 덧붙입니다만, 저는 통합당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 지지자도 아닙니다. 지금껏 정당 투표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출마한 후보자의 면면을 놓고 보면, 통합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태반입니다. 누구의 표현을 패러디하자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오로지 정책만 따져볼 뿐입니다'.

비록 통합당에 적을 뒀다고 해도 의원님이 발의한 정책을 눈여겨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공교육 개혁에 이바지할 거라는 확신이 서면, 동료 교사와 함께 앞장서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그러자면 공교육을 향한 '전국민 가재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조롱부터 거둬주시는 게 순서일 겁니다.

촉망받는 초선으로서, 부디 윤희숙 의원님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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