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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자랑스러운 고장"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독립운동의 성지 대구' 발간

등록 2020.07.20 17:46수정 2020.07.2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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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성지' 대구> 표지 ⓒ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1925년 당시 서울 인구는 34만2626명이었다. 부산은 10만6642명, 대구는 7만6534명, 인천은 5만6295명이었다.

2020년 현재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유공자로 인정을 받은 서훈자는 서울 427명, 부산 73명, 대구 159명, 인천 22명이다. 이를 1925년 당시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은 802명당 1명의 독립운동 서훈자를 배출했다. 무명의 독립운동 참가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802명당 서훈자가 1명 탄생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제에 맞섰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부산은 1461명당 1명, 인천은 2556명당 1명으로 서울보다 적지만 대구는  481명당 1명의 독립운동유공자를 배출했다. 이는 인구비례로 볼 때 서울보다 1.6배 많은 인원이다. 대구의 서훈자 159명은 부산의 3배, 인천의 5배에 해당된다.

대구의 독립운동 서훈자는 서울의 1.6배, 부산의 3배

대구는 서훈자도 많지만 독립운동사에 특별한 의의를 가지는 거사도 많이 일으켰다. 명성황후 시해 후 최초로 창의한 문석봉 의병장은 대구사람이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은 "문석봉의 봉기는 의병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폭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의병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라고 평가한다.

대구사람들은 1907년 '경제 주권 수호'를 도모한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토성에서는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6차 교육과정 국정 <고교 국사> 교과서)' 대한광복회가 결성되었다. 2019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대구는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자랑스러운 고장"이라고 상찬했다.

1910년대 최고의 독립운동단체는 대한광복회


대한광복회(총사령 박상진)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 만주의 독립지사들에게 전달하고, 군사학교를 운영하여 일제와 결전을 벌이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 전쟁 노선의 독립운동단체였다. 일제의 기록(1921년 10월 27일 경성지방법원 우재룡 신문조서)에 따르면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재룡은 군자금 7만 원(현시세 약 34억 원)을 만주의 김좌진에게 전달했다.
 

대한광복회에 대한 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의 평가 및 2019년 국군의 날 기념사 대통령의 발언 내용 ⓒ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대구사람들은 대한광복회의 후신인 의열단 창단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20년대 무장투쟁을 선도한 의열단이 1919년 11월 10일 창단될 때 최초 단원은 10명이었다. 그 중 4명이 김원봉 등 밀양 사람, 3명이 대구 사람 이종암·서상락·신철휴(고령)였다.

특히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은 대구에서 가져간 1만500원(현시세 약 10억 원)으로 창단 준비 공간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김원봉 등과 합숙하면서 폭탄제조법을 공부했다. 상해 일본군 육군대장 저격 거사와 밀양경찰서 최수봉 지사 투탄의거를 지휘한 이종암은 동경 거사를 준비하던 중 대구에서 피체, 결국 고문 후유증과 지병 악화로 35세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1920년대 최고의 무장 항일 결사는 의열단

대구는 '광야'의 이육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일장기 말살사건'의 소설가 현진건 등 민족문학가를 배출한 문향으로도 이름이 높다. 안동 출생의 이육사는 17세 이후 대구에 거주했는데, 17회나 투옥되는 등 맹렬한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끝내 옥사한 의열단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대구는 서대문형무소에 버금가는 형무소가 존재했다는 점에서도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받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지사가 175명이고 대구형무소 순국 독립지사가 176명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전국 각지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구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고문을 당했다는 역사를 증언해준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가 여전히 역사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구형무소는 자취조차 찾을 길 없이 완전히 멸실되어 버렸다. 이에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우대현)와 광복회 대구지부(지부장 노수문) 등이 앞장서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독립운동의 '성지'에 기념관이 없어서야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김능진 제9대 독립기념관장)는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성지' 대구>라는 책을 7월 10일 발간했다.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간행된 신국판 256쪽 분량의 이 책은 박지극 시인의 축시, 이종찬·문희갑 상임고문의 격려사, 김부겸·주호영 자문위원의 축사, 화보 '사진으로 보는 대구 독립운동 약사', 정인열의 '대구 독립운동역사·정신·자산, 어떻게?', 박환의 '대한광복회의 독립운동사적 의의', 이동언의 '이종암과 의열단', 그리고 필자의 '시기순으로 간추린 대구 인물 독립운동사' 등으로 구성됐다.

김능진 추진위원장은 책 권두사를 통해 "코로나 여파로 3월 26일에 열려던 발기인대회를 7월 20일에 가지게 되었지만 대구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바람직한 성과도 거두었다. 앞으로 수많은 시민들을 추진위원으로 추대하여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운동의 열기를 가일층 북돋울 것이며, 반드시 기념관을 세워 모든 대구시민들과 모든 대구의 어린 아이들이 대구에서 나고 자란 것을 자랑스러워 하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과 향후 계획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독립운동의 '성지' 대구>(2020년 7월 10일,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신국판 256쪽, 비매품
#대구독립운동기념관 #이종찬 #문희갑 #김능진 #우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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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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